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법무법인 ‘단계별 시나리오’ 등 컨설팅 문서 작성…법무법인 수임료 챙긴 정황도
AIG손해보험 한국지사가 회사 차원에서 노조와해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AIG 뉴욕본사 로고. 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일요신문’은 최근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이라는 제하의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이 문서는 지난 2012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노무법인 동화’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문서에서는 노사관계 운영방향에 대해 ‘노사관계 불합리한 관행 및 구조개선’ ‘회사 역량 강화를 통한 바람직한 노사관계 프레임 확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현재 존재하는 노동조합을 와해하고 노사협의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해 노조를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노조와 노사협의회 공존-노사협의회 주도-노조 유명무실화’ 등 업무단계별 추진 일정 시나리오도 구성돼 있었다.
우선 노조 집행부를 관리하기 위해 견제세력을 육성하고, 비민주적 운영에 대한 비판여론을 형성한다고 적고 있다. 이어 사 측을 대리할 우수 대의원을 확보해 육성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몇몇 부서에 대해 인력을 분리하거나, 관리를 통해 노조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도록 해 조합원을 축소시키는 방안도 소개했다.
이 문서뿐만 아니라 ‘노사협의회 설치 및 운영’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문서도 확보했다. 역시 AIG손보 내 노조 와해 및 노사협의회 설치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 문서에서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 과정에서 노조 등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행정해석에 들어가며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노조가 문제삼을 질의에 대한 답변도 가이드해 주고 있었다.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이 문서에서는 노조의 비중립적 처사를 공론화해 노조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을 위한 선관위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고, 이에 대해 보이콧을 전개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중립성을 문제 삼아 사 측도 개입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문서에는 구성 과정에서 위원 선발 과정에서 회사 개입 이슈가 제기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사 측의 노조 개입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문서에는 작성자나 기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AIG손보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작성했다고 밝혔다.
두 개의 문서는 AIG손보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시도를 기획했음을 알 수 있는 정황이다. 또한 이러한 계획에 ‘법을 다루는’ 대형 법무법인이 나서 시나리오 컨설팅 문서까지 작성해 주면서 돈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한 노무사는 “이렇게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와해할 수 있는 방안을 자문해준 것은 과거 다수 기업의 노조 파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혐의와 비슷하다”며 “부당노동행위의 공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러한 노조 와해 시도가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AIG손보 노조 관계자는 “임원 상당수가 아직도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은 상사들과의 대화에서 노조와 관련해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는 사례를 진술하기도 했다.
매니저 직급인 A 씨는 본부장이 자신의 방으로 부르더니 “노조에 속해 있냐. 노조원이 휴먼 매니지먼트가 되겠냐”며 “A 씨는 다른 부장 밑으로 들어가 일부 업무만 맡고, 인사관리를 포함한 대부분 업무는 그 부장이 하는 것으로 하라”는 이해하기 힘든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A 씨는 노조원이라 인사관리를 못하게 하는 조치라고 생각했고, 노조 탈퇴를 하지 않으면 본부장이 이런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 본부장은 부임 이후 매니저 미팅이나 개별 면담 과정에서 A 씨에게 면박과 압박을 계속했다고 한다. 노조 집행부도 아닌데 노조간부들과의 식사에 A 씨를 포함시켜 노조에 부정적인 관점에 대해 지명하며 묻기도 하고, 눈앞에서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았으며, 미팅에서 같은 질문을 계속 해도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직원 B 씨의 경우 노조에 재가입을 하면서 “SIU(보험사기조사팀) 소속 당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탈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AIG손보 관계자는 “문서 작성 시기가 2012년이다. 이에 작성 경위와 사실관계 등 파악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확인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의 회사 차원의 노조 와해 의혹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보험그룹인 AIG손보의 한국지점에서도 이러한 혐의가 불거지면서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