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 없었다? CCTV 없는 곳? 모두 사실 아냐...외력 개입? 61m 높이에선 7~8m 거리 이동 가능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참.
창틀은 폭 약 65㎝ 높이 약 110㎝였다. 성인 1명이 드나들기 충분한 크기였다. 문제는 창틀까지의 높이였다. 바닥에서 창틀까지는 약 140㎝였다. 175㎝ 정도의 성인에게도 쇄골 부근에 위치할 정도로 어딘가에 딛지 않고는 오르기 힘든 높을 만큼 위치였다.
창틀 주변에 발을 지지할 곳은 딱 한 군데뿐이었다. 창틀과 바닥 사이에는 비상구 표시등이 자리했다. 비상구 표시등에 발을 살짝 올리자 비상구 표시등 오른편이 금세 내려앉았다. 비상구 표시등과 벽 사이를 벌려 확인했다. 벽과 비상구 표시등을 잇는 스크루 형태의 못 2개 가운데 오른쪽에 있는 못 1개가 바닥 방향을 향해 완전히 벽과 분리돼 있었다.
쉽게 분리되는 비상구 표시등과 신발 밑창 마찰 자국. 페인트 잔해물도 보인다.
못과 벽이 분리된 건 최근으로 추정됐다. 비상구 표시등과 벽을 고정했던 못 부분의 페인트 칠은 일부 벗겨져 있었다. 바닥에서는 벗겨진 페인트 잔해가 발견됐다. 잔해와 벽의 색상은 똑같았다. 벽과 못이 분리되며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파악됐다. 자세히 살펴 보니 비상구 표시등 주변에는 신발 밑창과 벽이 맞닿아 생긴 흔적도 보였다. 흡사 스키드 마크와 같은 형태였다. 아파트는 총 18층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려진 17층과 18층 사이의 비상구 표시등만 유독 벽과 분리됐다. 페인트 잔해, 벽과 신발의 마찰 흔적 역시 17층과 18층 사이에서만 목격됐다.
고 노회찬 의원이 발견된 곳은 투신했다고 알려진 창틀 정중앙을 기준으로 오른쪽 약 1.5m, 전방 약 7.8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대각선으로는 약 7.94m였다. 의혹이 제기된 건 창틀과 시신이 발견된 지점의 거리 때문이었다. 개인이 평지에서 최고 멀리 뛸 수 있는 거리도 7.94m가 나올 수 없는 까닭이다.
시신 발견 위치는 창틀 중간 기준 수직 지점에서 동북쪽 대각선 방향으로 약 7.94m 떨어진 지점이었다.
고 노회찬 의원은 키 167㎝에 몸무게가 65~70㎏로 알려졌고 이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의 높이는 약 61m로 전해졌다. 바람 저항이 없다는 가정 아래 등가속도 운동식으로 계산하면 지면 61m 위에서 속력 8.18㎞/h 이상 이동 시 7.8m는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로 나타났다. 8.18㎞/h는 경보보다 느린 속력으로 빠르게 걷는 정도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풍속은 1.5m/s였고 서북서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파트는 동북향이었다. 서북서풍이 동북향 건물을 만나면 동북쪽으로 빌딩풍이 생성될 확률이 높다. 고 노 의원은 투신 지점 기준 동북쪽 위치에서 발견됐다.
고 노회찬 의원 사망 직후 일각에서는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이용식 건국대 두경부외과 교수는 한 인터넷 방송에 등장해 “투신했으면 건물에서 1m 내외에 떨어져야 하는데 7~8m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것이 의아하다”며 ”이 정도 거리라면 사지를 잡고 밖으로 던지는 외력이 개입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살아있는 사람이 투신하면 주변이 ‘피바다’가 돼야 하는데 피가 거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다른 타살설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살해자가’ 의도적으로 CCTV가 없는 곳을 골랐다는 추가 내용도 있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의혹 제기자 2명과 주민.
현장에서는 타살 의혹을 제기하는 두 사람이 아파트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저기에서 몸을 던져 여기까지 떨어지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현장에 핏자국 하나 남지 않은 게 이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고 했다.
이에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주민은 ”아침에 시끄러워서 밖을 보니 이미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며 ”시신은 얼굴이 바닥 쪽을 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머리 쪽에는 외상이 별로 없는 듯 온전했지만 안면 쪽은 상해가 매우 심해 혈흔이 낭자했다. 보도 블록 사이로 피가 스며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도 블록은 사고 다음 날인 7월 24일 교체됐다. CCTV가 없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은 CCTV를 확인하고 고 노 의원이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탄 뒤 17층으로 올라갔다고 밝혔다. 이용식 교수는 2015년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때 사망했던 고 백남기 씨 죽음에 대해서도 “사람의 뼈는 수압으로 부서지지 않는다”며 ”경찰 물대포가 직접 사망 원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고 노회찬 의원이 7월 23일 오전 9시 38분쯤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에서 밖으로 투신해 숨졌다고 같은 날 밝혔다. 최초 발견자는 이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이 아파트는 고 노 의원의 모친과 남동생 가족이 사는 곳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참에서 발견된 고 노 의원의 외투 속에서 지갑과 신분증, 정의당 명함과 유서 등이 발견됐다. 유서에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 노회찬 의원은 포털 댓글 여론 조작 혐의로 수사 중인 ‘드루킹’ 김 아무개 씨(49)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유족의 요청으로 부검은 하지 않았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고 노회찬 의원의 모친은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고 노 의원 제수는 ”어머님께서는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신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