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정계복귀 시점에…정치적 의도 보인다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아내이자 배우인 최명길과 tvN 예능프로그램 ‘따로 또 같이’에 출연해 매회 화제를 낳고 있다. 정계 입문 전 김 전 대표는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국회 입성 뒤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만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그의 ‘예능 외도’를 향한 궁금증이 상당하다. 김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최근 예능 출연을 통해 대외 활동을 재개했다.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뒤 두문불출하다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는 시점과 맞물려 그가 택한 곳은 다름 아닌 예능이다.
# 김한길 예능에서 폐암 투병 고백…집안 일상 공개
김한길 전 대표 부부가 출연하는 ‘따로 또 같이’는 같은 여행지에서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남편과 아내를 보이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부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관찰예능 형식을 취하는 만큼 김 전 대표 부부의 일상은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겨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그 과정에서 부부가 사는 집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결혼 24년차 부부의 일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예능의 강점은 때때로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내기도 한다. 김한길 전 대표는 ‘따로 또 같이’에서 지난해 폐암으로 투병한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그는 방송에서 “지난해 연말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아내가 24시간 곁에서 챙겨줬다”며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고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라며 “그 무렵에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와서 출연을 결정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경험하는 예능이지만 김한길 전 대표는 비교적 소탈하게 자신의 일상을 내보인다. 정치와 예능의 차이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치에서는 내 의견에 대해 50%의 반대가 있다는 걸 전제하지만 예능에서는 더 많은 시청자가 공감해야 성공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배우이기 이전에 정치인 아내 최명길의 내조를 엿볼 수 있는 점도 예능의 미덕이다.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 방송 화면 캡처.
비슷한 시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예능에 출연하면서 대중과 소통을 시작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입당설이 제기돼, 거취에 관심이 집중된 그는 아내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와 함께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 출연하면서 결혼 33년차 부부의 일상을 보이고 있다. 정계 입문 전부터 잦은 방송활동으로 시청자와 친숙했던 오 전 시장은 오랜만의 예능인 ‘아내의 맛’을 통해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능의 강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적극 활용한다. 15개월 된 손자를 끔찍이 아끼는 할아버지의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하고, 중년 여성 시청자를 사로잡을 요리 실력을 과시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아내의 맛’은 부부의 일상 공개가 주요 내용이다 보니, 이들의 집이 자주 배경으로 나온다. 유명 정치인 부부의 집은 그 자체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설정. 실제로 방송 때마다 이들 부부의 집은 인테리어 등 사소한 것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 ‘이미지 메이킹’ 효과적…‘의도적 출연’에 부정적 시선도
정치인은 연예인 못지않게 ‘이미지’가 중요하다. 어떤 이미지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대중 즉 유권자의 반응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 메이킹에 가장 효과적인 예능은 이들 정치인에 매력적인 기회일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가는 통로이자, 한편으로는 의도한 방향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장르가 바로 예능이다.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대부분 ‘부부동반’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한 최적의 선택이다. 효과는 곧장 이어진다. 오세훈 전 시장은 ‘아내의 맛’을 통해 동갑 친구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알려 주목받았다. 고등학생 때 친구의 병문안을 다니면서 그 친구의 동생인 지금의 아내와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방송 화면 캡처.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부도 이런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부부동반으로 고정 출연하면서 전국구 인지도를 쌓았다. 방송에 출연하던 당시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성남시장’의 신분이었다. 경기도지사 도전을 앞두고 아내인 김혜경 씨와 예능에 출연, 다정한 ‘사랑꾼 남편’의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앞선 대선 과정에서 쌓인 날선 이미지가 예능 출연을 계기로 부드럽게 희석됐다. 이후 출마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한때 방송에 출연하는 정치인이 늘면서 ‘폴리테이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유독 예능에 집중된 모양새다. 꼭 고정출연이 아니더라도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등도 예능에 얼굴을 비추면서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쪽에선 정치인의 예능 출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꺼낸다. 이미지 구축이나 대중과 소통을 이유로 들지만, 어디까지나 특정한 ‘의도’를 갖고 예능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오세훈 전 시장처럼 하필 정계 복귀설이 나오는 시기 예능에 나서는 상황에 회의적인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부부가 동시에 유명해지면서 더 센 구설에 휘말리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 부부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