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분식회계 처리 등 주요 현안마다 마찰…‘금융권 체계개편’ 국회 논의 앞두고 신경전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를 방문,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인사한 뒤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위와 금감원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조금 다르다. 금융위는 금융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금감원은 법을 집행하고 금융권을 검사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을 지휘감독한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중첩되기 때문에 업무 조율과 협력이 필수적이고, 때로는 이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최근 발생한 두 기구의 신경전 역시 이런 구조에서 비롯됐는데, 올해 정기국회에서 금융감독 체계개편 논의를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갈등의 시작은 증권가를 충격에 빠트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처리를 놓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시각차를 보이면서다. 금감원은 증선위의 감리조치안 수정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금감원은 지난 4일 열린 삼성바이오 관련 4차 회의에서 증선위가 요구했던 수정조치안 보고 대신 기존 조치안을 수정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올바른 회계처리에 대한 조사결과 보고’를 했다. 사실상 감리조치안 수정을 거부한 것이다.
금감원은 2015년 말 삼성바이오가 자회사인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연결회계)에서 관계회사(지분법회계)로 회계처리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증선위는 바이오에피스 설립 이후인 2012~2014년 회계처리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에 조치안 보완을 지시한 이유다. 연결과 지분법 회계 중 어느 게 맞는지 정한 다음에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게 증선위의 생각이다.
금융위의 관리·감독을 받는 금감원이 증선위의 보완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삼성바이오의 회계부정 입증의 논리적 근거가 확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감원 측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회계처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회계기준인데, 삼성바이오가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의 이유로 들고 있는 사안들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보인다.
금감원은 증선위의 생각대로 지분법이 적절한 회계처리일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바이오젠의 콜옵션 부채를 산정하는 데 여러 쟁점이 있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를 입증하는 것과 무관하게 전선이 넓어지면서 혼란이 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2015년 회계처리만으로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는데 굳이 2012년치로 끌고 올라갈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참여연대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5시간 만에 끝난 4차 회의 이후 증선위원장인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과 금감원의 원승연 부원장, 박권추 회계전문심의위원 등이 만나 별도회의를 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감리조치안 보완을 거듭 주문했고, 원 부원장 등 금감원 인사들은 수정안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
당시 별도회의를 두고도 미묘한 해석차가 있다. 금감원은 ‘원안 유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금융위 내에선 김용범 위원장이 보완을 요구한 것에 금감원 측에서 “알겠다”는 취지로 답변해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해석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4일에 보고한 추가 안건에 대한 입장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헌 금감원장은 4차 회의 이튿날인 지난 5일 일부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바이오의 고의적 분식회계 입장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밝혀 ‘원안 유지’ 입장을 천명했다. 금감원 내에서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이 수정조치안 보고를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공은 다시 증선위로 돌아왔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4차 증선위에서 금감원이 소상히 설명했기에 감리조치안에 대한 증선위원들의 이해가 높아졌을 것”이라며 “수용 여부는 증선위가 결정할 텐데, 증선위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결국 증선위는 지난 12일 오후 임시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의 회계 위반을 인정하고 검찰 고발 조치를 의결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9일 열린 윤석헌 금감원장의 첫 기자간담회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 됐다. 윤 원장은 이날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했는데 논란을 일으킨 대목은 근로자추천이사제다. 윤 원장은 금융사 경영실태평가 때 근로자 등 사외이사 후보군의 다양성을 집중 점검하고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여부 등을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위가 사실상 난색을 표명한 노동이사제를 근로자추천이사제라는 형태로 다시 끄집어낸 것은 결국 본인 소신을 관철하겠다는 윤 원장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므로 금융위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금융위는 금융사 직원의 임금·복지나 노사관계 등으로 미뤄볼 때 금융 분야가 이 부분에서 앞서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한 후 일부 문제에 대해 금감원과 금융위의 입장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키코(KIKO)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도 금융위와 입장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으로 중소기업이 큰 피해를 본 바 있다. 윤 원장은 키코 피해기업 상담과 사실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필요시에는 현장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분쟁조정국·검사국 합동 전담반을 설치해 분쟁조정 종료시까지 운영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앞서 윤 원장은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2월 키코 사태와 관련해 재조사 등을 통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와 재발방지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키코 문제는 오랜 기간 아주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논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가 있었고 대법원 판결이 다 끝났다”며 혁신위 권고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윤 원장은 또 이 문제를 거론하며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렇듯 양 기구가 주요 현안마다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자 금융권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이견을 보이는 사안들은 금융사 입장에서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현안들”이라면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