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미끼를 던진 성직자들-종교 그루밍 문제의 그림자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신자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세뇌의 과정을 거쳐 종속시키는 종교계 ‘그루밍’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미투’ 열풍이 종교계를 강타한 뒤 종교 그루밍 문제가 점점 공론화되고 있다. 앞서의 사건은 교단을 불문하고 종교계 전반에서 자행되고 있는 다양한 성 일탈행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10월 11일 개신교, 천주교, 불교 계열의 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주제로 한 데 모였다. 그들이 털어 놓은 실상은 짐작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토론회는 기독교여성상담소 주최, 피해자지원네트워크 주관, 기독교위드유센터 후원으로 서대문 이제홀에서 진행됐다. 패널로는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김선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소장, 그리고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인 차미경 변호사가 참여했다.
직접 앞서의 여신도를 상담한 채수지 소장이 밝힌 사건은 이러했다.
문제의 B 목사는 여신도 A 씨에게 “1년 전부터 눈여겨 봤다”며 여러 교회 내 사업들을 함께하자고 접근했다. A 씨는 흔쾌히 승낙했고, B 목사는 A 씨의 일터를 찾아 식사를 함께 한 뒤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나갔다. 그리고 B 목사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대뜸 “결혼을 하자”며 입맞춤을 시도했다. B 목사는 엄연한 유부남이었다. 미국 출신인 B 목사는 “고국으로 돌아가 본처와 이혼하고 재혼을 원한다”며 A 씨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 뒤 B 목사는 A 씨를 대상으로 집요하게도 그루밍의 단계를 밟는다. 심리적 지배, 이른바 가스라이팅(가해자가 무의식적으로 피해자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세뇌의 과정)을 거쳐 성추행 그리고 상습적인 강간까지 나아간다. B 목사는 ‘말씀’을 빙자하며 A 씨를 납득시켰다.
다행히 A 씨는 자아가 강한 여성이었다. B 목사의 감언이설이 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까운 여성 목회자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알리고서야 B 목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B 목사의 ‘이혼 뒤 결혼’ 제안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단락되지 않았다. 교회는 A 씨에게 유혹자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리고 회개를 강요했다. 사건의 실체가 단순히 ‘불륜’으로 규정지어진 이유였다. 교회는 B 목사를 해임하고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그 프레임은 ‘불륜’과 ‘간음’이었다.
채 소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한 인간의 신뢰를 무너뜨려 믿고 있는 모든 세계를 불신하게 하는 것, 피해자가 스스로 자책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것, 이것이 가해자와 교회가 저지른 죄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성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와 이를 ‘불륜’으로 덮은 교회는 죄의식을 느끼고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계 그루밍 문제의 본질을 성직자-신자 간 특수하고도 위계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그 처리 과정에서 교계가 ‘불륜’ 프레임으로만 귀결지으려는 그릇된 태도도 꼬집은 것이다.
김선실 대표 역시 “교회는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서둘러 처리하고 싶어한다”라며 “교회의 명예 실추를 어떻게 만회하느냐가 우선이지 피해자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보통 교회는 피해자의 약점이나 회유할 빌미를 찾는다. 적어도 피해자들은 그렇게 느낀다”라며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기에 그간 경위와 온갖 증거를 동원한다. 피해자는 교회 담당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2차 피해를 당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직자의 그루밍 문제는 비단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독신계율이 근간인 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에서도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다. 김영란 소장은 이를 위해 ‘은처승’이란 개념을 꺼냈다. 은처승은 말 그대로 처를 몰래 숨겨 놓은 승려를 뜻한다. 이 용어 자체가 남성 중심적 사고가 강한 한국불교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김 소장은 꼬집었다.
김 소장은 지난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종단의 한 유명 사찰 주지이자 호계위원(종단의 재판관)이었던 한 승려를 예로 들었다. 이 문제의 승려는 자신의 사찰에 요양 차 온 여신도 C 씨를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켰다. 관계 이후 5년이 지나서야 문제의 승려를 고소한 C 씨는 안타깝게도 공소권 소멸로 인해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고성준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 ‘목회자의 성문제, 불륜인가? 성범죄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018.10.11
되레 세속에 환속한 문제의 승려는 ‘사실혼’ 관계를 주장하며 C 씨를 상대로 사실혼 부당파기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즉 앞서의 ‘은처승’ 개념을 가져와 C 씨를 압박한 것이다. 다행히 법원은 승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끝이 개운치 않은 사건이었다.
김 소장 역시 이러한 그루밍 문제에 대해 “불교에선 성폭력을 인권이나 폭력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단 경전의 ‘욕망’ 문제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라며 “수행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유혹에 의해 장애가 생겼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위계적 관계 속에서 집요한 심리적·위압적 세뇌의 과정을 거쳐 비롯되는 교계 성직자들의 ‘그루밍’ 문제는 과연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이날 패널로 참석한 차미경 변호사는 “어렵다”고 단정했다. 차 변호사는 앞서 대형교회 사건의 피해자인 A 씨에게 직접 법률적 자문을 하기도 했다.
