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배우 김다미를 발굴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 순항 중인 영화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이 한 마디는 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박 감독은 지난달 19일 열린 ‘마녀’의 언론시사회를 마친 후 열린 간담회에서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로 분류된 것에 대해 이 같은 대답을 내놨다.
이런 질문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통념으로 본다면 ‘마녀’는 청소년 관람불가(청불) 판정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게다가 앞서 개봉됐던 영화 ‘독전’ 역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설왕설래가 오갔다. 왜 갑작스럽게 이런 등급 논란이 이어지는 것일까?
# ‘독전’ ‘마녀’의 흥행 일등공신은 영등위?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독전’.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이 영화가 정말 15세 관람가?”라며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다. 마약 제조 및 흡입 과정이 상세히 담겼고, 살인이 난무한다. 신체훼손 장면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한국 영화계에서 청불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성인 여성의 가슴 노출 장면도 포함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평가표를 살펴보면 주제, 선정성, 폭력성, 약물 등 전 항목에서 ‘독전’은 ‘다소 높음’ 판정을 받았다. 이 항목 중 단 1개라도 ‘높음’이 있으면 청불 판정을 받게 된다. ‘독전’은 아슬아슬하게 그 선을 지킨 셈이다.
영화 ‘독전’ 홍보 스틸 컷
영등위는 “마약조직과 수사관의 대결을 그린 영화로 총격전, 총기 살해, 고문 등 폭력묘사와 마약의 불법 제조 및 불법거래 등 약물에 대한 내용들도 빈번하지만 제한적으로 묘사되어 영화 전반의 수위를 고려할 때 15세 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는 총평을 내놨다.
그렇다면 ‘마녀’는 어떨까? 이 영화 역시 높은 수위의 폭력 장면이 담겼다. 약물 등을 통해 인간을 개조한다는 설정 또한 파격적이고, 여고생이 무자비한 살인마라는 점도 청소년들이 접하기 그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영등위는 이 영화에 폭력성, 대사, 공포, 모방위험 등의 항목에 ‘다소 높음’을 매겼다. 하지만 성적 노출이 없어 선정성 항목은 ‘낮음’이고 ‘약물’ 항목은 ‘보통’이다. 총평은 “육체 폭력, 시신 유기, 총격전 등 살인과 살상의 폭력 장면들이 다소 자극적으로 묘사되었고, 인간의 뇌와 유전자를 조작하여 새로운 인간의 종을 만들어낸다는 설정 등 비윤리적인 유해성 등이 있으나,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 주제와 표현의 수위 등을 고려할 때 15세 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였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중학교 3학년 이상이면 볼 수 있었다. 중·고교생들의 관람이 영화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임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관람 등급이 두 영화의 흥행을 일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등위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 영등위 판단과 거꾸로 가는 여론
그렇다면 ‘독전’과 ‘마녀’를 직접 관람한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독전’의 평점란을 살펴보면, 7000명이 넘는 네티즌의 공감을 얻어 호감순 1위에 오른 댓글은 “이 영화가 어떻게 15세 관람가일 수 있는지요? 청불이어야 하는 영화입니다”다. 3500명이 넘는 이들의 지지를 얻은 3위 댓글 역시 “솔직히 말해 15세 관람가라고 보기에는 자극적인 부분이 많았다. 충격적이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들이 난무했다. 심의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였다.
‘마녀’ 역시 “이게 왜 15세예요? 피가 난무하고 사람을 죽이는 게 너무 쉽다. 애들이 이걸 보고 뭘 느낄지 보는 내내 불편하다” “영화는 볼만하다. 청불 기준으로” 등의 반응을 얻었다. 영화 자체는 준수하지만, 등급 판정에 있어서는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 ‘마녀’ 홍보 스틸 컷
언론 역시 이런 부분을 감지한 듯,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 관람 등급에 대한 질문이 연이어 나왔다. ‘독전’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어떻게 보면 자극적일 수 있는 설정이 시나리오 때부터 있었다”며 “‘자극을 위한 자극적인 설정’은 지양하자는 생각이었고,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돼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고, ‘마녀’의 박훈정 감독은 “편집 과정에서 조금씩 수위를 조절하기는 했지만 15세에 맞출 생각은 아니었다”며 “사실 저도 15세 관람가가 나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기준이 명확하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관람 등급을 받은 것이 다소 놀랍지만 영등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뉘앙스였다.
# 관건은 일관성?
일정한 기준을 갖추고 평가하는 영등위의 결정에 대해 일일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적어도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칸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아 화제를 모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청불 판정을 받았다. 여주인공의 가슴 노출과 정사 장면이 등장하지만 야하거나 수위 높게 표현된 편인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람 등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52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한 중견 영화 제작자는 “그동안 한국 영화의 관람 등급 매기는 기준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독전’과 ‘마녀’를 통해 보다 표현의 자유를 넓게 허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도 “처음에는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영등위의 평가가 보편성을 얻으려면 장기간에 걸쳐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