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0년 이내 영화 재개봉 수두룩…“더 큰 문제는 상업영화 스크린 독과점” 시각도
영화계 일각에서는 최근 몇 년간 불고 있는 재개봉 영화 열풍으로 최근 제작돼 개봉을 해야하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극장 상영관을 잡기 어려워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백소연 디자이너
과거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명작들이 다시 스크린을 찾아오고 있다. CJ그룹의 멀티플렉스극장 체인 CGV에 따르면 CGV에서 지난해 재개봉한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제리 맥과이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8마일’ ‘원스’ ‘록키’ ‘러브액츄얼리’ 등 27편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역시 ‘블레이드러너-파이널컷’ ‘라이프 오브 파이’ 등 4편이 이미 CGV 상영관에 다시 걸렸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이 재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극장과 외화수입배급사가 과거 인기를 끌었던 영화를 재개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성과 흥행성이 이미 검증된 ‘안전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재개봉한 ‘이터널선샤인’의 경우 관객 50만 명을 돌파하며 재개봉 열풍을 이끌었고, 2016년에도 ‘인생은 아름다워’ ‘500일의 썸머’ 등이 재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과거 35㎜ 필름으로 상영하던 영화들이 디지털로 복원되면서, 작은 수입배급사들도 영화를 수입하기가 쉬워진 점도 한몫했다.
CGV 관계자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명작 재개봉이 영화시장에서 하나의 틈새시장으로 자리 잡은 분위기”라면서 “개봉 당시 관람 기회를 놓쳤던 작품을 다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큰 스크린을 통해 고화질과 웅장한 사운드로 명작을 즐긴다는 점도 강점이다. 그러다보니 재개봉 영화엔 충성도 높은 고정 수요층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극장들의 명작 재개봉 열풍에 영화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전 영화들이 재개봉하면서 저예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이 개봉관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독립영화 감독은 “감독을 떠나 영화팬의 입장에서는 명작 영화가 재개봉하면 다시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좋다”면서도 “하지만 극장 상영관과 상영시간은 한정돼 있다. 특히 이들 재개봉 영화 중에는 예술영화전용관이나 CGV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과거 영화들에게 밀려 독립영화들은 개봉관 잡기가 쉽지 않다. 관객들에 첫 선을 보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및 배급을 담당하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저예산 독립영화 관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주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길 원한다. 하지만 극장 입장에서는 수익면에서 볼 때 실험적인 독립영화보다 안정적인 재개봉 영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안 그래도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이 극장 잡기가 힘든 상황이었는데 재개봉 영화까지 치고 들어와, 종사자들은 고충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CJ CGV 측은 명작 재개봉이 예술영화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CGV 관계자는 “CGV는 재개봉 영화는 CGV 내 예술영화전용관인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하지 않는다. 아트하우스와 일반 상영관 편성은 아예 팀이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며 “CGV에서 재개봉 영화 때문에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롯데시네마의 경우 지난해 재개봉 영화는 ‘이프 온리’와 ‘노트북’ 2편뿐이었고, 올해는 한 편도 없었다. 반면 다양성 영화는 112편이 상영됐다”며 “따라서 재개봉 영화 때문에 다양성 영화가 개봉관 잡기가 어려워졌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궁극적으론 상업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독립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결국 한정된 상영관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중요하다. 재개봉 영화가 늘어나는 것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들이 상영관을 싹쓸이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관객들의 다양한 볼거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스크린 독과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명화 재개봉을 단순히 흥행수익을 위해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내 한 영화 상영 기획 프로그래머는 “영화는 문화콘텐츠이기 때문에 반짝 개봉했다가 사라지는 소비재처럼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영화가 재개봉을 통해 다시 소환되고, 관객들에 되새김되고 재해석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영화가 다시 불려올 때는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있어야 한다. 영화가 다시 소환될 때는 눈에 보이건 안보이건 시대 변화에 따른 계기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떤 영화들은 그런 게 보이지 않으면 ‘왜 굳이 지금 재개봉하지’라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CGV에서 재개봉한 영화 31편 중 2000년 이후 제작된 영화가 22편에 이른다. 첫 개봉한 지 10년 이내의 영화도 12편에 달했다.
이어 프로그래머는 “어떤 영화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재개봉돼야 하는가를 관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며 “단지 과거에 흥행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 때문에 안일하게 재개봉한다면 그건 영화를 다시 한 번 소비재로 소모하는 것뿐이다”라고 우려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