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부터 3등급까지 끼리끼리 교류…구심점 없는 그들 ‘탈박’하고 각자도생
‘친박(친박근혜)계’의 수장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1년 반 동안 구속된 상황이다. 구심점 없는 계파에서 친박 정치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지난해 9월 28일 당시 친박계 의원 16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 부당성을 주장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친박계 중 일부는 아직도 친박이라는 이름으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이 친박계였던 사실을 부정하거나 또는 ‘과거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과거 자신이 친박계라고 말하던 한 국회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친박계가 대체 어디 있느냐.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데 박근혜 없이 친박계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냐. 그건 언론에서 만든 구도일 뿐이다. 친박이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구심점인 박 전 대통령이 구속으로 수감돼 있지만, 친박 정치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자유한국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친박계는 ‘피라미드’처럼 등급이 나뉜다. ‘원로그룹’부터 시작해 1, 2, 3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서로의 그룹 내에서 교류가 이뤄지고 그룹을 초월한 소통은 어렵다.
맨 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원로그룹은 대부분 잊힌 인물들이다. 고 김용환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은 박정희 정부 때부터 재무부 차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그를 지지하고 돕는 ‘7인회’의 좌장 역할을 했다. 한때는 박 전 대통령과 한없이 가깝던 사이였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최태민 일가를 멀리하라’는 조언을 했다가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고문은 지난해 8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친박계의 좌장’이라고 불리는 서청원 의원도 원로그룹이다. 그는 1998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내던 당시 대구 달서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박 전 대통령을 만나며 친박계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서 의원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참패하자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났지만 아직도 친박계들 사이에선 ‘맏형’이라고 불린다. 서 의원은 현재 또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지막 대표 법안 발의도 지난해 12월로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7인회 소속인 김용갑 한국당 상임고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인물이었다. 한때는 박 전 대통령의 탄생을 도왔던 인물이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 그는 “우리가 알던 박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실망감을 토로했다. 그 역시 김용환 고문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 인연이 끊겼다. 7인회 중 한 명이었던 강창희 전 국회의장도 친박계 원로그룹으로, 그는 지난 6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오랜만에 소식을 알렸다.
원로그룹이 ‘정치인 박근혜’ 탄생의 주역이었다면, 1등급 친박계는 보통 3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이며, 이들은 박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했다. 박근혜 정부 때 핵심 인물이었던 최경환 전 한국당 의원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경제특보로 정치에 입문했고, 2004년 당 수도이전대책특위 간사를 맡으며 박근혜 당시 대표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후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2012년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며 박 전 대통령의 신뢰를 등에 업었다. 이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공천권을 휘두르며 박 전 대통령의 실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부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 원을 뇌물로 수수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등급 가운데 윤상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2002년 재보궐 공천에서 떨어졌을 때 박근혜 대표가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점심을 사준 것을 인연으로 친박계가 됐다. 김태흠‧유기준‧정갑윤 의원도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1등급이며, 현직 국회의원이다. 1등급 친박계는 보통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거나 청와대와 ‘다이렉트’ 접촉이 가능할 정도이며 청와대에서 비서관급 이상의 인물들과 교감할 정도로 막후 실세노릇을 해왔다고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는 당시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그리고 ‘문고리 3인방(안봉근‧이재만‧정호성)’과 수시로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 때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이정현 의원도 1등급으로 분류된다. 그는 PK(부산‧경남)가 아닌 호남 출신이었고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이 적었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요직에 꾸준히 기용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그 뒤로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등급은 재선 또는 3선 의원들로 이장우‧김진태 한국당 의원과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이 포함된다. 3등급에는 박근혜 정부의 백승주 국방부 차관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장관급), 곽상도 전 민정수석, 유민봉 전 국정기획수석 모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총선 때 공천 또는 비례대표 번호를 부여받아 국회로 입문했다. 2‧3등급은 모두 현역 국회의원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덕에 국회의원 됐으니 충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원로그룹부터 1‧2‧3등급으로 나뉘는 친박계는 현재 구심점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기 때문이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다. 하지만 다음 총선을 위해 나름의 생존싸움을 하고 있다. 일례로 친박계는 ‘친박계’와 ‘비박계’라는 용어를 버리고 그 대신에 ‘잔류파’와 ‘복당파’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정치적 생명이 끝난 박 전 대통령의 색채를 지우는 동시에,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고,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오는 동안 자신들은 당의 자리를 지켰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이정현 의원과 조원진 의원이 아무리 한국당을 탈당했다 할지라도 그래도 친박은 친박이다. 모두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박의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