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권은 몰라도 퍼블리시티권은 침해될 수 있어…“정치가 꼭 엄숙할 필요 있나”vs“공적기능 약화 우려”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물품 제작 등 상업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정작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인 초상권‧퍼블리시티권은 무시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닮은 인형 제작 및 판매자의 트위터 캡처.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인형 제작은 수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졌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캐릭터화하고, 이를 인형 제작 업체에 의뢰해 구매한 뒤 다시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덕질’했다. 그러나 정치권 인물을 대상으로 인형을 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인형 판매자는 트위터 ‘재니와 수니 총대(@pinkrosewith)’를 통해 인형 제작 배경을 안내하고 있다. 김 지사의 팬 카페 ‘김경수와 함께 장미로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힌 이 판매자는 “위 인형은 실존 인물이 아닌 캐릭터 인형으로 수익금 없이 공동구매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일부 문 대통령과 김 지사 지지자들은 인형 제작에 반감을 드러냈다. 하나는 초상권 침해 문제고 또 다른 하나는 문 대통령과 김 지사를 수익사업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판매자는 “대통령, 도지사 인형이 아니라 제 취향의 인형이다. (실존 인물과) 닮은 것 같지만 제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라고 했다. 또 “해당 (인형 디자인의) 도안 및 인형에 대한 저작권 역시 제가 구매했다”고 덧붙였다.
양제상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문 대통령과 김 지사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를 제작해서 공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초상권보다는 초상권과 비슷한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상권이 특정인의 사진, 얼굴, 모습 등에 국한된다면 퍼블리시티권은 초상권에 ‘경제적 이익, 가치를 상업적으로 사용 또는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추가된다.
여기서 위반 여부는 ‘얼마나 닮았느냐’다. 아무리 당사자들 이름을 달고 나온 인형이라 할지라도 신체 특정 부위(얼굴)가 실존 인물과 닮지 않았다면 법원은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가수 싸이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싸이의 노래 음원이 저장된 칩을 넣고, 싸이의 의상을 본떠 만든 인형을 판매한 완구제조업체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싸이 봉제인형의 외형이 실제 싸이 캐릭터와 비슷하지 않다”며 업체에 손을 들어줬다.
인형 판매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트위터 계정을 태그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만약 문 대통령과 김 지사가 이를 허락 및 동의했다면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모든 상품에 대해 동의 또는 허락한 바 없다. 확인되는 곳들은 ‘판매를 지양해 주십사’ 당부 드리고 있기는 하다”라고 말했다. 경남도청 비서실 측에서도 “(김 지사 측에서) 허락한 바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형상화한 가면이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판매자에게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부과해 판매를 중지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초상권 침해 문제보다는 대통령이 조롱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은 “형사 책임을 부과하기는 어려우나 민사 책임과 관련해 ‘초상권과 성명권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책임’ 성립이 가능하다”라는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지사의 많은 지지자들이 이 인형 제작 및 판매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히 초상권 침해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네티즌들은 인형 판매 트위터 계정에 “판매자의 (인형 판매) 홍보로 인해 문 대통령이 조롱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지사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다”, “두 사람을 이용한 돈벌이를 멈춰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이와는 반대로 정치인을 캐릭터,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정치가 꼭 엄숙할 필요가 있나”, “아이돌을 좋아해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다를 것 없다”, “정치인을 좋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등의 다양한 찬성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치인의 ‘아이돌화’를 두고 전문가들 입장도 엇갈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팬클럽 내에서 지지하는 정치인을 공유하고, 만들어진 공감대 속에서 이뤄지는 장삿속과, 지지기반을 넓히려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비판할 것은 아니다. 개인의 취향일 뿐이고 지나쳐서 돈벌이로 몰입하지 않는 이상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채진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건전한 정치 참여를 통해 쓴소리를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숭배하게 되면 그 정치인들은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없고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게 되니 결과적으로는 그 정치인이 발전할 수 없다”며 “정치인의 공적인 기능이 약화될 수 있고, 그 인물의 단점이 숨겨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건 아니다”고 밝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럼프 인형’이 온라인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 아마존 캡처
미국의 경우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상업화가 활발하게 일어난다. 다만 다른 점은 아이돌화가 아닌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트럼프 인형(Trump doll)’을 검색하면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거나 알몸인 상태의 트럼프 대통령 인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 교수는 여기에 대해 “미국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에 비판적인 자기 의사표시가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경향이 있고, 한국은 ‘숭배’가 너무 지나쳐 공적기능이 약화되고 인기영합주의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