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촌언니에 상습 성추행 당해…아버지는 딸의 돈에만 혈안…바비 브라운과 결혼 ‘치명타’
2012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전설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곧 영화로 돌아온다.
[일요신문] 올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한국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이 영화는 ‘휘트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12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작품엔 우리가 휘트니 휴스턴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어릴 적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휘트니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특히 죽기 몇 년 전 보여주었던 자기 파괴적인 모습들의 근원엔 어릴 적의 바로 그 일이 있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소울 가득한 뮤지션 집안에서 태어났다. 재능은 모계 쪽에서 왔다. 어머니인 시씨 휴스턴은 엘비스 프레슬리나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빅 스타들의 백 보컬로 유명했던 인물. 딸의 음악적 재능을 일찌감치 깨닫고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시켰다. 시씨 휴스턴의 언니인 리 드링커드는 가스펠을 주로 불렀던 ‘드링커드 싱어스’의 매니저였다. 이 그룹의 중심은 시씨 휴스턴. 리 드링커드의 두 딸이자 시씨와는 이모-조카 사이인 디온 워릭과 디디 워릭도 멤버로 참여했다.
어린 시절의 휘트니 휴스턴
백보컬로 날리던 시씨 휴스턴은 톱스타들의 투어를 따라다녀야 했고, 그럴 때마다 아들인 게리와 마이클 그리고 어린 딸 휘트니를 친척과 이웃에게 맡겨야 했다. 휴스턴 패밀리의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이때였다. 가족 내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가해자는 휘트니의 이종사촌 언니인 디디 워릭. 언니라고는 하지만 1942년생인 디디 워릭은 1963년생인 휘트니 휴스턴보다 21세나 많았으니 거의 엄마뻘이었다. 휘트니는 7~9세 때 디디 워릭에게 아동 성추행을 당했다. 그리고 디디 워릭은 휘트니보다 6세 많았던 오빠 게리도 성추행했다. 긴 세월 동안 감춰졌던, 휴스턴 패밀리의 어두운 비밀이었다.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 계기는 ‘휘트니’의 감독 케빈 맥도널드의 직감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접하면서 그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녀의 삶에선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 이때 과거에 다큐 작업 경험을 떠올렸다. 맥도널드 감독은 어릴 적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어떤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 바로 그 감정을 휘트니 휴스턴의 인생에서도 느꼈던 것. 이후 인터뷰이들에게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엔 긴 세월 동안 휘트니 곁에 머물며 그녀를 도왔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던 메리 존스라는 여인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어느 날 휘트니는 메리 존스를 바라보며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메리, 난 어릴 적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남자가 아닌 여자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죠.” 20대 후반의 디디 워릭은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사촌동생 휘트니 휴스턴에게 몹쓸 짓을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였을까? 휘트니 휴스턴은 해외 투어를 다닐 때도 항상 딸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다녔다. 자신이 겪은 일이 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어린 휘트니에게 성추행을 한 21세 연상의 사촌언니 디디 워릭. 그는 휘트니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휴스턴이 가족에게서 받은 부정적 영향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빠들에 의해 틴에이저 시절부터 접했던 마리화나와 마약들은 결국 그녀의 삶을 삼켜버렸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버지 존 휴스턴은 딸의 돈에 혈안이 된 인물이었고, 수많은 가족들이 휘트니 휴스턴이 버는 돈으로 흥청망청 살고 있었으며, 반면 그녀는 점점 가난해졌다.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은 치명타였다. 가수였던 바비 브라운은 사생활에선 망나니에 가까웠고,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빠가 되기엔 한 없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휘트니는 바비와의 결혼 생활을 15년이나 이어간다. 이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깨어선 안 된다는,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생각 때문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마약 때문에 요양원을 드나들었고, 생활고 때문에 고통 받았으며, 망가진 육체로 무대에 서 야유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욕조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어 세상을 떠났다. 진정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인생의 말년에 그토록 자기 학대적인 삶을 살았을까? 어쩌면 그 근원에, 40여 년 전에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른다. 스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친척 언니에게 당한 동성 아동 성추행. 한편 가해자인 디디 워릭은 10년 전인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