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2’로 시작해 ‘다크타워’ 등 전세계 흥행시리즈 출연 ‘행운’…‘내기니’ 캐릭터 ‘인종차별’ 논란엔 “긍정적 변화라 생각해”
당시 수현(33)은 남아공에서 영화 ‘다크타워:희망의 탑’ 촬영을 소화하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드라마 ‘몬스터’ 촬영을 병행했다. “할리우드 활동만큼 한국에서의 작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땐 필요한 짐을 직접 쌀 수 없을 만큼 바쁜 시간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 제공 = 문화창고
수현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여러 한국배우 가운데 단연 성공적인 행보를 걷는 주역이다. 출발부터 행운이었다. 전 세계 흥행시리즈로 통하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을 통해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한 덕분이다. 단숨에 자리매김했고 이어 또 다른 블록버스터 ‘다크타워:희망의 탑’의 러브콜을 받았다. 활동 무대를 넓힌 지 이제 햇수로 4년째. 수현의 새로운 선택은 전 세계 팬덤을 가진 ‘해리포터’에서 확대 발전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신동사2)’이다. 2016년 나온 1편 ‘신비한 동물사전’은 국내서만 466만 관객을 모은 흥행작. 수현은 11월16일 개봉하는 후속편 ‘신동사2’로 관객을 찾는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배우뿐 아니라 아시안으로도 책임감을 느낀다”는 수현을 영화 개봉에 앞서 만났다. 11월에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영화를 알리는 프로모션을 소화해야 한다는 그는 잠시 서울에 머무는 틈에 짬을 냈다.
# “처음엔 유학생 된 기분으로 도전”
수현은 자신을 향한 오해부터 풀고 싶다고 했다.
“서울이 집이에요. 미국에서 살지 않아요. 하하! 촬영 없을 땐 늘 한국에 있거든요.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지만 ‘어벤져스2’ 끝내고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폴로’ 시리즈를 찍고 또 다른 영화까지 이어지면서 미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어요. 하지만 늘 한국 작품을 생각해요. 그런데도 제작자나 감독님들은 ‘수현은 뭔가 큰 걸 바랄 거야’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정말 한국 작품을 정말 원하거든요. 외국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칭찬도 자자하고요.”
사진 제공 = 문화창고
수현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연이어 작업하고 있다. 국내서 히어로무비로는 처음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2’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블스튜디오의 대표 시리즈다. 한국배우가 마블과 작업하기도 수현이 처음이다. 이번 ‘신동사2’ 역시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워너브라더스가 주력하는 시리즈다. 무엇보다 메가히트작으로 통하는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앞선 시대를 다루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심이 상당하다.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남모를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처음엔 모든 게 달라 새롭게 적응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는 수현은 “이방인의 입장이라 많이 외롭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어벤져스2’ 첫 촬영지가 헝가리였는데 그땐 혼자서는 밖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 무서웠어요. 유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일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이젠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할까. 한국에서 일했다면 매니저의 도움을 받고 이런저런 행동의 틀을 맞춰야 했겠지만 미국에선 혼자 해내야 했으니까요.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이 처음엔 숙제였죠.”
할리우드 인기 시리즈들이 대부분 그렇듯 수현은 ‘어벤져스2’ 때는 물론 새로 참여한 ‘신동사2’ 때도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모른 채 오디션에 응했다. 1차 영상 오디션을 통과한 뒤 2차 오디션 자리에서 감독 등 제작진과 만났을 때에야 수현은 ‘신동사2’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을 전달받았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뱀, ‘내기니’ 캐릭터이다.
“앗! 내가 뱀을? 처음엔 놀랐죠. 내기니라니, 할 말을 잃었어요. 하하! ‘해리포터’ 원작 시리즈에서도 워낙 중요한 캐릭터잖아요. 우리 영화에서도 물론이고. 뱀처럼 걷고 뱀처럼 물건을 만지는 연기는 쉽지 않았죠. 감독님은 ‘여기선 2%만 뱀으로’, ‘이번엔 5% 정도의 뱀’을 표현해달라는 주문을 했으니까요. 하하!”
‘해리포터’ 원작에서 내기니는 악의 마법사 볼드모트가 늘 곁에 두는 뱀이다. ‘해리포터’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신동사’ 시리즈에서는 내기니를 좀 더 조명한다. 수현의 표현에 따르면 “악하기만 한 동물이 아닌, 보호본능을 가진 인물로서 스토리”도 펼쳐진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수현이 내기니 역을 맡는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된 직후 영국 일부 매체는 ‘인종차별’ 논란을 제기했다. 백인 남성(볼드모트)이 키우는 동물을 아시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을 두고 제기된 지적이다. 지나치게 백인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인종’에 관한 이슈는 수현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의 말처럼 할리우드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신동사2)’ 속 수현
“아시안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백인이 주로 출연하는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에 참여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렇기에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날 줄은 몰랐죠. 하지만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요. (제가 연루됐지만) 이런 목소리는 나와야 하고, 그로 인한 변화도 있어야 해요. 크게 보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수현은 낯선 땅에서 아시안 배우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오디션을 통과해 기다리던 영화가 돌연 역할을 백인으로 바꾸는 바람에 출연이 무산된 일도 그중 하나다. 할리우드에서 끊임없이 문제되고 있는 이른바 ‘화이트 워싱’(동양인 역할을 백인으로 바꿔 캐스팅)의 피해가 자신을 비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수현은 올해 여름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아시안 배우들의 아시아 이야기의 붐(아시안 어거스트)을 누구보다 반기고 있다.
“동양인 배우들이 자기 일처럼 함께 힘을 불어넣었어요. 그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와 닿았죠. 얼마 전 ‘블랙팬서’를 통해 흑인이 하나로 뭉친 것처럼 이번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라는 영화를 통해 아시안에 뭉친 거예요. 이런 움직임은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수현은 유독 함께 작업하는 배우 복도 많다. 할리우드 유명 시리즈에 출연해서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인복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신동사2’에서는 에디 레드메인을 비롯해 조니 뎁, 주드 로 같은 스타들과 함께 연기했다.
“어릴 때 주드 로, 조니 뎁을 좋아했고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어요. 그들이 내 앞에서 연기하는 걸 본다니,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많이 배우는 기회였죠. 처음 외국에서 활동할 땐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친구들도 찾았어요. 그런데 의존할 사람들이 없으니까. 그제야 자립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촬영 세트에서 여러 친구들과 친해지는 여유가 생겼죠. 그렇게 저의 사고가 열리고 있어요.”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