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지주사 설립 및 지분 확보…갑질·구조조정 문제엔 전문경영인 내세워
현대중공업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에 들어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연합뉴스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을 통해 현대중공업지주를 설립했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조치다. 이어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을 분할 및 흡수합병함으로써 지주사 규제 요건을 맞추고, 현대미포조선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대중공업지주가 매수해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할 예정이다.
승계작업도 본격화했다.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부사장은 지난 3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83만 1000주)를 확보했다. 현대중공업지주 주식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던 정 부사장은 이로써 정몽준 이사장과 국민연금에 이어 3대주주로 단숨에 올라섰다.
재계에서는 정 부사장이 부친의 보유 지분 25.8%(420만 2266주)만 물려받으면 승계작업이 마무리된다 보고 있다. 정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는 정 이사장이 1988년 정계 입문한 이래 30년 가까이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된 현대중공업이 다시 오너경영체제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정 부사장이 책임경영 측면에서는 뒤로 물러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82년생인 정 부사장은 초고속 승진을 통한 ‘재계 최연소 임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부장직급으로 재입사하며 본격적으로 현대중공업에 발을 들인 2013년 이후 정 부사장은 2년 만에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로 승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1년 만에 전무로 올라섰고, 지난해 말에는 현대중공업 부사장 및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았다.
당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중공업에서 진급 한번 하려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기도 하지만 최대주주의 장남은 역시 달랐다”며 “회사는 연일 사상 최악의 위기라 떠들고 있는데 경험 부족 초짜 전무에게 실질경영을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는 현대중공업이 한 해에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보는 등 조선업계 전체가 수주 절벽으로 최악의 업황을 기록하던 시기였다“며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경영 성과도 없는 정 부사장이 한 해가 다르게 승진하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 부사장 대신 나선 인물들은 정 이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전문경영인들이다. 권오갑 부회장(당시 사장)이 현대오일뱅크에서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왔고, 경영일선을 떠났던 최길선 회장이 복귀했다. 현재도 권오갑 부회장, 강환구 사장, 윤중근 부사장 등 전문경영인들이 현대중공업과 현대중공업지주의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반면 정 부사장은 이들 회사에서 부사장직을 맡으면서도 등기임원으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현대글로벌서비스에서도 안광헌 대표와 공동대표이사로 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총 29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정 부사장이 주식을 보유한 회사는 앞서 언급한 현대중공업지주를 제외하고 3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현대건설기계 76주,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78주, 현대중공업 544주로 미미한 수준이다.
정 부사장의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과 ‘하청업체 갑질’, ‘기술탈취’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 그룹 계열사들이 희망퇴직 접수를 받았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정기선 시대를 앞두고 회사가 고정비 부담을 줄여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편에서는 실린더헤드, 피스톤 등을 납품하는 삼영기계가 현대중공업의 기술탈취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납품업체 대한기업은 현대중공업이 기성(공사대금) 후려치기와 경영간섭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내용을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이에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중공업의 갑질 횡포가 드러났다며 국가기관이 나서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갑질 논란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조사를 앞두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조선업계 갑질 문제를 정기국회에서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갑질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기선 부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따라서 정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경영능력의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2월 설립된 현대중공업지주의 100% 자회사로 선박의 정비와 수리, 친환경설비 설치사업, 스마트선박 개발사업 등을 담당한다. 정 부사장이 성장성이 밝다고 판단해 직접 설립을 주도하고 대표이사도 자원해서 맡았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면서 현대글로벌서비스도 ‘규제대상 회사의 자회사’로 지목됐다. 실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대글로벌서비스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을 수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지난해 내부거래로 거둔 매출은 517억 6000만 원으로, 21.73%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서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실질적으로 규제대상이 되면 그때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 구축과 지분 확보를 통해 정기선 부사장의 승계작업은 마무리됐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라며 “반면 초고속 승진을 하는 동안 경영능력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에도 국내외 행사나 협약식 등에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갑질이나 구조조정 등의 문제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을 방패막이 삼아 숨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 부사장이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은 지 1년이 안 됐는데 벌써 경영능력을 논하기는 이르다”며 “현대중공업에는 대표이사가 따로 있는데 지분이 많은 대주주라는 이유로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