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야 말로 예술의 덕목”
이영준 작가. 오른쪽 이마에 흉터가 선명하다.
10월 11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순화동에 위치한 카페 ‘현스티’에서 화가 이영준 씨(35)를 만났다. 그는 독일 뮌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인 작가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독일과 체코에서 진행한 전시만 이제껏 15회다. 잠깐 한국에 들렀다는 그. 오른쪽 이마에 눈썹부터 헤어라인까지 가르는 큰 흉터가 눈에 띄었다. 영문을 물으니 “그냥 지하철역에서 넘어졌다”고 답했다.
무제, 2017, Mixed Media, 60cmX45cm. 출처: www.youngjunlee.com
이영준 작가의 그림에선 독일 냄새가 난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나, 안젤름 키퍼와 같은 신표현주의자의 강렬한 색감과 표현이 눈에 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적인 면도 곳곳에 엿보인다.
1980년대는 독일 문화의 융성기였다. 드럼과 베이스, 각종 악기를 이용한 펑크풍 퍼포먼스 아트가 유행했다. 반대 쪽에선 구상 회화로의 회귀 움직임도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어느 쪽이 맞든 예술적으로 부족함이 없던 시기가 독일의 1980년대다. 그걸 겪어보질 못했지만 내 작품은 그 시대를 향한 향수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고향, 2015, Oil on Canvas, 60cmX50cm. 출처: www.youngjunlee.com
“‘고향’이라는 그림이 그렇다. 고향이라고 하면 다들 정겨움이나 그리움, 고즈넉한 분위기를 떠올리는데 이런 걸 전복하고 싶었다. 우울함을 상징하는 탁색을 많이 썼다. 대신 너무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 무덤 앞에 빈 소주병도 하나 꽂았다.”
그의 화풍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간다. 허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모순과 유머는 늘 살아남았다.
2015년 이후로 그림에 힘을 조금 뺐다. 초창기엔 우울한 감정 안에 유머와 풍자를 작게 담았다면 요즘엔 거대한 유머를 배경으로 일상을 담는다.
그림이 조금 가벼워진 데에는 ‘스타일 없는 스타일’, ‘예술계의 어릿광대’로 명성을 떨친 1980년대 독일 화가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의 영향이 컸다.
새와 춤추는 노인, 2016, Oil on Canvas and Spray, 70cmX70cm. 출처: www.youngjunlee.com
“그게 일상의 힘이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웃는다. 현실을 잊는다. 예술이 정치나 현실의 짐까지 너무 무겁게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유머야 말로 예술의 덕목”이라는 그의 그림엔 익살스러움과 동시에 날카로움이 섞여있다. ‘새와 춤추는 노인’, ‘죽부인을 들고 있는 로니’는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과감한 형식의 파괴도 잘 드러난다.
Buckish Ronny, 2015, Oil on Canvas, 270cmX190cm. 출처: www.youngjunlee.com
“로니는 뮌헨의 병 줍는 노인 ‘요셉’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독일엔 빈 병 주으러 다니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 중 한 명인 요셉과 난 자주 마주쳤다. 그는 동네에선 유명 인사다. 요셉을 모델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봐야겠다 싶었다. 실제 요셉에게 비디오 작품 출연 제의했더니 좋아하더라.”
이영준 작가는 로니를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로니와 비슷한 흰 수염을 붙이고 “완벽한 흰색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비디오 작품도 냈다.
“로니를 통해 예술의 본질에 다가간다. ‘완벽한 흰색은 뭘까. 얇게 썬 양파 조각색일까. 로션색일까. 아니면 하얀 욕조 안에 든 물의 색깔일까’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는 과정을 찍은 비디오 작품이 ‘Ronny’다.”
이영준 작가의 작품에서 추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추상도 구상도 아닌 반구상쯤 된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영역을 표현하는 것이 현대 미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구상에서 추상, 모순과 비판에서 유머까지 넘나드는 그에게서 포스트 키펜베르거의 모습이 보였다.
이영준 작가.
이영준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계획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화가의 길을 걸을 생각이 없었다. 미술 시간 선생님의 작은 칭찬에 인생을 걸었다. 삼수를 하고 성균관대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하고 무작정 독일로 건너갔다. 마르쿠스 욀렌(Markus Oehlen) 작품이 마음에 들어 뮌헨미술원(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München) 교수였던 그를 그냥 찾아갔다. 포트폴리오를 내밀었다. 그렇게 그의 제자가 됐다. ‘이영준’은 그냥 그렇게 산다.
최희주 인턴기자 perrier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