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유통 사업을 놓고 강남에서 전면전을 펼치게 됐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부지에 세워진 호텔 백화점 터미널 복합건물인 센트럴시티의 경영권이 애경그룹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구조조정회사 I&R코리아에 넘어간 것. 최근 애경이 지분 39%를 갖고 있는 I&R코리아가 센트럴시티 경영권 인수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해 여름. 이후 최종적으로 I&R코리아가 센트럴시티 신선호 회장의 개인지분 49.9%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난 것.
I&R코리아는 그동안 계약금과 중도금 5백50여억원을 신 회장쪽에 지불했고, 잔금은 10월 중순께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은 애경이 센트럴시티를 인수하면서 이미 센트럴시티에 대규모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와 애경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세계는 최근 들어 할인점 사업에서 국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백화점 사업쪽에서는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지난해 문을 연 센트럴시티내 신세계 강남점이 위안이 되고 있는 상황. 신세계 강남점은 문을 연 지 1년 만에 강남 상권에서 현대백화점 본점이나 코엑스점을 누르고 롯데 잠실점에 이어 2위권으로 발돋움할 만큼 실적이 좋다.
문제는 애경이 센트럴시티 경영권을 가져가면서 신세계 강남점의 존립자체가 원점부터 재논의될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센트럴시티와 신세계와의 갈등은 불거지고 있다.
센트럴시티 경영진은 지난달 센트럴시티 주차장 임대료의 10%선인 부가가치세를 신세계가 내지 않으면 10월부터 신세계에 빌려준 센트럴시티 내 주차장(3천5백67면)의 사용을 금지시키겠다고 통보한 것.
신세계에선 이런 ‘일방적인 조치’에 ‘센트럴시티쪽의 조치가 시행될 경우 백화점 손님이 일반주차요금을 물게 돼 백화점 영업에 치명적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서울지방법원에 주차장 사용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센트럴시티와 신세계와의 갈등은 법정소송전으로 치닫고 있다.
신세계에선 그동안 신세계가 내온 주차장 사용료(순매출의 1%)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 1월 백화점이 문을 연 이래 이런 ‘원칙’에 따라 부가가치세 문제가 없었다는 것. 그동안 아무런 이의를 하지 않았던 센트럴시티측이 갑자기 부가세를 내지 않을 경우 주차장 사용을 금지시키겠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분명한 것은 센트럴시티가 이 문제를 꺼낸 것은 애경쪽의 경영진이 파견된 이후라는 점이다. 현재 센트럴시티 운영진에는 I&R코리아를 통해 상당수의 애경쪽 임원들이 포진해 있다. 때문에 애경이 다른 야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구로지역에 애경백화점 문을 열면서 유통업에 뛰어든 애경은 최근 들어 인천공항 면세점을 열었고, 이어 수원민자역사점 개관을 앞두고 있는 등 유통사업에 부쩍 힘을 쏟고 있다.
애경의 유통사업의 핵은 ARD홀딩스(옛 애경리얼티).
애경그룹의 부동산개발회사인 ARD는 애경백화점 등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백화점 사업을 하는 애경유지에 이 부동산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센트럴시티는 공항터미널, 특급호텔, 백화점을 갖췄지만 면세점은 없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애경이 센트럴시티를 인수할 경우 제일 먼저 면세점 설립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센트럴시티쪽에선 그간 직영하던 명품점의 영업이 부진해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과 백화점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명품몰은 개점 초부터 신세계와 센트럴시티간에 시빗거리가 되기도 했다. 업종이 백화점과 겹치는 만큼 센트럴시티의 명품몰 운영이 ‘반칙’이라는 게 신세계쪽의 주장이었던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선호 회장의 센트럴시티가 운영하던 명품몰은 신통찮은 성적을 올렸고 이어 신선호 회장마저 센트럴시티 운영권을 애경쪽에 넘긴 것. 문제는 애경이 이 자리에 면세점 등 유통업을 차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때문에 신세계에선 센트럴시티와 애경간의 계약금이 건네지기 전인 지난 상반기에 강남점 매장 확대를 위해 센트럴시티쪽과 협상을 서두르기도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매장 확대 협상을 하기 위해 센트럴시티쪽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졌는데 애경쪽 사람들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미 신세계쪽에서도 애경의 진입에 대해 경계 경보가 발령된 상태인 것. 어쨌든 신세계의 매장 확대건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신세계에선 명품몰 자리 3천5백 평과 현재 센트럴시티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백화점 매장 위의 9~10층 1천5백 평을 추가로 매장으로 임대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애경쪽에선 이번 센트럴시티 경영권 인수를 계기로 애경그룹의 매출 포트폴리오를 소비재와 석유화학 제품 위주에서 유통과 부동산 개발쪽의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 올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신세계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애경의 센트럴시티 인수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신세계다. 신세계는 본점 재건축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실제로 점포 문을 열 때까지는 최소한 3~4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신세계의 불안은 강남점의 독특한 성격에 있다.
신세계 강남점은 건물의 장기 임차 방식이 아니다. 유통업계에선 드물게 매출액의 1.5%를 센트럴시티에 내주는 수수료 매장 방식인 것. 일각에선 센트럴과 신세계의 강남점 계약기간이 10년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세계에선 20년이라고 주장해 센트럴시티와 계약 내용도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강남의 고급소비공간으로 떠오른 센트럴시티가 신세계와 애경의 치열한 싸움터로 변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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