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현대아산·CJ그룹 등 주목…남북경협 멀었다지만 물밑에선 ‘발장구질’
지난 3월 5일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계에서는 정부의 신호를 기다리며 물밑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나서야 실제로 경협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재계 전반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남북회담 이후 북미회담까지 남아 있는 상태고 정치적 이슈이니만큼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 정상회담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지면서 재계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개성공단 개발 때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며 ”그때는 대북 리스크를 우려한 대기업들이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를 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기업은 ‘범현대가’, 특히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이다. 현대그룹은 금강산관광 주사업자이면서 개성공단 개발 사업권자인 현대아산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정부의 시그널을 가장 빨리 받고,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이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남북경협 초기 현대건설이 주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고, 범현대가 기업도 동반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과거 대북사업에 관심을 가진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북한사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현대아산이 독점사업권을 가진 것도 있어 재계에서는 남북경협과 관련해 현대그룹을 가장 먼저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대북사업이 중단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현대그룹은 그동안 희망의 끈을 계속 쥐고 있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선대 회장님의 유지인 남북간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은 반드시 우리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며 “우리의 사명감은 남북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담담한 마음으로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들 또한 사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대북사업에 대해서는 “희망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성공시킬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을 목적으로 1999년 설립된 기업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권과 북한 7대 SOC(Social Overhead Capital·사회간접자본) 개발 독점권, 개성공단 사업 독점권 등을 따내며 시설 투자비용까지 총 1조 8000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그러나 2008년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은 중단됐으며, 개성공단 사업 또한 연평도 포격 사건과 북한의 핵실험 도발 등이 이어지면서 2016년 2월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아산은 10년간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누적 손실을 봤으며 과거 1100여 명이던 임직원은 현재 150여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재계가 들뜬 분위기에서도 몸을 사리는 데는 현대그룹의 이 같은 과정을 지켜봤던 이유도 크다.
현대아산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우리 사업에 직접 연결되는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라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10년간 사업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유지해오고 있었으며 사업 재개 시 바로 진행 가능할 정도로 모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 기업 외에도 여러 기업이 대북사업에 참여하려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면 관광이나 개성공단 외에도 SOC 등 다양한 분야에 여러 기업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J그룹도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CJ그룹은 2007년 CJ푸드시스템이 개성공단 위탁급식사업 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으며, 과거 북한 군부가 운영하는 승리무역총회사와 북한 내 대두유 공장 관련 경제협력을 논의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J대한통운의 경우 지난 3월 러시아 기업 페스코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북방 물류’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와 계약으로 진출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남북간 고속철 건설이 이뤄질 경우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물류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 물류업계 관계자는 “경협이 이뤄져 남북간 물자가 오가게 되면 물류업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남북간 막혀 있던 통로가 뚫리면 해운 이외에 대체물류 수단이 생기고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남북경협으로 도로사업이 활발해지면 대륙해양을 연계하는 물류 강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CJ그룹은 아직 그룹 차원의 논의 등은 없다고 밝혔다. CJ그룹 관계자는 “아직 회담 단계라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과거 대북사업을 한 것은 맞지만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어서 현재로서는 해외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CJ대한통운의 경우 남북경협이 원만히 진행되면 중국이나 러시아 진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는 있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한꺼번에 대량 수송이 가능한 우리는 남북 경협이 이뤄질 경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도로와 철도를 담당하는 공기업들도 한껏 들뜬 분위기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최근 남북 철도 연결을 전담하는 ‘남북대륙사업처’를 사장 직속으로 신설했으며, 한국도로공사는 북한 도로사업 추진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들은 “정부에서 특별한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4월 중순 TF를 구성했는데 구체적인 진행 내용은 아직 없다”며 “북미회담 이후 도로 인프라 사업 등이 재개될 것을 대비,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팀을 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정부가 우릴 밀어주겠지” 중소기업 개성공단 재가동 기대 만발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 정착 등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경제 건설에 총력을 쏟겠다는 북한 발표 등을 고려했을 때,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다시 열릴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을 비롯한 중소기업들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7일 “개성공단 재개가 당장 가시권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개성공단 기업인에게는 큰 희망이 생겼다”는 논평을 내놓으며 그 기대감을 내비쳤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장은 “아무래도 비핵화가 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남북경협 등에 대한 논의는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정상회담 세 번째 의제인 남북관계 개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개성공단도 자연스레 재개될 것이고 우리도 이를 바란다”고 밝혔다. 개별 기업들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성공단 1호 입주기업인 재영솔루텍 관계자는 “개성공단 재개를 당연히 바란다”면서도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닌 만큼 차후 정부 결정 등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액세서리 유통업체인 대평산업 관계자는 “개성공단 재개는 기업 수익 창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옛날처럼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입주기업 관계자는 “재가동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국가간 협의가 필요한 만큼 이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기업협회가 대부분 중소기업들로 구성돼 있는 만큼 여타 중소기업들도 술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경제정책인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구상돼야 한다는 분석 등이 나오면서 그 역할 등에 기대감이 더해지고 있는 것. 지난 22일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기업포커스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구체화 단계에서 중소기업을 중요 참여 주체로 명시화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은 남북경협 재개 단계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내 생산·소비 구조 형성을 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는 정상회담 논의 내용에 따라 차후 계획을 세울 것이란 입장을 내비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물론, 여타 중소기업들도 이번 정상회담이 가져올 개성공단 재개를 환영한다”며 “공식적인 논평이나 계획 등은 정상회담 이후에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
현대건설 희비 교차 속사정…안으론 ‘비리 혐의’ 악재 밖으론 ‘남북 훈풍’ 호재 남북간 화해무드에 가장 크게 술렁이는 것은 증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종목으로 시작한, 이른바 ‘남북경협 관련주’는 건설·시멘트 등 SOC 인프라 관련주들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다.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북한 인프라 지원이 핵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이 대거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건설주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은 과거 대북사업을 다수 진행한 경험이 있는 데다 ‘범현대가’인 까닭에 한껏 기대를 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또 남북경협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알려진 현대아산의 지분 7.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남북경협 기대감이 고조되며 현대건설 주가는 지난 23일 장중 5만 5400원을 기록, 52주 신고가를 갱신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아무래도 기대감 때문에 주가가 많이 오른 것 같다”면서도 “현재 회사 차원에서 계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회담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지난 25일 재건축 수주 비리와 관련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내사를 받아온 터다. 현대건설은 반포 1, 2, 4지구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선물과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북경협으로 한껏 기대감을 부풀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좋지 않은 일에 부딪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압수수색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꺾지는 못했다. 현대건설 주가는 압수수색을 받은 25일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으며 다음 날인 26일 다시 5만 원을 가볍게 넘어섰다. 앞의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건설에 대한 혐의는 의혹에 불과하다”며 “지난해 9월 GS건설과 롯데건설 등이 경찰조사를 받았는데, 절차상 우리도 조사를 받은 것”이라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