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더 이상 호구 잡히지 않을 것” “그래도 최정·양의지는 걱정 없다”
이들은 KBO의 공인을 받은 대리인(에이전트)을 내세워 올해부터 FA 협상에서 선수를 대신해 구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 이번 FA 신청자들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선수는 단연 포수 양의지. 그는 11월 22일 원소속 구단인 두산 베어스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FA 관련 얘기가 오갔을 리는 만무하다.
FA 시행을 앞두고 KBO 사무국과 각 구단은 FA 상한액을 4년 총액 80억 원으로 묶는 내용을 골자로 한 FA 제도 개선안을 선수협에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선수협은 FA 상한액 제도는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아 FA 제도 개선안 자체가 백지화됐었다. KBO는 투명성 강화를 위해 올해부터 FA 이면 계약을 금지하고 옵션 포함 모든 계약 사항을 계약서에 기재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일요신문’에서는 KBO리그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3명의 에이전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대어 양의지의 계약과 FA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안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에이전트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이름은 익명으로 표기한다.
양의지. 연합뉴스
FA 최대어로 꼽히는 양의지는 지난 시즌부터 관심을 받았던 선수였다. 야구계에서는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양의지 행보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원 소속 구단인 두산에서 양의지를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해 4년 80억 원의 포수 최고 연봉을 받은 강민호(삼성)의 몸값을 넘어 100억 원 이상의 대형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올 시즌 10개 구단들은 ‘오버 페이’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선수협의 거부로 FA 상한액을 4년 총액 80억 원으로 묶는 FA 제도 개선안이 백지화됐지만 구단들은 아무리 최대어라고 해도 FA 계약으로 100억 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양의지 영입 관련해서 가장 많이 거론된 구단이 롯데 자이언츠였다. 롯데는 올 시즌 강민호의 공백으로 어려운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지난해 롯데가 강민호와 FA 계약을 접은 배경에 올 시즌 양의지가 FA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란 해석도 분분했었다.
그러나 막상 FA 시장이 시작되자 의외로 롯데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기존 포수진의 육성을 주장한다. 양의지란 포수가 매력적인 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내부 자원들인 나종덕, 정보근, 안중열 등을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양상문 신임 감독이 이전 롯데 감독이었을 때 강민호를, LG에서는 유강남을 성장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양 감독의 포수 육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후문이다.
에이전트 A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양의지를 100억 원대에 잡는 건 부담스럽지 않았던 액수였다”면서 “그러나 올 시즌 FA 상한 총액 등이 거론되면서 구단들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양의지 정도의 거물급은 포수난을 겪고 있는 팀이 관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액의 몸값과 보상금 및 보상 선수 제도가 FA 선수 영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FA 상한 총액이 선수협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구단들은 이제부터라도 FA 선수들한테 ‘호구’ 잡히는 일은 안하겠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양의지는 두산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과연 두산이 겉으로 드러난 입장처럼 진심으로 양의지를 잡으려 하는지 궁금하다. 두산은 양의지가 원하는 만큼 거액을 제시할 정도로 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정. 연합뉴스
또 다른 에이전트인 B 씨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최정, 양의지의 FA 계약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아직 FA 선수 측과 제대로 만나지 못한 구단들도 많다고 들었다. 이유는 눈치 싸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FA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해도 최정, 양의지 등 고액의 몸값을 형성하는 선수들 관련해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FA 시장에 형성된 몸값이 있는데 그게 한순간에 내려가기 어렵다. FA 선수들 몸값은 구단이 형성한 금액이다. 아무리 선수들이 많은 돈을 요구해도 구단이 맞춰주지 않는다면 100억 원대 이상의 FA 시장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구단이 선수들 몸값을 이끌어 놓고 지금은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건 암묵적인 담합이나 다름없다. 구단들이 선수 영입 경쟁을 벌이지 않고 선수들 몸값을 낮추는 데 비공식적으로 담합했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원 소속 팀이 아닌 타 구단이 FA 선수를 영입할 경우 그 팀은 원 소속 팀에 직전 연봉의 200%와 보호 선수 20인 외 1명, 아니면 직전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 한다. 15명의 FA 선수들 중 최정은 12억 원, 박용택, 윤성환은 8억 원, 양의지 6억 원이다. 만약 최정을 SK 외의 구단에서 영입할 경우 4년 총액 80억 원 안팎의 계약금 외에 최고 36억 원을 지출해야 한다. 양의지는 최고 18억 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정, 이재원은 원 소속팀인 SK 잔류가 유력해 보인다. 나머지 선수들은 괜히 FA 신청을 했다가 FA 미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유명 선수를 다수 두고 있는 에이전트 C 씨는 FA 등급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 FA 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A급의 FA 선수들이 정작 FA 신청을 못하는 이유가 그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FA 등급제가 시행되면 선수들이 원활하게 팀을 옮겨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메이저리그는 팀 이동이 잦은 편인 반면 KBO리그는 트레이드 외에는 유니폼을 바꿔 입는 기회가 많지 않다. 선수들 이동이 잦고 몸값의 거품을 빼기 위해서는 FA 등급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FA 등급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특급 FA들만 혜택을 누리는 FA 시장에서 A, B급 이하 소형 FA 선수들도 자유롭게 이적할 권리를 주자는 게 기본 취지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FA 계약이 어려운 이유는 보상에 따른 부담 때문이다. 등급제가 도입되면 등급별 보상 규정을 달리할 수 있어 구단으로선 부담을 덜 수 있다.
KBO가 선수협회에 보낸 제안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초 자격을 얻은 FA 선수일 경우 A등급은 보호선수 20명 이외 1명과 전년도 연봉의 200%를, B등급은 보호선수 25명 외 1명과 전년도 연봉의 100%를, C등급은 보상선수 없이 전년도 연봉의 100%만 지급하는 내용 등이고 FA 재취득 선수의 경우에는 또 다른 형태의 보상 제도를 실시한다.
에이전트 C 씨는 지난해 롯데 이우민을 예로 들었다.
“이우민이 FA 자격 행사에 나섰지만 보상금 문제로 FA 미아가 되면서 결국 은퇴를 선언했었다. 롯데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호 선수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보상금이 있다 보니 이우민을 데려가겠다고 나선 구단이 없었다. 만약 이우민한테 어떠한 조건도 달려 있지 않았다면 다른 팀에서 1년 이상은 선수 생활을 연장했을 것이다. 다행히 올해 롯데 코치로 복귀하면서 어느 정도의 아쉬움을 풀기는 했는데 우리도 일본처럼 하루 빨리 FA 등급제를 시행한다면 이우민과 같은 사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전년도 연봉을 기준으로 A, B, C등급을 나누는 FA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A, B 등급은 보상 선수가 있지만 C등급은 아예 보상선수, 보상금액이 없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에이전트들은 모두 FA 등급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FA 등급제가 시행돼야 선수들 몸값이 잡힐 수 있다는 의견도 한몫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