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티켓파워 여성이 좌우…‘혐오감’ 이용해 반짝 주목 받아도 수익과 연결될지 의문
가수 산이 씨가 발표한 신곡 페미니스트가 부적절한 가사로 비난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최근 이수역 술집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은 여성과 남성의 혐오 대결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산이 씨는 1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수역 폭행사건’ 동영상을 게시했다. 여성들의 대화 장면이 담긴 이 영상은 남성비하 발언이 포함돼 있다. 산이의 페이스북에서 이 동영상은 7000명에 육박하는 좋아요 호응을 받았다. 이수역 동영상을 게시한 바로 다음 날인 15일 산이는 신곡 ‘페미니스트’를 발표했다.
신곡 페미니스트는 13만 회나 조회되며 화제가 됐다. 문제는 가사가 심각하게 여성을 비하하고 심지어 여성혐오를 적극 주장하는 데 있다. 가사에는 ‘합의 아래 관계 갖고 할 거 다 하고 왜 미투해? 꽃뱀? 걔넨 좋겠다. 몸 팔아 돈 챙겨’, ‘나도 할말 많아 남자도 유교사상 가부장제 피해자야 근데 이걸 내가 만들었어?’라는 내용이 담겼다. 과거와 달리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심하지 않은데 왜 남성을 혐오하냐는 게 주된 골자다. 여성운동을 비난하는 남성의 서사와 정확히 오버랩되는 가사에 신곡은 남성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일부 지지층은 있었지만 산이의 신곡은 여성혐오 가사 탓에 맹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가사에는 ‘그렇게 평등을 원하면 군대는 왜 가지 않느냐’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산이조차 군대를 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산이 군대 가게 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논란이 확대되자 11월 17일 산이가 참여하기로 했던 행사에서 산이 공연을 취소시켰다. 즉각 산이는 신곡이 여성혐오 곡이 아니라는 해명글을 내놨지만 악화된 여론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산이는 17일 오전 ‘6.9’라는 신곡을 또 발표했는데 앞선 페미니스트보다 수위를 낮춰 성평등은 당연히 지지하지만 과도한 혐오가 문제라는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
BJ로 활동 중인 배우 강은비 씨 역시 페미니즘과 선을 그으며 남성 지지층을 모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씨는 개인방송을 통해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고 남녀가 서로 존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생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방송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을 단순히 과격하다고 치부해 여성계 반발을 불렀다.
인권운동가 오세라비 씨는 각종 남성단체 연사로 러브콜을 받는 떠오르는 여성혐오 인사다. 오 씨가 지난 8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책을 낼 때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 씨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 후 몇몇 언론사 인터뷰를 하며 오 씨에 대한 지지층이 생겼다.
오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그램의 이론에 1톤의 피해의식이 담긴 페미니즘이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현주소”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오 씨는 여성운동이나 인권운동과 직접 연관된 경력이 없지만 자극적 발언으로 지지세가 높아졌다. 지난 10월에는 곰탕집 성추행 가해자를 구하기 위해 출범한 시민단체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의 첫 집회에 참여했다.
사회 이슈를 적극 활용해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SNS가 발달된 만큼 특정 이슈로 일단 화제몰이가 되면 이를 사업과 연계하고, 수익을 올리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계에서는 여성혐오나 남성혐오 등 극단적 혐오감을 활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도서, 공연, 음반 등에 지갑을 여는 주된 계층은 20~40대 여성이다.
문화계 관계자는 “문화산업에서 티켓파워는 전적으로 여성에 좌우된다. 정작 콘텐츠 제작자는 이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며 “온라인이나 댓글은 1%의 생각일 뿐인데 이를 대세라고 파악해선 안 된다. 온라인 반응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