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출마설·장관 입각설’ 임 실장 이동 여부가 인적개편 폭 가를 분수령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을 방문해 지역 상품권으로 과메기를 구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앤장은 결국 정권의 부담만 안긴 채 물러났다. 참여정부 당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참여정부 청와대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간 갈등의 판박이다. 국민의정부 시절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이 전 부총리는 ‘경제위기의 해결사’와 ‘모피아’(재무부+마피아)란 극단적 평가를 받았다. 참여정부 핵심이었던 운동권 그룹과 종합부동산세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참여정부 데자뷔’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친문(친문재인)계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제2의 김앤장 사태’는 언제든 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정가의 시선은 연말·연초 인적개편 폭으로 쏠린다. 김앤장 경질로 인적개편의 물꼬는 트였다. 핵심은 시기와 규모다. 추가적인 인적쇄신 폭이 ‘핀셋 교체’ 수준을 넘느냐는 연말·연초 정국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3년차 국정 플랜 및 여권의 21대 총선 전략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21대 총선은 오는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다. 인적개편의 시작은 김앤장 교체였다. 이를 계기로 일부 부처 장관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 2기 전열을 가다듬겠다는 것이 연말·연초 인적개편설의 핵심이다.
‘키맨’은 문재인 정부 실세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21대 총선 출마와 통일부 장관 입각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임 실장의 이동은 연말·연초 인적개편의 폭을 가르는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임 실장이 비서실장직에서 물러나고 친문계 핵심 인사가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연말·연초 인사는 중폭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부분 개각설’을 포함한 인사 개편의 유동성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문 대통령의 인사가 김앤장 교체에만 그친다면,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야권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구심력은 점점 약화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내각 개편이 힘을 받는 이유”라고 밝혔다. 위기에 처한 문 대통령이 청와대 및 내각 개편을 고리로 국면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11월 초 현재 현역 의원 장관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김영춘 해양수산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유은혜 교육부, 진선미 여성가족부 등 7명에 달한다. 차기 총선 출마자로 자의 반 타의 반 거론되는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불가피하다. 청와대 한병도 정무수석, 백원우 민정비서관, 권혁기 춘추관장 등이 대표적이다. 총선 공천 일정 등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정도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올해 연말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추진할 것이란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일부 비서실의 통폐합 및 분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취임 1년 2개월째인 지난 7월 26일 ‘3실장 12수석 49비서관’ 체제로 개편한 바 있다. 앞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20여 명의 참모진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청와대 내부 개편이 이뤄졌다. 청와대는 당시 광역자치단체장 출마자는 1월 말, 기초단체장 출마자는 2월 말까지 각각 거취를 정리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문 대통령의 고심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집권 3년차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타개할 보완재 찾기의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보완재 찾기에 실패한다면, 집권 3년차 증후군을 시작으로 촉발할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정권 전체를 휘감을 수도 있다. 외치 하나에 의존하는 문 대통령의 아슬아슬한 지지율을 보면, 보완재 찾기에 정권의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1월 6일∼8일까지 자체 조사해 다음 날 공개한 11월 2주차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54%로, 9월 2주차 이후 가장 낮았다. 6월 3주차(75%)와 비교하면, 약 30%가 빠진 셈이다. 반면 부정평가는 36%로, 9월 2주차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6월 3주차(16%)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연말·연초 인적쇄신의 변수로는 ▲임종석 실장의 교체 여부 ▲수석 비서관급 개편 ▲각 부처 장관 교체 등이 꼽힌다. 애초 여권 복수 인사는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외교적 빅이벤트가 연달아 대기 중인 상황에서 ‘임종석 교체’가 불러올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임 실장은 현재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친문(친문재인) 관계자는 “당 안팎에서 임 실장을 흔들면서 BH(청와대)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문 대통령의 신뢰는 여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앤장 교체 이후 연말·연초 인적쇄신과 맞물려 친문계 핵심인 노영민 주중대사의 차기 비서실장설이 재부상하고 있다.
수석 비서관급 개편은 일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권 내 알력 다툼이 만만치 않아 시기나 범위 등은 안갯속이다. 정권 초 ‘왕수석’으로 불린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권 내부에서 ‘김수현 비토론’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정책통 의원도 “부동산뿐 아니라 탈원전 정책 등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며 “환경운동 관점에서 프레임을 짠 탈원전도 그의 작품이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여권뿐만이 아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 전 수석을 향해 ”장하성 옆방에 있는 파트너”라고 비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김수현을 정책실장에 앉히면 또다시 경제부총리는 허수아비가 된다”고 일갈했다. 앞서 김 전 수석은 최근 청와대의 탈원전 정책 책임자 자리를 윤종원 경제수석에게 넘겼다. 차기 정책실장으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경제실정을 둘러싼 논란은 여권의 뜨거운 감자다. 경제무능 프레임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특히 ‘거시경제 전문가가 없는’ 경제팀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뼈아픈 부분으로 꼽혔다. 김앤장의 전공은 각각 예산과 경영학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승·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등과 같은 거시경제 전문가가 없었다. 김 전 부총리 후임으로 홍남기 전 국무조정실장이 임명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청와대 경제정책을 두고 계속 말이 나왔던 이유는 거시경제를 모르는 이들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문 대통령의 김앤장 동시 경질로 내부 엇박자의 확산은 일단 막았다. 내부 분열의 불씨를 꺼트릴 가장 쉬운 카드는 ‘대규모 인적쇄신’이다.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 추가 징발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보완재 찾기는 고차 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오히려 내년 상반기 내 7명의 현역 의원 장관에게 돌아갈 시간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초부터 국정추진의 발목을 잡았던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 대북정책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 하락할 수도 있다”며 “국정 지지율이 45% 안팎으로 떨어지는 순간,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 및 2인자 싸움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