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종합 2위 무산…국제 무대 속 한국인 지도자 맹활약
대한민국 유일 육상 금메달을 획득한 정혜림. 연합뉴스
[일요신문] 44억 아시아인의 축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대회 후반기에 이르렀다. 개막 14일차인 8월 31일 현재 야구, 농구, 축구 등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구기종목과 복싱, 유도, 탁구 등 일부 종목이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일정이 막바지로 다다른 시점에서 이번 대회를 되돌아봤다.
#종합 2위 수성 실패, 1994년 이후 처음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 종합 스포츠 이벤트에서 여전히 최대 관심사는 ‘메달’이다. 대회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국가별 메달 집계 순위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종합 3위로 이번 대회를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종합 2위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됐다.
24년 만에 3위로 밀려난 데에는 ‘기초종목 육성 실패’가 이유로 거론됐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야기다. 한국이 육상·수영·체조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하는 반면 중국은 39개, 일본은 25개를 따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낸 정혜림(여자 100m 허들), 김서영(200m 개인 혼영), 여서정(여자 도마) 등은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선수 발을 직접 마사지 해주는 박항서 감독. 사진=트란 딘흐 트롱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의 메달 획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효자종목’의 부진도 한몫했다. 태권도는 금메달 최대 10개를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는 5개였다. 양궁도 전체 금메달 중 절반인 4개만을 획득했다. 여자 양궁 리커브 개인전에서는 아시안게임 최초로 한국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의 메달밭이었던 이들 종목의 변화는 이전부터 감지됐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지면서 국가 간에 상향평준화가 진행됐다. 대회마다 경기장에서 각국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 지도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더 이상 어색한 장면이 아니다. 이번 대회에 신설된 태권도 품새 종목에서는 모든 메달리스트의 지도자가 한국인이기도 했다.
한국인 지도자의 활약은 태권도와 양궁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남자 축구에서는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이 돌풍을 일으켰다. 베트남은 조별리그를 넘어 토너먼트에서도 승승장구하며 4강에서 고국을 상대하기에 이르렀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제자인 베트남 수비수가 박 감독으로부터 직접 발 마사지를 받는 장면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드민턴 레전드’ 박주봉 감독은 앞서 일본 여자 배드민턴 대표팀을 이끌고 복식 8강에서 한국을 만나 승리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일조한 박충건 베트남 사격 대표팀 감독도 제자들을 시상대 위에 올렸다. 이외에도 ‘헐크’ 이만수 감독은 라오스 대표팀을 이끌고 대회에 나섰다. 다만 “1승을 달성하면 다시 ‘팬티 세리머니’하겠다”던 공약은 이루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단일팀 성과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또 다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됐다. 올림픽에 나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성적 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면 이번 대회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여자 농구 단일팀 구성은 대표팀의 확실한 전력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의문부호가 달렸던 북한 선수들은 실력으로 화합 차원을 넘어선 단일팀 구성 필요성을 증명했다. 특히 로숙영은 팀 핵심으로 활약하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최소 은메달을 확보하며 단일팀은 또 하나의 메달을 추가하게 됐다.
카누 용선(드래건 보트)에서는 단일팀이 국제 종합 스포츠 이벤트 사상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달성했다. 시상식에서는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남북은 여자 500m 금메달, 남자 1000m, 여자 2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메달을 합작한 이들은 지난 28일 작별을 고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시안게임 폐막과 동시에 경상남도 창원에서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도 북한 선수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향후 남북 스포츠 교류가 어떻게 전개될지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대회 품격 떨어뜨리는 허술한 운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숱한 스포츠 스타들이 뜨고 지는 가운데 대회를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대회 조직위원회의 허술한 운영이 아쉬움을 사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운영이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학범 감독은 대회 시작 이전부터 씁쓸함을 맛봤다. 7월초 나온 조추첨 결과가 2회에 걸쳐 바뀌었다. 상대가 바뀌면서 일정도 뒤집어졌다. 수시로 바뀌는 일정에 대표팀은 비행기 티켓 예매에 애를 먹기도 했다. 대회 현장에서도 사고가 이어졌다. 배드민턴 경기장에서는 전광판 이상으로 경기 도중 점수를 확인할 수 없었고 펜싱경기장에서는 조명이 꺼져 선수들이 경기를 중단해야 했다. 시범종목인 e스포츠 경기에서도 네트워크와 서버 문제 등으로 경기가 수분 이상 중단됐다. 중단된 시간이 길어지며 선수가 하품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심판진에 항의하는 ‘사격 황제’ 진종오. 연합뉴스 ‘사격 황제’ 진종오도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피해를 입었다.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경기 직전 시험 사격에서 모니터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이와 관련해 항의했지만 심판은 경기를 그대로 속행했다. 심리적으로 흔들린 진종오는 최종 5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에 채택된 3X3 농구는 혼란이 특히 심했다. 23세 이하 선수만 참가가 가능했지만 경기 일정을 하루 앞둔 시점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 연령을 훌쩍 넘는 선수를 내보내려했다. 경기 당일에도 조편성, 경기 일정 등이 뒤죽박죽이었다. 이외에도 시상식에서 태극기의 좌우가 뒤바뀌어 걸리고 대회 측이 제공하는 자료에 잘못된 선수 정보가 적힌 것은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준이다. 팬들은 무엇보다 공정한 조건 속에서 경기가 열리기를 원한다. 대회의 품격은 대회 개최국이 스스로 만든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