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기준 변경 적법? 비상장사 가치평가 적절? 2005년 에버랜드 논란과 닮은꼴
그런데 삼성과 정부의 회계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정부 때도 회계기준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는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당시 기업가치보다 낮은 발행가(전환가)였지만, 주주 발행이라는 점에서는 합법이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등 개인 주주와 삼성전자, 제일모직, 중앙일보, 삼성물산 등 법인 주주들이 신주 인수를 포기한다. 삼성에버랜드 이사회는 이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남매에게 실권주를 배정한다. 이재용 남매는 이 전환사채를 사들인 뒤 주식으로 교환해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1998년 삼성에버랜드(현재 삼성물산)는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비상장사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주당 9000원에 구입한다. 이 거래로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이 된다. 이건희 회장에 이은 2대주주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을 6개월 뒤 삼성자동차 채권단에 주당 70만 원의 가치로 사재출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삼성생명 지분가치는 삼성에버랜드 장부상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경영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판단, 자회사 회계처리 방식인 지분법(피투자기업의 총이익에서 지분율만큼 반영)으로 장부에 반영했다.
그런데 2004년 정부는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인정한다. 삼성생명 등 자회사 지분가치가 총자산의 절반을 넘어 금융지주회사로 강제 전환해야 한다는 의혹제기를 받아들인 결과다.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로 전환됐다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삼성은 부랴부랴 삼성에버랜드 보유 지분 중 일부를 SC제일은행에 신탁으로 맡기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신탁만으로는 소유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나온다.
그러자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을 자회사에서 제외하고, 대신 보유지분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하는 회계기준 변경을 단행한다. 삼성생명 1주당 가치는 43만 5000원으로 평가했다. 2004년 개정된 기업회계기준 15호가 근거다. 지분율이 20%를 밑돌고 자회사 기준인 경영에 중대한 영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도 삼성에버랜드 등기임원에서 사퇴한다. 이때 일어난 논란이 과연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느냐다.
당시 회계기준을 변경하면서 삼성에버랜드는 한국회계연구원의 “투자업체가 피투자업체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거나, 재무·영업정책 결정에 참여하거나, 임원 선임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실질적인 지배 관계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피투자업체의 지분 평가는 원가법을 적용토록 회계기준을 변경한다”는 회계기준 변경을 근거로 해 삼성생명의 지분을 원가법 기준으로 회계처리하기 시작했다.
2004년 변경된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원가법을 적용해 산정할 경우, 2004년 연말 회계보고서 기준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사 지분의 총합은 1조 6854억 원으로 3조 4307억 원인 총자산의 49.13%로, 50%에 미달해 금융지주회사 선정 기준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었다. 논란이 일었지만 당시 금융당국은 결국 이 같은 삼성의 회계기준 변경을 승인한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모피아’의 대부로 손꼽히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2005년 국정감사에서 회계기준 변경권한이 있는 한국회계연구원 산하 위원 7명 중 4명이 삼성 출신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런데 삼성의 회계기준 변경이 있기 직전 금감위 부위원장으로 증선위원장을 맡았던 이동걸 당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국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새로운 기업회계기준에 비춰 봐도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동걸 당시 위원은 현재 산업은행 회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물로 ‘모피아’ 출신인 최종구 현 금융위원장의 후임으로도 거론된다.
지금 삼바로직스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콜옵션 행사를 예상하고 자회사에서 관계기업으로 회계기준을 바꾼 것이 적법한지, 비상장사의 가치평가가 적절했는지다. 2005년 당시 삼성에버랜드 논란과 구조가 닮았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행사 전 콜옵션을 미리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도 있다. 삼성의 주장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 유력했다는 것이고, 금감원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삼성은 콜옵션 행사가 유력해져 가치산정을 위해 시가평가가 필요했다고 주장하고, 금융당국은 공정가치가 부풀려졌다고 판단한다.
콜옵션 행사로 삼성이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도 논란이다. 삼바로직스는 바이오젠과 공동경영 계약을 근거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해석했다. 통상 공동경영은 50 대 50 합작이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삼바에피스)는 50.1 대 49.9의 합작이라는 이유다. 주주총회 일반의결 요건이 50%+1주가 아닌 50.1%+1주라는 뜻이다.
삼바로직스가 가진 삼바에피스 지분은 발행주식의 95%다. 이 가운데 45%는 바이오젠에 넘길 지분이다. 콜옵션 행사 전에는 삼바로직스 소유다. 시가평가를 하면 당장은 삼바로직스에 평가이익이 반영된다. 하지만 그 이익은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사라지는, 부채다. 그런데 삼바로직스는 삼바에피스를 자회사에서 제외해 바이오젠에 넘기지 않을 보유지분 50%까지 시가평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계속 보유할 주식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평가이익이 삼바로직스에 귀속됐다.
그런데 이 같은 ‘시가평가’를 적용에도, 이후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유상증자다. 삼바로직스는 2015년 말 회계기준을 바꿔 취득가(주당 5만 원)로 장부에 반영했던 삼바에피스 지분을 시가(공정가치)로 재평가한다. 1157만 주의 가치는 4조 8086억 원으로 1주당 41만 5682원이 된다. 그런데 2015년 이후에도 줄곧 유상증자의 1주당 발행가를 회계기준 변경 전과 마찬가지로 5만 원으로 유지한다. 바이오젠은 2015년 2월을 끝으로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상법상 비상장 회사의 유상신주 발행가격은 액면가 이하만 아니면 발행가에 법적 제한이 거의 없다. 발행가격에 따라 발행주식수는 달라지지만 납입자본(자본금+자본잉여금) 자체에는 별 영향이 없다. 다만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발행할 때는 기존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증여세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상장사가 제3자에게 주식을 발행할 때는 전문기관에 가치산정을 의뢰하는 게 보통이다.
삼바에피스의 액면가는 1주당 5000원이다. 유상신주 발행가 1주당 5만 원은 액면가의 10배다. 삼바로직스의 장부상 삼바에피스 기업가치와 엄청난 차이다. 2016년 말 기준 삼바로직스의 삼바에피스 지분 장부가는 4조 8655억 원이다. 1주당 31만 2535원이다. 5만 원에 산 주식이 31만 원짜리가 된 셈이다. 2017년 3월에도 역시 같은 방식의 증자가 이뤄진다.
현재 삼바로직스가 보유한 삼바에피스 주식은 1957만여 주다. 지난 6월 말 바이오젠은 예고대로 콜옵션을 행사했다. 9월 말까지 삼바로직스는 보유한 삼바에피스 주식 923만 주를 1주당 8만 1140원씩 바이오젠에 넘긴다. 공교롭게도 회계기준이 바뀌기 전인 2014년 말까지 삼바로직스가 보유한 삼바에피스 지분도 922만 4200주다. 바이오젠에 넘기는 주식수와 거의 같다. 취득원가는 1주당 5만 7737원이다. 결국 삼바로직스 입장에선 시가평가 전 1주당 5만 7737원에 산 지분을 1주당 8만 1140원에 넘긴 셈이다.
삼바에피스가 시가보다 한참 낮게 유상신주를 발행한 덕분에 삼바로직스는 더 많은 주식수를 갖게 됐다. 그만큼 기존 보유주식 가치가 하락했으니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고 분명 합법적 발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삼바에피스가 상장을 한다면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