차 변호사는 “형법상의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고 피해자의 항거 불능, 현저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 입증하는 문제가 관건”이라며 “이러한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지 않는 경우 피감독자의 위력 또는 위계에 의한 간음이나 추행에 대해선 형사적 처벌이 가능하지만, 목사와 신도 간의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현실적 진단을 내렸다.
현실적으로 앞서의 A 씨와 같은 그루밍 피해자들이 목사 B씨와 같은 가해자들에게 강간 혹은 강제추행 죄를 묻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차 변호사는 “(현행법상) 성범죄라 볼 수는 없지만, 불법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 변호사는 “최근 안희정 사건 이후 논의되고 있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교계에서 엄연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루밍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성범죄의 성립 조건을 완화하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편으로 차 변호사는 “이러한 성범죄 사건이 교회에서 발생하면 내부적으로 공정하게 해결하기 쉽지 않다”라며 “최소한 사건이 발생하면 대책위의 절반은 외부인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며 교회 내부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미투 강타한 종교계...‘자성의 노력’ 현주소는?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올 초부터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투 광풍’은 종교계도 빗겨가지 않았다. 카톨릭의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가 신자를 성추행한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수원교구 소속 한 신부였으며, 교구는 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직무를 정지했다. 지난 5월 1일 방영된 MBC PD수첩엔 설종스님의 은처자 의혹과 더불어 현응 스님의 성추행 의혹이 보도됐다. 현응스님이 술과 고기가 있는 회식자리에서 불자 2명을 성추행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기독교에선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가 ‘성폭력 의혹 목사’로 보도됐다. 연이은 종교 내 성폭력 사건에 사회는 들썩였고, ‘종교 미투’ 운동으로 확전되기까지 했다. 각 종교계는 종교 성폭력 방지 토론회, 간담회 등을 열고 성평등연대 등을 발족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종교 내부는 정말 변화했을까.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주요 종교계에 문의해 성폭력 사태 이후 피해자 지원과 대응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봤다. 우선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선 성폭력 접수 기관이 하나 생겼을 뿐이었다. 담당자도 외부 전문가, 상담사가 아닌 교구 내 신부로 파악됐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외부 상담사와 연결되는 통로가 없다”고 말했다. 파장이 일었던 수원교구는 성폭력 방지 특별 위원회를 발족했다. 성폭력 전담 센터를 만들고 전문 상담사를 둬 성폭력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선 대표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특이사항은 성폭력 재발을 막기 위해 교회 헌법을 고쳤다는 것이다. 헌법을 개정해 성폭력으로 처벌받은 목사는 7년 간 복직할 수 없게 했다. 또한 교회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각 지역 교회(노회)에 배포하고 총회 홈페이지에 개제했다. 장로회 관계자는 “10월 말 까지는 특별위원회 구성도 완료되고, 체계가 갖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 조계종에선 ‘여러 사건 이후 성폭력 사건 대책과 관련한 매뉴얼이 갖춰졌느냐’는 물음에 이렇다 할 답변을 주지 않았다. 사단법인 지혜로운여성 조정숙 사무국장은 “조계종 내부적으론 특별위원회나 성폭력 상담소 설치가 되지 않았다”라며 “불자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서 만든 나무인권여성상담소에 성폭력 상담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불교는 자체적으로 사법부 역할을 하는 기구인 호법부와 호계원을 가지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호법부는 검찰, 호계원은 법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교를 제외한 천주교, 기독교는 성비위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특별위원회 발족’과 ‘성폭력 피해 상담’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 내 성폭력 문제 해결과 관련해 각 종교계의 자성과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7월 23일 교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출범한 기독교반(反)성폭력대응센터 김애희 센터장은 “근본적인 대책은 교회 안의 권력 관계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특별대책위원회, 상담센터 설치는 말단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 센터장은 “다만 그 대책은 교회 내 성폭력의 근본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교회 내의 가부장적 권력이 성폭력을 낳는 것이다. 여성 목사의 출연, 여성 사역자의 역할 확대 등 교회 내의 성 역할 논의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근복적인 개혁을 강조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종운 변호사는 “신앙이 위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사건을 맡으면서 몇몇 성폭력 피해자가 목회자를 ‘신처럼 거부할 수 없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반응을 보였다. 신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목회자에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앞서의 그루밍 성범죄의 심각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종교 안에서의 성 인지 교육이 필요하다”라며 “교육을 통해 성 개념을 바꿔야 수직적인 위계를 수평으로 바꿀 수 있다. 성 개념을 수평하게 바꿔야 성폭력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내부 교육을 강조하기도 했다. 천재상 인턴기자 cjos3307@ily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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