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제한 쿼터제 있는 데다 자국 콘텐츠 비약적 발전…“차원 다른 아이디어 필요”
‘한한령’ 해빙기가 시작되면서 보이그룹 아이콘이 지난 9월 중순 중국 톈진의 한 극장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 CF찍고, 팬미팅 열고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아이콘은 지난 9월 중순 중국 톈진(天津)의 한 극장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약 800여 명의 현지 팬이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다수의 인민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에 대해 민감히 반응한다. 때문에 한한령 이후 K팝 스타들의 중국 내 대규모 공연이나 팬미팅이 일체 중단됐다.
하지만 아이콘은 당당히 공연 비자를 받고 톈진에서 팬 사인회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콘이 빅뱅의 뒤를 잇는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그룹인 것을 고려했을 때 중국 당국의 이 같은 허락은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콘 역시 공연 비자를 내준 중국 측에 일종의 보답(?)을 했다. 팬 사인회 당일 현장에는 팬들이 7톤가량의 쌀 화환을 보냈다. 꽃 화환의 경우 1회적으로 쓰고 버리기 때문에 국내외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쌀을 보내는 것으로 의미와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아이콘은 이 쌀을 중국 내 단체에 기부하며 중국 인민을 챙기는 인상을 심어줬다.
최근에는 더욱 의미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CF 시장에 한국 배우가 모델로 발탁되며 꽁꽁 얼어붙었던 한한령에 균열을 낸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배우 안재홍이다.
안재홍은 12월부터 중국 전역에 방송되는 미국 포드자동차 CF의 메인 모델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재홍 측은 이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고 11월 초 조용히 중국으로 건너가 촬영까지 모두 마쳤다. 괜히 모델 섭외를 받았다는 것이 미리 기사화된 후 현지 여론이 좋지 못하면 무산되는 것을 우려한 조심스러운 행보였던 것이다.
배우 안재홍은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김정봉 역으로 중국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사진=tvN ‘응답하라1988’ 제공
이 외에도 가수 아이유는 지난달 중국의 한 화장품 브랜드 론칭 행사에 참여했다. 이 모습은 중국 매체를 통해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대표적 한류스타인 배우 이종석이 출연한 중국 드라마 ‘비취연인’ 역시 내년 초 중국 위성TV를 통해 방송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매체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한한령 종식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한 중국 현지 에이전트는 “한한령이 한창이던 때와 비교해 한류 콘텐츠 소비에 대한 규제가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각 업체들도 적당한 시기에 맞춰 한류 콘텐츠를 중국에 소개하는 중개인 역할을 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내년 초, 설 연휴 정도가 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가장 우세하다”고 귀띔했다.
# 예전 같은 중국이 아니다?
한류 시장의 원류는 일본이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욘사마(배용준) 열풍이 일어났고, ‘미남이시네요’의 근짱(장근석)이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혐한류 바람이 불면서 일본 내 한류가 퇴조했다.
새로운 활로는 중국이었다. 2014년 초 배우 김수현 주연작인 ‘별에서 온 그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중국 시장을 활짝 열었다. 한국 드라마가 날개 돋친 듯 비싼 값에 팔렸고 한류스타들이 줄지어 탄생했다. 그들의 중국 내 CF 출연료는 2년 기준 30억 원을 호가했다.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이 닫힌 뒤, 다시금 일본 시장이 활성화됐지만 최근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다시금 일본 내 혐한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 시장이 다시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tvN 예능 ‘윤식당’의 포맷과 유사하게 촬영해 표절 논란이 일었던 중국 후난 tv의 ‘중찬팅’ 사진=온라인커뮤니티
또한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2014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짝퉁의 나라’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지만, 중국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베끼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유명 예능을 판권 구매 없이 베껴 비판 여론이 불거졌으나 중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국내에서도 마땅히 규제하거나 책임을 물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 사이 중국은 한국의 PD나 작가 등 제작진을 영입해 제작 노하우를 배웠고 이제는 한류 콘텐츠 못지않은 자국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또 다른 중국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더 이상 핑크빛 전망을 주지 않는다”며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춘 만큼 이를 뛰어 넘는 아이디어와 기획이 있어야 구멍이 좁아진 중국 시장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