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훈 전 사장 반격 시작됐나
조용병 회장에 대해 검찰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8일 오후, 신한금융지주는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검찰이 갑작스럽게 조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을 분석하고 수사 확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심각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박정훈 기자
조 회장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3월 신한은행장을 지내는 동안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임원 자녀 등을 특혜채용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를 받고 있다.
조 회장이 이달 3일 비공개 소환 조사를 받을 때만 해도 검찰이 구속영장이라는 카드를 꺼낼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았다.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불기소 처분을 받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윤종규 회장은 그의 종손녀가 서류전형과 1차 면접에서 최하위권에 들었다가 2차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받아 합격해 특혜채용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윤 회장의 자택과 인사담당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벌였으나 은행의 인사팀장과 상무, 부행장 등을 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김정태 회장은 함영주 하나은행장과 함께 채용 비리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회장은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에서 채용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나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었다. 당시 결과에 따르면 한 최종합격자 추천인으로 ‘김○○(회)’라고 기재됐고, ‘(회)’가 통상 회장이나 회장실을 뜻한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 합격자는 서류전형과 실무면접 점수가 합격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합숙면접에서 태도 불량으로 0점을 받았으나 최종 합격처리됐다. 검찰은 그러나 김 회장을 불기소하고 함 행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마저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전까지 채용비리 사태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금융지주 회장은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유일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앞서 언급된 회장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 채용비리 혐의뿐 아니라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터라 채용비리 혐의만으로 영장이 청구된 사실상 첫 금융지주 회장은 조용병 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조 회장은 현재 채용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아무개 전 신한은행 인사부장의 최종 결재권자로 당시 특혜채용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회장이 신한은행장을 지냈던 2015년 3월∼2017년 3월은, 이 전 부장이 인사부장으로서 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2015년 하반기∼2016년 하반기와 기간이 겹친다. 검찰은 당시 신한은행이 남녀 합격자 비율을 3 대 1로 맞추기 위해 면접점수를 임의로 조작하고 특정 임직원 자녀를 특혜 채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앞선 두 회장과 달리 조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는 그만큼 그의 채용비리 연루 혐의를 입증할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은 조 회장 영장청구 하루 전인 7일 있었던 금융위원회의 움직임이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다음 주 열리는 전체회의에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에 대한 제재안을 상정키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중징계를 받을 전망이다. 신한금융그룹 내 경영권 분쟁인 ‘신한 사태’로 유죄가 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상당)’다. 원안대로 의결되면 이 전 행장은 향후 5년간 금융회사 취업이 금지된다. 이 전 행장에 대한 제재가 확정되면 2010년 9월 시작된 ‘신한 사태’는 법적 처벌에 이어 행정적 제재까지 모두 끝나 8년여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신한 사태 당시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에 대한 고소, 고발을 주도했던 이 전 행장은 2010년 업무상 횡령 및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1, 2심을 거치며 횡령 혐의는 벗었지만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5억 원을 전달받은 혐의에 대해선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 전 행장은 이미 현직에서 떠난 상태지만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이 확정된 만큼 금융당국의 제재는 피할 수 없다.
신한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신상훈 전 사장은 금융당국의 제재를 피했다. 신 전 사장은 2010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 전 행장과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1심과 2심을 거치며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벌금형(2000만 원)이 확정됐다. 신 전 사장은 2016년 말 우리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지난해 말에는 유력한 은행연합회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등 이미 금융권 활동을 재개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올해 초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이른바 ‘남산 3억원 사건’을 재조사키로 한 것과 연결돼 결국 ‘신한 사태’ 이후 신한금융그룹의 주류가 된 라응찬계를 조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이백순 행장 제재, 조용병 회장 영장청구 등 신한금융과 관련해 심상찮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신상훈 전 사장이 현 정부 실세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점도 라응찬계 인사들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1일 조용병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동부지법 양철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피의자의 직책과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등에 비추어 볼 때 도망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피의자와 이 사건 관계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피의사실 인정 여부 및 피의사실 책임 정도에 관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