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강력한 요청” 장하성 유임에서 교체로 막판 선회…임종석 거취와도 맞물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진=청와대 제공
# 장하성 교체 급선회 왜?
김동연 부총리 교체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다. 여권 주변에선 김 부총리가 국회 예산안 통과가 마무리되는 대로 그만둘 것이란 얘기가 끊이질 않았었다. 김동연 장하성 동시 교체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오보”라면서도 “장하성은 아니다”라고 미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김 부총리 교체는 맞지만 장 실장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장 실장도 교체하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이에 대해 한 친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장 실장은 ‘문재인노믹스’의 설계자다. 지금 어렵다고 장 실장을 바꾸면 결국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다. 참여정부 집권 2년차 후반기에 경제 참모들을 교체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경험도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장 실장 교체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당의 강력한 요청 때문인 것으로 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당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김 부총리뿐 아니라 장 실장 교체를 원했고, 이를 청와대가 받아들인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문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는 최근 달라진 당청 관계를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해찬 대표는 수평적인 당청관계 정립을 내세워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추미애 대표 시절 청와대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불만을 갖고 있던 표심은 이 대표에게로 쏠렸다.
실제 이 대표는 취임 후 ‘상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장 실장 교체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 친문 의원은 “장 실장에 대한 세간의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 ‘연말이면 고용이 나아질 것’이나 ‘내가 강남에서 살아봐서 아는데’와 같은 발언은 경제 컨트롤타워에 있는 인사가 하기엔 너무 부적절했다”면서 “이번에 장 실장이 김 부총리와 함께 물러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여러 경로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 정권 출범 때부터 ‘옥신각신’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정권 출범 후부터 여러 사안을 놓고 부딪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이 주관한 경제회의에서 둘이 큰 소리로 공방을 벌인 모습도 여러 번 회자됐다. 이 과정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패싱’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를 두고 공직사회에선 정권마다 흔히 되풀이되는 ‘늘공(늘 공무원-김동연 부총리)’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장하성 실장)’의 관계로 해석하기도 했다.
둘의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된 것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통령 핵심 공약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효과를 두고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이 상반된 의견을 내놓으면서다. 둘 사이에 엇박자가 계속되자 문 대통령은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완벽한 팀워크’를 주문했다. 김 부총리는 물론 장 실장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었다.
그러나 김 부총리와 장 실장 관계는 최근까지도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정책실 간엔 오히려 적대 기류마저 감돈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청와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고집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각종 경제지표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둘이 ‘팀킬(아군 공격)’을 하고 있으니 시장의 불안은 더욱 가중됐다. 청와대가 동시 교체를 결심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전직 경제 관료들은 청와대의 스탠스가 ‘김앤장’ 갈등을 부추겼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부총리가 실권을 갖고 정책을 집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권을 쥐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전직 기재부 고위 간부는 “청와대가 자꾸 투톱이라고 말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경제부총리가 원톱을 맡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청와대 정책실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경제부총리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라면서 “경제부총리에게 전권을 주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차기 구도에도 영향 미칠까
정가의 시선은 김 부총리와 장 실장 후임으로 누가 발탁되느냐에 쏠린다. 청와대는 복수의 후보군을 대상으로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부총리로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이 오르내린다. 민주당에선 현역 의원 입성을 내심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이해도와 함께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를 인선 기준으로 정했다고 한다. 장하성 실장 후임으론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알려진 김수현 사회수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경우 추가 인사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선 결과에 따라 청와대 수석과 장관 자리에 공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중폭 이상의 개각이 단행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 교체 후 추가 개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올해 초라한 경제 성적표를 받아 든 문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새 진용을 갖춰 심기일전한다는 각오로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차기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임종석 실장 거취가 관심을 모은다. 당 일각에서는 임 실장도 현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장하성 실장과 함께 임 실장도 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비문계 의원은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가 갈등을 빚을 때 비서실장은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고자 했다면 제대로 중재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임 실장에 대한 견제론으로 해석된다. 차기를 둘러싼 여권의 파워게임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얼마 전 임 실장은 문 대통령 순방 기간 DMZ 방문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20년 총선 출마 및 차기 대권 행보를 위해 ‘자기 정치’에 나섰다는 게 골자다. 임 실장이 특정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그러나 임 실장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임 실장은 차기와 관련해 어떠한 얘기를 한 적도 없다. 사의를 표명하지도 않았다”면서 “경제 투톱 간의 문제에 대해선 임 실장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