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의총서 격앙된 친박계…이제 타깃은 ‘김성태’
비박계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왼쪽)가 1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친박계인 심재철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 내 친박계 세력은 최근 혁신비대위 출범을 무산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인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내민 ‘비대위 카드’가 힘을 얻을 경우,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공천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이유에서 그간 비대위 대신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해오기도 했다. 이 가운데 친박계는 ‘당헌 27조’를 내세우며 비대위와 김 권한대행 흔들기에 나섰다.
당헌 27조 3항 2는 ‘궐위된 당 대표의 잔여임기가 6개월 이상일 경우에는 궐위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다시 선출된 당 대표를 지명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홍준표 전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난 6월 14일을 시점으로 60일 이내인 오는 8월 12일까지 당 대표를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비대위란 말 그대로 당에 대표가 없는 비상상황에서 꾸려지는 것으로 8월에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더 이상 비대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 친박계의 주장이다. 어쩌면 비대위는 당 대표 선출에 앞서 공백을 메우는 징검다리 역할밖에 안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친박계는 당헌에 따라 비대위 출범을 무효화시키려 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친박계는 이걸 꼬투리 잡아 비대위를 무산시키려 했다”며 “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비대위에) 강하게 반발해서 의총을 파행시키든지, 전국위원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든지 하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김태흠 의원은 12일 의원총회 직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대위가 당헌에 어긋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당연하지 그럼”이라며 “외부인사 데려와서 뭐하냐. 도대체 외부인사 오면 뭐할건데? 뭐할거냐고! 내가 이전부터 (비대위와 당헌에 대해) 다 말 했는데 진짜. 내가 오늘 (의원총회에서 다시) 말할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성토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유기준 의원도 “이전까지의 의총에서도 (비대위가 당헌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내가 말해왔다. 그거 문제다”라고 말했다. 비박계에서 비대위 출범을 위해 당헌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자기들끼리 맘대로 고치면 어떡하나. 우리가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다 무시하더라. 오늘 의총에서 말할 거다. (비박계가) 그래선 안 된다”고 털어놨다. 이 두 의원 외에도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은 전화통화에서 비대위 출범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비박계에선 당헌을 바꿔서라도 비대위를 밀어붙이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비박계 의원실 한 관계자는 “당헌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라며 “어차피 비대위와 당 대표는 공존할 수 없고 지금 친박계는 비대위를 흔들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박계 김세연 의원은 “비대위가 전국위에서 승인을 받으면 그때부터 다음 최고위가 선출될 때까지 최고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60일 이내’라는 부분적인 논리 주장은 맞지만, 당헌 전체 체계를 보면 비대위도 당헌의 뒷받침이 충분히 되고 있다”고 그 타당성을 주장했다.
이후 이날 오후 4시 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앞서 기자와의 통화에서 친박계 의원들은 의총서 대격돌을 예고한 상태였다. 이날 의총은 국회부의장 선출을 위한 의총이었고, 국회부의장을 선출하고 난 뒤 비대위와 비대위원장 후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그 순서였다. 그러나 국회부의장 선출을 시작하기도 전에 앞서 친박계인 심재철 의원이 손을 들고 “제가 먼저 공개발언을 신청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위 의원들이 웅성웅성거리며 “부의장 선거를 먼저 합시다”라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심 의원은 “이 의총은 저를 포함한 13명의 의원들이 먼저 제안하고 요구했다. 따라서 이게 순서고 당연하다”라며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했다. 이에 김 권한대행이 “의원총회 소집 권한자는 저다. 이미 공지한 만큼 정상적으로 의총을 이미 공지한 대로 회의 순서대로 진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미’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줘서 강조했다.
심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자리에서 나와 지팡이를 짚고 단상까지 내려왔다. 김성태 권한대행이 그런 그를 제지하기 위해 단상에서 내려왔고 서로 마주보고 대치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러자 좌석에 앉아 있던 의원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아이 씨” “뭐하는 거야 진짜!” “회의 진행하세요!”라는 짜증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후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친박계 의원들은 김 권한대행의 거취를 도마 위에 올려 난타전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권한대행은 마무리발언에서 “법적으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나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정략적으로 흔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또, 심 의원을 콕 찍어 “201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노출됐을 때 막아주지 않았느냐”며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김 대행은 의총이 끝난 저녁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호가호위 세력들의 정략적인 의도에 인내는 사치스러운 위선일 뿐”이라며 친박계를 향해 경고를 보냈다.
의총 전만 해도 친박계가 비대위 출범을 저지할 계획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정작 의총은 ‘김성태 흔들기’ 수준에서 그쳤다. 이는 앞서 의총이 시작되기 직전 흘러나왔던 ‘비상대책위원장 후보자 5인’ 리스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5인은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김성원 의원‧박찬종 변호사‧이용구 전 중앙대 총장‧전희경 의원이며, 친박계 의원들은 이 명단을 받고난 뒤 비대위를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천권을 극단적으로 휘두를 만큼의 ‘강성’이 오는 것도 아니고, 이마저도 거부할 경우 친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친박계는 비대위 출범을 무산시키려던 계획 대신 김 권한대행을 흔들자는 계획으로 선회한 것으로 읽힌다. 한 비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무조건 반대는 아닐 것 같다”며 “친박도 관리형, 혁신형 비대위는 인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박계의 목에 칼을 겨누는 ‘청산형’은 아닐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친박계의 흔들기로) 김 권한대행은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앞서의 국회 관계자는 “김 권한대행을 함부로 내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임위를 나누는 중이니 친박이든 비박이든 김 권한대행을 안 볼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