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파업권 이용해 경영까지 간섭” 헌법 보장된 노동3권 부정하는 발언을…
노무법인 동화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 문서.
‘일요신문’은 최근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과 ‘노사협의회 설치 및 운영’이라는 제하의 문건을 단독 입수, AIG손보 한국지사 사측이 노조와해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관련기사 [단독입수] 삼성에 이어 또…AIG손보 ‘조직적 노조와해 시도’ 문건 공개).
이들 문서는 현재 사내에 존재하는 노조를 와해하고 노사협의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해 노조를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노조와 노사협의회 공존-노사협의회 주도-노조 유명무실화’ 등 업무단계별 추진 일정 시나리오도 구성돼 있었다.
지난 2012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 문서에는 작성자로 노무법인 동화의 이름이 명시돼있다.
반면 ‘노사협의회 설치 및 운영’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문서에는 작성자나 법인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AIG손보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법무법인 김앤장이 작성했다고 밝혔다.
두 개의 문서는 AIG손보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시도를 기획했음을 알 수 있는 정황이다. 또한 이러한 계획에 ‘법을 다루는’ 대형 노무법인과 법무법인이 나서 시나리오 컨설팅 문서까지 작성해 준 것이다.
업계의 한 노무사는 “이렇게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와해할 수 있는 방안을 자문해준 것은 과거 다수 기업의 노조 파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혐의와 비슷하다”며 “부당노동행위의 공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역시 “의혹에 대해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혐의가 밝혀진다면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며 “법무법인과 노무법인 역시 범죄행위를 컨설팅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문서에 대해 노무법인 동화 측은 본인들의 법인에서 작성한 게 맞는 것 같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노무법인 동화의 고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한국 노사관계 문제점은 대화가 단절돼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한국의 법상 임금인상·근로조건 등 교섭사항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외 경영결정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해서도 노조는 파업권을 내세워 요구하고 간섭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노사협의회의 필요성을 내세웠다고 했다. 앞서 관계자는 “노사협의회는 파업권이 없다. 노무법인 입장에서는 회사가 노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화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자 노사협의회를 제안하는 것이다. 대신 노사협의회가 직원 모두를 대변하는 대의기구가 되도록 회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과 달리 문서에 ‘견제세력’ ‘유명무실화’ ‘대체’ 등 노조와해 시도가 의심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측을 설득하기 위한 문서다보니 그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답변에 대해 노무법인의 고위 관계자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인식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노무사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노무법인에서 파업권을 부정하는 등 노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법무법인 김앤장 측은 노조와해 컨설팅 문서 작성 사실 여부에 대해 “확인이 안 되고 있다”고 답을 피했다.
특히 이들 법인들은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컨설팅을 해주면서 억대의 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법인 동화의 경우 문서에 노조 유명무실화-노사협의회 대체를 위한 업무단계별 시나리오가 실제 추진되면, 과정 일정별로 관리 비용을 월 300만~800만 원으로 책정을 해뒀다. 또한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진행하면서 월 수천만 원의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수임료는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노무업계에서 수임료를 받는 방식과도 다를뿐더러 비용도 과도하다는 것이다. 앞서 노무사는 “일반적으로 관리 단계별 월마다 비용을 수백만 원씩 책정하지는 않는다”며 “이걸 통해 노무법인이 부당노동행위 프로젝트에 가담하려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서에 월 300만~800만 원 관리비용을 책정하는 등 비정상적 보수를 수임한 것에 대해서 앞서 동화 노무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문서 작성한 노무사 개인이 ‘이 정도 보수 받아야겠다’ 생각해 적은 것 같다”며 “하지만 제안만 하고 이대로 실제 진행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수임료가 과도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노무사는 “노무 보수는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계약에 따라 자율에 맡겨져 있다”며 “동화의 형식으로 보수를 받기도 한다. 사측의 수임이라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보수액도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회사 차원 노조 와해 의혹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표 법무법인이 억대 비용을 받고 부당노동행위 공모를 한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