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는 일상, 돈 대신 술 먹는 ‘주(酒)정페이’까지...‘노동 가치’ 인정 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흔히 DJ는 ‘파티’와 연관돼 있다고 말합니다. DJ는 디제잉을 통해 파티 분위기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DJ는 신나고, 즐겁고, 흥겨운 직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유튜브에 ‘DJ’, ‘클럽 DJ‘ 등을 검색하면 모두 화려하고 즐거운 파티가 나타납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모두 DJ의 손짓에 맞춰 춤을 춥니다.
최근엔 승리, 박명수, 박나래 등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이 매체에 나와서 디제잉을 합니다. 이것 역시 DJ의 멋지고 화려한 이미지를 강하게 합니다. DJ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모양입니다. 구글에 ‘클럽 DJ’, ‘디제잉’ 등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연봉과 수입, 디제잉 학원, 디제잉 배우기 등이 따라 붙습니다. 기자가 직접 DJ를 보러 갔습니다.
디제잉을 하는 승리 ‘SBS미운우리새끼’ 방송화면 캡처
2018년 10월 8일 을지로의 한 클럽. 건물 밖으로 삐져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클럽 안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인 듯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은 그 안에서 몸을 흔들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공간을 가득 메운 자욱한 안개와 땀 냄새인지 술 냄새인지 모를 묘한 냄새, 고막을 때리는 킥 드럼 소리는 기자의 감각을 마비시켰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로 DJ였습니다. 그는 번쩍이는 조명 속에서 요란하게 손을 놀렸고, 그의 손동작에서 태어난 음악은 공간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조종했습니다. 서로 다른 음악을 교묘히 이어주고, 그 간극을 채워가며 분위기를 바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클럽의 진정한 주인공은 DJ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DJ Jackie
그러나 그들의 삶은 보이는 것처럼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네이버 카페 ‘클럽디제이’의 운영자(DJ명: Jackie)는 “어느 DJ라도 임금체불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카페에는 현재 7만 7000 명의 회원이 가입했습니다. 운영자 J 씨는 10년차 현업 DJ이며, 다수의 공연과 파티를 주최해 업계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J 씨가 이렇게 단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DJ가 처한 환경 때문입니다. 그는 “일부 DJ를 제외하곤 공연 당 10만 원 안팎을 받는다.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금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3년 차 DJ A 씨도 이와 비슷한 말을 전합니다. 그는 현재 공연 당 5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A 씨는 “전업 DJ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공연 당 5만 원, 10만 원 정도의 보수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왜 최저시급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냐”고 묻자 A 씨는 ‘임금 착취 구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DJ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특히 더 가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A 씨에 따르면 DJ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클럽 소속의 막내로 들어가 시작하는 것, 둘째는 개인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두 가지 길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의 ‘착취’란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클럽 소속 막내로 들어가면 저녁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청소, 서빙, 입장 안내 등 온갖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손에 쥐는 돈은 많이 받으면 150만 원 전후라고 합니다. 최저시급에 조금 못 미치는 이 금액도 잘 받는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무급’도 많다고 하니까요.
무급 수습 구인 글
2년 간 무급으로 수습 일을 했다는 DJ MUSE(이하 M)는 “무대, 기계 청소 등을 도맡았고 선배 DJ의 공연을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도 돈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습 기간을 DJ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고 덧붙였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수습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클럽디제이’ 운영자 J 씨는 “수습 제도를 악용해 ‘임금 협의’로 채용 공고를 내고 현장에서 ‘무급’이나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며 “차라리 처음부터 무급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M 씨는 “수습으로 뽑아놓고 DJ일을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봤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활동하는 길이 더 나은 것도 아닙니다. 여기엔 열정페이보다 심각한 ‘주(酒)정페이’가 따라 붙습니다. 돈 대신 공짜 술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A 씨 역시 한동안 돈 대신 술을 받아왔습니다. A 씨는 “내 주변에서도 그렇고, 돈 대신 공짜 술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떨 때는 돈도 못 받고 술도 사서 마셔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제잉하는 공간인 ‘덱’ 사진. 출처=연합뉴스
임금 착취도 모자라, 어떤 곳은 DJ의 열정까지 착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오픈덱’이라고 하는 공연이 그렇습니다. 클럽에서 DJ가 공연하는 공간을 ‘덱’이라고 하며, 오픈덱은 말 그대로 모든 DJ에게 공개(오픈)한다는 뜻입니다. 이름만 들어선 공개(무료) 공연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에 대해 앞서 J 씨는 “그런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J 씨는 “동아리 파티 등 자기들끼리 노는 자리에서 오픈덱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손님에게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업장에서 오픈덱을 하는 것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A 씨는 “공연 기회가 간절한 DJ의 마음을 이용해 ‘공연 그 자체가 보상’이라 말하는 일부 업장은 DJ를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일 뿐”이라 말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는데, 왜 DJ들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업계 바닥이 너무 좁아서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공연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 나이, 공연하는 장소 공개를 꺼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J 씨 역시 업주가 ‘갑’에 위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요즘은 DJ 수가 늘어나서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줄어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디제잉 중인 박나래. 인스타그램 캡처
이쯤 되니, 현직 DJ는 연예인들의 DJ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J 씨는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DJ를 대신해 그 자리에 섰으니 연습을 많이해서 멋진 공연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 씨 역시 “하는 건 좋은데, 더 연습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디제잉하는 척을 하거나,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연예인을 봤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DJ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한국노동연구소 허재준 선임연구위원은 “DJ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당한 근무 조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많은 상황을 보고 들은 J 씨 역시 비슷한 의견입니다. 그는 ‘무급 수습’, ‘염가 공연’ 등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DJ들이 스스로 그런 자리에서 공연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J 씨는 “한국 DJ는 경제적 후진국인 동남아시아 DJ보다 상황이 열악하다. 이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A 씨는 “노동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M 씨는 “이런(열정페이 같은) 일이 많아지면 DJ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DJ를 꿈꾸는 사람을 절망케하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수습도 임금을 정당하게 받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저시급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의 ‘노동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사람 역시 존재합니다. 그동안 밝고 즐거운 이미지로만 소비돼 왔던 DJ가 그렇습니다. 이젠 DJ들의 노동이 정당하게 다뤄지는 시대가 오길 희망합니다.
클럽 DJ를 꿈꾸는 한 청년은 “DJ도 다른 직업처럼 근로계약서라든지 법적인 절차들을 이행하고 업장과 디제이가 서로 존중하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천재상 인턴기자 cjos33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