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지적 귀닫고 자화자찬만
연기금의 맏형 격인 국민연금이 위기설에 휩싸였다. 연합뉴스
지난 6일부터 재공모를 실시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후임 자리에는 무려 30여 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공모에 16명이 지원한 것과 비교해 2배가량 지원자가 늘어났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지원자 평판 조회와 면접, 인사검증 등을 거쳐 임명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탓에 국민연금이 CIO 인사를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최근 CIO 공백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기금운용 수익률까지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 비해 올해 상반기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국민연금의 올해 1~4월 수익률은 0.89%(연 환산 1.66%)로 집계됐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 호황 덕에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으나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수익률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연금은 지난 4일 “2017년 기금운용 수익률 7.28%를 달성했다.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냈으며, 전년 대비 2.59% 상승했고 벤치마크(시장수익률) 대비로도 0.86% 초과하는 성과를 이뤘다”며 “높은 성과를 반영해 2017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성과급 지급률은 58.3%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자찬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는 코스피 연간 수익률이 21.8%로 2010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글로벌 주식시장이 호황이었다. 이에 힘입어 국민연금은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다른 연기금인 공무원연금(8.8%), 사학연금(9.2%) 등에 비해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다른 해외 연기금인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11.8%)와 노르웨이 정부연기금(13.7%)은 같은 기간 국민연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22일 4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 기금 고갈 시기가 2013년 3차 추계 때보다 3~4년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금 고갈 문제가 등장하면 기금운용 수익률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 수익률을 1%만 높여도 연금 고갈 시기를 8년 늦출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고투자 책임자인 CIO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올해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지난해보다 올해 세계 시장 전반적으로 투자 수익률을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 영향 탓”이라며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테지만 다만 CIO의 장기 부재가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CIO의 장기 부재는 기금운용의 효율성 및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수장의 부재가 투자 방향성의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황 연구위원은 “신속하게 CIO 선임을 마무리하는 것이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에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CIO의 부재 여부가 곧바로 수익률 하락이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CIO의 부재는 운용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CIO는 대체투자, 주식, 채권 등을 큰 그림에서 보고 자산배분 및 위험 조정, 관리 역할을 한다“며 ”종합적으로 조율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위험이 커질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현재 CIO의 부재에 대응할 각 부문 실장마저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본부장 자리 외에도 기금운용본부 해외대체투자실장, 주식운용실장, 해외증권실장 등 주요 보직 세 자리가 공석 상태다. 김재상 전 해외대체투자실장은 지난 5월 25일 임용됐으나 지난 5일 한 달여 만에 임용이 취소됐다. 지원 서류와 입증 자료가 일부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것이 검증 과정에서 확인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준규 전 주식운용실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합병에 찬성 근거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달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해임됐다. 조인식 전 해외증권실장은 강 전 기금운용본부장 사퇴 후 본부장 직무대리를 맡아왔으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에 협조한 직원들을 질타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6월 29일 내부 인사위원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은 것이 사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인력난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금운용본부 운용직 전체 278명 가운데 30%가 넘는 97명이 퇴사했다. 김 의원은 “기금운용본부 운용 직원의 역량은 국내 주식 운용 수익률로 귀결된다”며 “국민의 노후자금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장 임명의 관치인사 논란 배제, 독립적 운영장치 마련, 운용직 처우개선을 통한 본부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다정 기자 yroasdj@ilyo.co.kr
말 많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 뜯어보니…‘실탄’ 없는 ‘거총’ 효과에 의문 지난 7월 17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 초안이 공개되면서 국민연금의 태도 변화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연금이 공개한 초안은 앞서 거론된 안에서 한 발 물러난, 소극적인 면모를 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초안에서는 기업 경영 참여와 관련된 주주권 행사 내용이 제외됐다. 앞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에 포함됐던 ‘사외이사 추천 및 주주제안’과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이 빠진 것. 국민연금은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행사하고 이후 경영 참여 주주권 도입 여부를 추가 검토할 계획을 밝혔다. 기업 경영권 침해 문제를 우려한 재계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모양새다.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 행사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데다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는 2020년 검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튜어드십 코드가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도입되는 만큼 정권이 교체되면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초안이 발표된 공청회 자리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지난 3월 주총 시즌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재계를 긴장하게 한 것과 달리 실제 경영진 견제 카드는 거의 빠져 사실상 힘을 잃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까지 갈 수 있다는 압박이 있어야 기업에서 그 외 주주활동에 대해서도 성의 있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권 연금행동집행위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경영 참여를 빼는 것은 도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지난 26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안 의결이 불발됐다. ‘경영 참여’를 두고 양측의 공방이 거세졌기 때문. 한국노총·민노총과 참여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위원들은 ”도입 때부터 ‘경영 참여’를 선언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측 위원들은 ”경영 참여를 포함할 수 없다“고 맞섰다. 기금운용위는 오는 30일 6차 회의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다시 의결키로 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