대체복무 군 아닌 별도기구가 관리해야…우리와 상황 비슷한 대만 큰 부작용 없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봤다. 결국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인원이 처벌받은 것은 대체복무제가 부재했기 때문인 만큼 대체복무제를 병역법 안에 포함시키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까지 대체복무제에 대한 법 개정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대체복무자가 복무할 영역, 복무기간, 복무생활양식, 대체복무자 선정 기준 등이 논의의 주 골자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시민사회계와 종교계 등의 움직임으로 발의된 대체복무제도가 여러 건 있었다. 2004년 임종인 의원을 필두로 발의되기 시작한 병역법 개정안은 저마다 담고 있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지금도 2016년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7년 박주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에 있다.
그동안 발의된 병역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대체복무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자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둘지 여타 정부기구에 둘지 의견을 달리한다. 해외의 경우 대체복무를 관리하는 부처가 상이하다. 2008년 병무청이 용역을 통해 조사한 것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내무부, 노르웨이는 법무부, 스위스는 경제부, 독일은 가족청소년여성노인부, 폴란드는 지방정부, 우크라이나는 노동사회정책부 등에서 대체복무를 관리한다.
시민단체는 군과 국방부 산하가 아닌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대체복무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 측은 “대체복무는 면제나 특혜가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존중하며 현역 복무와 형평성 맞는 복무를 함으로써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대체복무제는 군과 군 산하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체복무 신청자에 대한 심사 및 대체복무 관리·감독 권한은 군이나 군 산하기관 외부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연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대체복무기간과 대체복무자의 생활양식에 관한 쟁점이다. 국회에 지금까지 발의됐던 대체복무제도 안건은 대체복무기간은 군 복무기간의 1.5배, 대체복무자들은 합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아 수감생활을 한 사람들도 국민의 병역의무 형평성과 대체복무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군 복무에 상응하는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재난복구, 의료행위를 제외한 의료현장 업무 등 공공분야면서도 일손이 부족하고 업무 강도가 높은 분야다.
대체복무기간도 국가별로 제각각이다. 독일과 대만,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 현역 복무자의 복무 기간과 동일하다. 흔히 비교되는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대만이다. 중국과 대치상태에 있어 2300만 명 인구에 병력을 60만 명 가까이 유지했던 대만은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2001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던 당시 대만은 군복무 기간의 1.5배로 대체복무기간을 설정했지만 차차 그 기간이 짧아져 지금은 현역복무기간과 대체복무기간이 같아졌다. 그럼에도 대체복무 신청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거나 하는 부작용은 없었다. 이 배경에는 대체복무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맡고 국민들이 대체복무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컸다.
안보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던 재향군인회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남북관계라든지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대체복무제도를 완비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현역 복무자의 상실감을 최소화하고 대체복무자 심사제도나 전시상황에 대체복무자의 활용방안 등을 면밀히 담은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병역거부로 실형 살고 사회 낙오자 전락 이제 그만!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관심은 2001년 평화주의자이자 불교신자인 오태양 씨가 병역을 거부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시민사회와 국회 등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950년 이후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은 인원은 1만 9000여 명 수준이다. 이들의 90% 이상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계, 학계, 시민사회계를 중심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처벌대상이 되는 것과 그로 인해 향후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는 것이 주된 문제로 지적됐다. 열심히 공부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해도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으면 향후 경제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종교적, 양심적 신념 때문에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게 될 경우 교육공무원은 물론 공무원, 일반 회사, 금융사 등 입사가 어려워진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평화주의자 김 아무개 씨는 입소 대신 감옥을 택해 교사생활을 접어야 했다. 기업 입사 시에는 통상 지원자의 병역사항을 의무적으로 기입한다. 군 면제자나 미필자의 경우는 면접 과정에서 그 사유를 묻기 때문에 병역거부자임이 밝혀진다. 조직에서 병역거부자는 여전히 터부의 대상이 되고, 병역 거부로 인해 향후 경제생활이 어려워진 경우가 태반이다. 이 때문에 종교상 신념으로 병역의무를 지기 어려운 여호와의 증인 남신도들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일용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백종건 변호사는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공익법무관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4주간의 군사훈련을 할 수 없었기에 병역을 거부했다. 그는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5월 출소했다. 백 변호사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들은 교도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과 같은 수감생활을 보낸다. 아침 일찍 교도소의 사무실로 출근해 행정업무 보조 등 잡일을 하고 다섯 시쯤 퇴근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수감생활 중 대체복무를 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백 변호사는 변호사 재등록 신청을 냈지만 형을 선고받은 뒤 집행이 5년 지나지 않은 자는 변호사법의 변호사 결격 사유가 돼 대한변호사협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 변호사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게 돼 형평성에 맞는 대체복무가 이뤄지고 사회에서 필요한 영역을 맡음으로써 대체복무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