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폭행” 여론 들끓다가 현장 영상 공개되자 분위기 반전…여성 단체 행동으로 이어질까
‘이수역 폭행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이 사건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A 씨는 이를 ‘여성 혐오 범죄’의 한 갈래라고 주장했다. A 씨에 따르면 B 씨 일행은 A 씨 등을 향해 “말로만 듣던 메갈X(온라인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말) 처음 본다” “얼굴 왜 그러냐”며 모욕적인 말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A 씨 등도 모욕으로 맞서며 몰래 사진을 찍으려던 B 씨 일행을 막아섰다고 했다.
이후 술집 밖을 나가서도 언쟁과 몸싸움이 이어지다가 A 씨 일행이 B 씨 일행에 떠밀리거나 발로 차여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뒤통수가 패여 뼈가 보일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A 씨는 “처음 시비는 커플과 일어났고, (커플의) 남자가 때릴 것처럼 시늉했다가 실제로 폭행이 벌어지자 커플은 도망쳤다”라며 “때리겠다는 시늉과 욕은 자기보다 작고 여린 여자한테 폭력성을 보인 것이며 그 남자 무리(B 씨 일행)한테 폭력을 쓰도록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머리 짧고 목소리 크고 드센 X들도 별 거 아니라는 그 우월감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올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당시 A 씨 일행은 반삭 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은 채였다. 일반적인 여성들처럼 머리가 길거나 꾸미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남성들로부터는 ‘메갈X’이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을 당했으며, 중상에 이르는 심한 폭행 피해까지 입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건이 ‘여성 혐오에서 촉발된 폭행 사건’으로 이슈화되면서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는 “피해자가 머리가 짧고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공격당한 것이니 우리도 머리를 짧게 잘라서 피해자와 연대하자”라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른바 ‘탈코(탈출+코르셋의 합성어. 화장이나 긴 머리 등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던 문화에서 벗어난다는 뜻) 연대’였다. 여성들은 ‘내가 탈코러(탈코+er, 탈코하는 사람)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삭발과 노메이크업 사진을 SNS에 올려 A 씨 일행에게 힘을 보탰다. 이렇게 사건은 일방적인 폭력으로 이어진 여성 혐오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연대로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서 제3자가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영상 속에서 A 씨 등은 B 씨 일행을 향해 “내 XX(여성의 성기)가 네 X(남성의 성기)보다 더 크다” “저 새X들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XX가 뭔지도 모른다” “병X 새X들, 너네 X 6.9cm”라고 외치고 있다. B 씨 일행 역시 “메갈X아”라고 맞서지만 대부분 여성들의 고함소리에 가려져 있다. 술집에는 A 씨와 B 씨 일행 외에도 점주와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
‘이수역 폭행 사건’ 관련 페미니스트 슬로건.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A 씨의 일행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어도 이 사건이 ‘일방 폭행’이 아니라 ‘쌍방 폭행’으로 접수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했다. 부상을 입힐 정도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옷이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멱살을 잡는 등 상대방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신체접촉 행위는 폭행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일단 쌍방 접촉이 발생하면 어느 한 쪽의 피해가 다른 쪽에 비해 크더라도 쌍방 폭행이 된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CCTV, 관계자 진술, 폭행의 정도 등을 종합 판단해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지 내가 8을 맞았고 상대방이 2를 맞았다고 해서 나는 피해자고 상대방이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라며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나를 떠나 결과적으로 양 측 모두 신체적 접촉이 일어났는지를 가리는 것”라고 설명했다.
이어 “술집 내에서는 몸싸움이 없었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다루는 폭행 사건은 술집 밖, 계단에서 벌어진 여성의 추락 사고가 될 것”이라며 “폭행치상으로 판단할 것인지 과실치상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또 양 측의 모욕 발언에 대해서는 “폭행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해서 폭력 행위가 참작되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나 통용될 이야기다. 다만 상대방이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욕설 등으로 극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면 폭행과는 별개로 모욕 고소를 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건이 ‘여혐’에서 촉발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술집 내 CCTV는 소리가 녹음되지 않아 어느 쪽에서 먼저 모욕 시비를 건 것인지 확실하지 않고, A 씨와 B 씨 측은 모욕과 폭행 모두 상대방이 먼저 시작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건 당일 임의동행 형식으로 A 씨와 B 씨 일행을 조사했지만 이 때 작성한 진술서에도 양 측 모두 성 혐오 발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 일행과 처음으로 여혐과 페미니즘 관련 시비가 걸린 커플을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이수역 이용해서 문재앙 탄핵하자” 지령 내리기도 ‘이수역 폭행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 해시태그를 타고 이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아졌다. 이 ‘#이수역폭행사건’ 해시태그는 트위터에서 하루 동안 실시간 트렌드 상위권으로 노출됐다. 일부 여성들은 사건을 외국어로 번역해 외국 페미니스트와의 연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앞서 ‘강남역 살인사건’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등으로 촉발됐던 여성들의 단체 행동처럼 이번 사건 역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처럼 보였다. 만 하루 만에 청원 30만 명을 넘긴 것도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성들의 결집력을 노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분위기가 함께 형성되고 있는 것이 포착됐다. 극단적인 여성 우월주의와 남성혐오주의를 표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는 “이수역 살인미수남(B 씨 일행) 사건에 문재앙(문재인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 반드시 섞어라”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각 여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문재인을 반드시 탄핵해야 여성들이 산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 나서 여성이 미친듯이 죽어나간다.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댓글을 달도록 회원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다. “악재에 문재인을 무조건 섞어서 자칭 페미대통령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수역 사건 관련 시위를 위해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워마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박 전 대통령의 석방과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해 왔던 바 있다. 상당수의 회원들은 대한애국당의 태극기집회, 문재인 정권 퇴진 범국민 총궐기 등 보수단체의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고 후기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