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의 고위 관료 섹스테이프 은폐’ 시나리오 집필…아내 “정보기관서 집 컴퓨터 정보 삭제”
게리 드보레와 아놀드 슈워제네거
[일요신문] 게리 드보레라는 시나리오 작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21년 전 실종된 후 20년 전에 사체가 발견된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 투성이고, 그의 죽음은 케네디의 암살과 비교되기도 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친구였고 재닛 잭슨의 연인이었던, 장르 영화를 장기로 삼던 작가는 왜 어느 순간 사라졌고, 또 갑자기 1년 만에 주검을 드러냈을까? 정말로 그가 몰던 자동차는 다리를 건너던 중 이탈해 강으로 떨어졌던 걸까? 진실은 알 수 없다.
실종 당시 현상금
1997년 6월 27일, 그는 오랜 동료인 배우 마샤 메이슨의 집에서 작업 중이던 드보레는 드디어 시나리오 최종 버전을 탈고하고 집으로 향한다. 뉴멕시코의 산타페에서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까지는 차로 약 14시간이 걸리는, 1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거리. 그는 밤까지 운전했지만 결국 중간에 모텔에서 숙박해야 했다. 이 상황을 아내 웬디에게 알렸던 시간은 하루를 넘긴 6월 28일 새벽 1시 15분. 운전하는 자동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걸어, 집까지 가려면 4시간 정도 남았다며 현재 있는 곳은 ‘바스토’라고 밝혔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게리 드보레는 실종되었다. 경찰은 6월 27일 밤 10시 15분에 드보레가 들렀던 캘리포니아 펜너 지역의 주유소를 비롯해, 14번 고속도로 등 드보레가 거쳤던 공간 주변을 수사했지만 얻은 건 없었다. 그런데 1년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마추어 탐정인 더글러스 크로포드라는 남자가, 드보레의 차가 캘리포니아 수로교 밑으로 굴러 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1998년 7월 9일, 경찰은 크로포드가 강물에서 드보레가 운전했던 포드 익스플로러를 건져냈다. 그는 밤길에 운전하다 사고를 당한 것일까? 하지만 의혹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게리 드보레와 아내 웬디
수많은 의혹에 유족들은 수사 결과 열람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이때 웬디는 마지막 통화 때 남편의 목소리가 다소 이상하며 불안했다며,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바로 정보기관의 존재였다. 웬디에 의하면 드보레가 실종된 후 집에 FBI, CIA, NSA, 국방부 등에서 찾아와 조사를 하며 컴퓨터에 있던 정보들을 모두 지웠다는 것이었다. 당시 드보레가 쓰던 시나리오는 파나마 침공 당시 CIA가 뭔가 큰 것을 덮으려 했다는 내용. 그것은 바로 노리에가가 가지고 있던, 미국 고위 관료의 섹스 테이프. 공개될 경우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충분히 파나마가 미국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1996년에 CIA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부서를 신설했는데, 그 리더가 바로 체이스 브랜든. 그는 드보레의 절친인 배우 토미 리 존스의 사촌이었다. 이후 드보레는 브랜든과 비밀리에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 목적은 알 수 없었다. 하나 분명한 건, 이전에 이미 드보레는 자체 취재를 통해 CIA 내부의 깊숙한 사정을 시나리오로 옮겨 놓았다는 것. 아마도 브랜든은 그 내용을 보았을 것이며, 이후 모종의 압력이나 수정 요구가 있었을 수 있다.
아직까지도 유족들의 수사 기록 열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태. 그가 실종된 지 20년이 지난 2017년엔 ‘손이 달린 작가’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을 제기했다. 영화 속에 너무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담으려 했던 드보레가 정보기관에 의해 제거되었고, 이후 사고사로 위장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 하지만 여전히 죽음의 원인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