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없는 찐빵’은 찐빵일까 아닐까
일본 이후 한류의 최대 시장으로 꼽히던 중국 시장이 한순간 ‘영업정지’를 선언하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곧 끝나겠지’라고 예상했던 한한령은 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새 길을 모색했다. 반면 중국 진출을 위해 우회 도로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 K-팝 감성을 고수하되, 한국적 이미지를 쏙 뺀 콘텐츠를 통해 중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이른바 ‘한류 3.0’ 시대의 도래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새 보이그룹 ‘보이스토리’.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 현지인으로 돌파하라!
시가총액 1조 원 클럽에 가입한 JYP엔터테인먼트(JYP)는 21일 새 보이그룹 보이스토리를 선보인다. 이들은 JYP 소속이지만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어떻게 중국 활동이 가능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보이스토리의 멤버 6명은 모두 중국인이다. 한위(14), 즈하오(13), 씬롱(13), 저위(13), 밍루이(12), 슈양(11) 등 평균 나이 약 13세인 10대 6명으로 구성됐다.
보이스토리는 JYP의 중국법인인 JYP 차이나와 TME(중국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 그룹)가 합작 설립한 신성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중국 현지 회사가 참여했기 때문에 법인 설립에도 문제가 없었다. 외부에서 봤을 때 보이스토리는 중국 그룹이나 다름없다.
지난 1년간 중국 팬들과 익숙해지기 위한 물밑 작업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2016년 9월 중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바이두 티에바와 함께 보이스토리의 선발 과정을 담은 ‘이상한 아저씨가 왔다’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JYP 소속 중국어권 스타인 갓세븐의 잭슨, 미쓰에이 출신 페이 등이 함께 출연해 힘을 실었다.
또한 정식 데뷔에 앞서 1년간 4곡의 프리(pre) 싱글을 발표하는 ‘REAL! 프로젝트’로 기반을 다졌다. JYP의 수장인 박진영이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을 맡은 ‘Enough’를 데뷔 타이틀곡으로 삼는다는 것도 관심을 받는 대목이다.
반면 “보이스토리를 ‘한류 그룹’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JYP의 자본과 노하우가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멤버 전원이 중국인인 데다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데 제3국의 팬들이 그들을 과연 ‘K-팝 그룹’으로 바라볼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또한 그들이 과연 한국에서 활동하며 정착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볼 대목이다.
이런 우려를 뒤로하고 대형 가요기획사들은 중국 시장에 새 활로를 뚫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차세대 보이그룹으로 각광받는 NCT의 유닛 그룹으로 하반기 ‘NCT 중국팀’을 현지에서 데뷔시킬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멤버 구성이나 방향성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NCT에 이미 여러 명의 중국인 멤버가 포함돼 있고, 팀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 NCT가 새로운 중국인 멤버를 충원한 중국 팀을 선보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지인들로 구성된 그룹을 왜 ‘한류3.0’ 시대를 여는 시점으로 보는 것일까? 이는 멤버 구성에 따른 전략 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류 1세대 그룹들은 대부분 한국인 멤버로 채워졌다. 그때만 해도 해외 시장 진출은 요원한 일이었다. ‘한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팬들을 사로잡기 위한 ‘내수용 그룹’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막상 한국형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자 아시아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굳이 해외 진출을 도모하지 않았어도 외국에서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그렇게 해외 공연 및 팬 미팅을 하며 K-팝 한류 시장의 물꼬를 텄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한류 2세대 그룹에는 외국인 멤버가 포함됐다. 일본, 중국 국적 멤버들이 특히 많았다. 한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태국, 베트남, 대만, 홍콩에서 온 멤버들이 속속 합류했다. 이 멤버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활동할 때는 ‘센터’에 선다. 이는 한국인들이 박찬호, 류현진을 중심으로 메이저리그 팀인 LA다저스를 응원하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외국인 멤버들은 모국어를 공유하는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속팀의 해외 진출에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인을 배제하고 외국인만으로 구성된 한류 그룹이 제작되는 시대가 왔다. 그 사이 시행착오가 많았다. 엑소의 크리스, 타오처럼 중국인 멤버들이 한국에서 데뷔해 스타덤에 오른 후 계약을 위반하며 자국으로 돌아가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는 사례가 등장했다. 그들은 자국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국내 소속사에서 법적 문제를 제기해도 그들을 제어하는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한령과 같은 정치사안과 맞물려 한국 콘텐츠가 유통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경험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각 기획사들은 ‘현지인 그룹’이라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외국인 혹은 외국 콘텐츠라는 이질감을 없애는 동시에, 그들이 독자적 행보를 위해 자국으로 돌아갈 일도 없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제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각 국가들도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해 각종 제동장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넘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며 “현지인으로 구성된 한류 그룹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