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창조자, 아내·여제자와 동거…원더우먼에 본디지 등 즐긴 여제자 모습 반영
윌리엄과 엘리자베스, 그리고 올리버
표면적으로는 윌리엄 마스턴이 드러났지만 그의 심리학 연구엔 항상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동행했다. 인간 심리와 행동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던 시기, 그는 터프츠 대학에서 강의했고, 이때 여학생 한 명을 만난다. 바로 올리버 번. 그녀는 마스턴 교수의 실험에 조교로 참여했고, 이때부터 세 명의 독특한 관계가 생겨난다.
올리버 번에겐 당시로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인 에델 번은 1910년대에 여성의 자율적인 출산 조절을 주장했던 인물.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미국 최초로 산아 제한 클리닉을 열었고 데모와 단식 투쟁에 앞장섰으며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에델 번의 언니, 즉 올리버 번의 이모는 마거릿 생거. 여성의 몸을 해방시켰다고 평가되는 생거는, 아마도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일 거다. 그녀는 여성의 몸은 여성이 주인이라는, 20세기 초만 해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주장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던 인물이었다.
윌리엄과 엘리자베스와 올리버가 이룬 대가족
이런 진보적인 배경 속에서 자란 올리버 번은, 사회적 통념이나 전통적 가족 관계에 얽매이지 않았다. 처음엔 윌리엄 마스턴 교수의 조교가 되었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정작 올리버 번이 끌린 사람은 윌리엄의 아내이자 동역자인 엘리자베스 마스턴이었다. 결국 세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폴리애머러스’(polyamorous), 즉 비독점적 다자연애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192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선 용납될 수 없는 파격이었다. 올리버와 엘리자베스는 동성 연인이었고, 엘리자베스와 윌리엄은 법적인 부부였으며, 윌리엄과 올리버 역시 애정의 관계였다. 올리버와 엘리자베스, 두 여성은 모두 윌리엄 마스턴의 아이를 낳았고, 그들은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른, 그리고 그 두 어머니는 연인인 대안적이며 급진적인 가족 형태였다.
영화 ‘원더우먼 스토리
노년의 엘리자베스와 올리버
원더우먼에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창조자인 윌리엄 마스턴은 54세의 나이로 194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엘리자베스와 올리버는, 당시 법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동성 부부로서 네 아이를 함께 키우며 긴 세월을 함께했다. 올리버 번이 1904년생이고 엘리자베스 마스턴이 1893년생이니 11살 차이. 하지만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은 어린 올리버였다. 1985년에 81세로 세상을 떠난 올리버.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1993년, 100세의 나이를 채우고 유명을 달리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