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진천 도로서 차 발견 뒤 메모 ‘테러’…면사무소로 몰래 옮겼지만 또 찾아내
한 시민이 주차된 레니게이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일요신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렇게 살지 마세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세요.”
지난 12일,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한 대로변 공터에 ‘지프(Jeep)’ 사에서 만든 빨간색 ‘레이게이드’ 차량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차량 외부에는 그것이 빨간색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메모지가 붙었다. 메모지에는 대부분 앞선 글귀처럼 레니게이드 차주를 비난하는 내용이 적혔다. 차량 운전석 쪽 출입문 앞에는 과자가 담긴 일회용 접시와 하얀색 꽃이 놓였다. 땅콩 통조림 위에 올려진 모기향까지 더해져 차량 주변은 초상집을 연상케 했다. 조수석 쪽 앞바퀴는 펑크가 났는지 푹 꺼진 모습이었다.
주차된 차량 뒤편에는 녹색 텐트가 쳐져 있었다. 텐트와 차량 사이에는 유명 연예인 입간판이 세워졌다. 입간판에는 “필_보배드림 정의 구현단_승, 레니 사건 특별수사본부 지휘통제실”이라고 적은 팻말이 붙어있었다. 텐트 안팎에는 각종 음료와 돗자리, 의자들이 가득했다. 차량과 텐트 사이에 놓인 100리터 쓰레기봉투엔 빈 음료수병과 캔이 절반 이상 차 있었다.
차량 외부(오른쪽 사진)에는 레니게이드 차주를 비난하는 내용이 적힌 메모지가 많이 붙었다. 조수석 쪽 앞바퀴(왼쪽 사진)는 펑크가 났는지 푹 꺼진 모습이다.
1시간 사이 차량 4대가 이곳을 찾았다. 탑승자들은 이곳에 주차된 레니게이드 차량을 천천히 둘러보다 떠났다. 차량 뒤편에 구비된 메모지와 필기구로 글귀를 써서 차량의 빈 곳을 메우기도 했다. 직장 교육차 진천에 들린 심 아무개 씨(35)도 점심시간 이곳에 들렀다. 심 씨는 “인터넷에서 ‘레니게이드 사건’을 접했다”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가 있는데 그런 욕설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운전자와 탑승자를 확인하고 태도가 돌변한 것이 더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그냥 돌아가시면 되잖아요. 아까부터 왜 그렇게 빵빵거리는데? 쪽X리, 이 X발 토요타 타고 다니면서, 일본 차 타고 다니면서 이 쪽X리 개 같은 X이.”
이 빨간 레니게이드 차량에 얽힌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흘러간다. 진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차량의 차주 A 씨(42)는 지난 6월 16일 오후 8시쯤 충북 진천군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차를 정차한 뒤 뒤따라오던 ‘토요타’ 사 캠리 차량 운전자 B 씨(여·40)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B 씨가 그곳으로부터 약 200m 떨어진 교차로에서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였다. 앞서 B 씨는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를 확인하고 자택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수초 뒤에 교차로 우측에서 A 씨 차량이 우회전해 진입했다. B 씨는 경고성으로 경적을 울렸다. 당시 B 씨 차량 뒷좌석에는 각각 6세, 4세의 B 씨 아이가 탑승하고 있었다. B 씨는 A 씨를 경찰에 모욕죄로 고소했다.
경찰은 지난 7월 30일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진천경찰서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에 혐의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어 참고인 조사나 피해자와 가해자 대면조사가 불필요했다”면서 “모욕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합의하면 사건이 종결되지만 피해자가 피해 금액을 변제받겠다는 의지가 없고 가해자도 선처를 호소하거나 고소를 취하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B씨 남편은 사건 내용을 담은 글과 당시 상황을 녹화한 블랙박스 영상을 지난 4일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보배드림’에 공개했다.
B 씨 남편은 사건 내용을 담은 글과 당시 상황을 녹화한 블랙박스 영상을 지난 4일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보배드림’에 공개했다. B 씨 남편은 “9월 4일 형사조정 날이었습니다. 피의자도 조정하고 싶다고 했고 와이프는 본인은 무서워서 가지 못하니 저에게 대신 가서 사죄를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면서 “회사에 연차를 내고 검찰청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피의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게시물에 적었다. 게시물에 따르면 A 씨는 형사조정에 당사자가 아닌 남편이 참석한 것을 문제 삼아 이후 조정을 거부했다.
