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압박 미리 피하고 경영 승계까지…일석이조 효과 노렸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2016년 4월 남매 간 지분 맞교환 이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각자 분야에서 경영 성과를 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삐에로 쇼핑’을 성공적으로 출범하면서 신사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정 총괄사장은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권 쟁탈전에서 승리하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두 남매가 공격적 투자로 함께 주목을 받으면서 총수 일가의 지분 향방에도 관심이 쏠렸다.
신세계 총수 일가가 보유지분에 대한 교통정리를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정재은 명예회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 주식 150만 주를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하면서다. 이로써 정 명예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은 각 0.68%(전 21.68%)와 21.44%(0.43%)로 변동됐다. 해당 지분 증여로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 2대 주주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1대 주주는 ㈜신세계로 45.76%를 보유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7월 27일 남은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같은 날 정용진 부회장도 보유 중이던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정 총괄사장 역시 신세계인터내셔날 주식 15만 주를 매각하면서 지분이 19.34%로 변동됐으나 여전히 신세계인터내셔날의 2대 주주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과 정 부회장의 지분 매각은 비주력 계열사 지분 정리 목적”이라며 “다만 정 총괄사장은 지난 4월 정 명예회장에게 증여받은 인터내셔날 지분과 관련해 세금 납부를 목적으로 지분 일부를 매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괄사장은 지분 매각을 통해 266억 4000만 원을 마련했다.
이명희 회장도 바쁘게 움직였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20일 보유 중이던 조선호텔 지분 1.09%를 전부 이마트에 매각했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 7월 10일에도 신세계건설(9.49%)과 신세계푸드(0.8%) 지분을 모두 이마트에 매각했다. 이날 정 명예회장도 신세계I&C 주식 2.33% 전량을 이마트에 넘겼으며, 정 부회장 또한 신세계I&C(4.31%)와 신세계건설(0.8%) 지분을 몽땅 이마트에 넘겼다.
총수 일가의 지분 정리로 이마트는 신세계I&C와 신세계건설 지분을 각각 35.65%(기존 29.01%), 42.7%(32.41%), 신세계푸드 지분은 46.87%(46.1%) 보유하게 됐다. 그룹 지주사 격으로 올라선 이마트의 최대주주는 이명희 회장으로 18.2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 부회장은 9.8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이 정 부회장에게 지분을 물려주기만 하면 경영권 승계가 확실하게 이뤄진다. 총수 일가의 지분 정리는 지배구조를 단순화시켰다.
재계에서는 신세계 총수 일가의 지분 정리가 경영승계 작업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지만 공정위의 압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강조하는 만큼 추후 문제가 될 구실을 아예 없애려는 시도라는 것.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월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 집단의 총수 일가들이 주력 계열사의 지분만 보유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빠른 시일 내 매각해주길 바란다”며 “법으로 강제할 순 없지만 총수 일가의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지분 보유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공정위의 조사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공정위는 현재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및 부당지원 행위 규제 강화 등이 포함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준비 중이다.
신세계는 그간 지배구조와 관련해 공정위의 압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주 35시간 근무제를 가장 먼저 도입하고 연 1만 명 신규채용으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는 등 정권 기조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신세계 총수 일가가 계열사 3곳의 지분을 털어낸 것 또한 같은 행보로 읽힌다.
신세계I&C와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 3곳은 비주력 계열사이자 동시에 내부 거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추후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공정위와 관계없이 지배구조 단순화와 주력 계열사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지분 정리가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면세 전쟁’ 승리한 신세계, 걸림돌은? 재계선 ‘승자의 저주’ 우려도 ‘면세 전쟁’에서 승리한 신세계가 지난 1일부터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 신세계는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조기 반납한 T1 면세사업권을 따냈다. 재계 일각에서는 신세계면세점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높은 입찰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국내 면세업계 부동의 1위 롯데면세점조차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다른 활로를 모색하고 나선 상황에서 신세계면세점은 3440억 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면세점은 이보다 670억 원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우리가 제시한 입찰가는 롯데의 절반 수준”이라며 “신라가 낮게 써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것이지만, 이익 달성 등을 확인하고 시뮬레이팅한 결과 합리적인 선에서 적어냈다”고 설명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