“레니게이드 찾았습니다.”
지난 5일 오전 2시쯤,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혁신도시 근처 도시계획도로에서 가해자 차량이 발견됐다. 네티즌들이 가해자를 찾아 나선 결과물이다. 이 차량을 발견한 네티즌은 주차된 차량을 찍은 사진을 ‘보배드림’에 게시했다. 과거 화물차 과적 단속 검문소에서 현재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주차공간으로 이용되던 공터가 ‘레니게이드 사건’의 성지가 됐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이 이곳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같은 날 저녁 네티즌 가운데 일부가 이곳에 상황실을 설치했다. 레니게이드 차주를 찾고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려는 목적이었다. 차량이 주차된 장소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 C 씨는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일대에 차가 꽉 찬다”고 전했다.
“애들 데리고 저 빨간 차 앞에서 인생 교육 시킨다는디, 그게 무슨 인생 교육이여.”
인근 주민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차 현장 인근 주민 C 씨는 “저 차주가 욕한 건 잘못인데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라며 “앞에서 작물도 실어 나르고 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니 불편하다”라고 했다. 주민 D 씨도 “여기(진천) 사람들이면 서로 아는 사이라 문제가 쉽게 해결될 텐데 혁신도시에는 외지 분이 많아서 조정이 쉽지 않나 보다”면서 “두 분이 사과하고 빨리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아파트 주민들은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인터뷰를 요청했던 5명 가운데 4명은 인터뷰를 피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아파트 주민 E 씨는 “대체로 주민들이 사건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다”면서 “현재 아파트 분양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서 집값 걱정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주차된 차량 뒤편에 녹색 텐트가 처져 있다. 텐트 안팎에는 각종 음료와 돗자리, 의자들이 가득했다.
“레니게이드 차량, 불법점유로 규제 가능.”
차량이 주차된 곳 인근 주민들은 A 씨를 자주 봤었다고 얘기한다. 대략적인 직업도 알고 있었다. 주민 C 씨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차주를 종종 봤다”면서 “하는 일의 특성상 도로에 차가 없는 새벽 4~5시쯤에 여기에 오곤 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가 지인에게 부탁해 주차 현장에서 차량을 빼 오려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A 씨의 차량으로 지목된 레니게이드 차량도 A 씨가 아닌 법인 소유라고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차량의 소유주인 법인과 A 씨의 관계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경찰 역시 이 부분까진 수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최소 8일째 도시계획도로에 주차된 이 차량은 문제가 없을까. 진천군청 관계자는 “도시계획도로에 일시 주차가 아닌 장기 주차를 할 경우, 점용에 해당한다. 점용하려면 도로법에 의한 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점유한 사실이 확인되면 불법점유로 규제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오후 6시쯤 한 네티즌이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 덕산면사무소로 옮겨진 레니게이드 차량 사진을 게시했다.
“스티커가 붙여진 빨간 차량이 현재 면사무소 주차장에 있다.”
그런데 지난 13일 이 도시계획도로에 추차 중이던 레니게이드 차량이 돌연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차량이 인근 덕산면사무소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누가, 어떻게 그 차를 옮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도로 관할부서인 진천군청 지역계획팀과 교통팀 관계자는 14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해당 차량을 견인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진천경찰서 생활안전교통과 관계자 역시 같은 답변을 줬다.
차량이 주차된 진천면사무소 관계자는 “스티커가 붙여진 빨간 차량이 현재 면사무소 주차장에 있다”면서 “누가 그 차를 옮겼는지, 차를 운전해서 왔는지 견인을 해왔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면사무소 외곽 주차장을 비추는 CCTV는 없다”면서 “면사무소는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주차를 막을 수는 없지만, 장기 주차 시 차를 빼달라고 말씀은 드린다”고 했다.
관련 기관이 차량 이동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을 미루어 차주 또는 그 지인이 차를 옮겼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차형조 인턴기자 cha691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