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조강특위, 당협위원장 교체 등 ‘인적청산’ 예고…친박 “공천학살 땐 앉아서 당하지 않을 것”
친박계 의원들이 지난 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장면. 사진 박은숙 기자.
친박계 내부에서는 앉아서 당할 것이 아니라 친박 신당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신당론이 구체화되자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공식 회의에서 “계파 논리를 살려서 분당 운운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강특위가 친박계를 몰아내려 한다는 논란에 대해 이진곤 한국당 조강특위 위원은 “당이 이지경이 됐는데도 친박이니 비박이니 따지는 것을 정말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교롭게도 친박계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영남을 인적쇄신 대상으로 꼽은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우리 당 텃밭부터 쇄신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 당이 호남에서 인적쇄신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면서 “기득권에 안주해온 인사들에 대한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박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지만 친박계 다수가 인적쇄신 대상에 포함된 만큼 양측의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도 텃밭인 호남에서 인적쇄신을 단행하려다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대거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강특위는 차기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당협위원장 교체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당협위원장직을 잃게 되면 향후 공천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친박계 정우택 의원은 1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바른미래당 5~6명이 기습 복당하고 그분들이 (기존 당협위원장을 쫓아낸 자리에) 당협위원장으로 들어온다는 항간의 소문이 있다”며 “이것이 갈등의 불씨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친박 유력 인사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신당 추진 의사를 전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친박 신당 추진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문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유영하 변호사 측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친박 신당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워 대구·경북(TK)을 지역기반으로 한 신당을 만든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신당을 만들어도 지금은 아무도 따라 나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바른정당의 실패를 보면서 한국당 내에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인식이 쫙 퍼졌다. 일부 친박계 인사가 신당을 만들어도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고 특히 당직자 중에는 따라 나갈 인사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물밑에선 친박 신당 추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친박 핵심 인사들은 ‘보수 분열은 안 된다’며 선을 긋고 있다.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도 최근 비박계 수장 격인 김무성 의원 등을 접촉하며 ‘반문(반 문재인)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윤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에서 친박, 비박 거론하는 것은 국민 아무도 관심 없는 무의미한 당내 멱살잡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지금 당장은 친박 신당 가능성이 낮지만 차기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당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지금 보수 통합이 중요하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울 때냐”면서도 “우리는 보수 통합을 하려고 하는데 자꾸 저쪽(비박계)에서 (인적쇄신 하겠다고) 싸움을 걸어오니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우택 의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적쇄신으로 공천배제하면 친박계) 현역의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했다.
조강특위의 인적쇄신안에 대해 ‘당내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반발했던 우파재건회의의 구본철 대변인은 “현재까지는 친박 신당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서도 “(만약 친박계를 공천 배제할 경우에는) 그때는 창당을 포함한 모든 논의를 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우파재건회의는 한국당 내 친박 등 비당권파 모임이다.
구 대변인은 “원내대표 및 당권 경쟁에서 우리(친박)가 승리할 거다. 우리가 승리할 건데 패배를 가정하고 그런 논의를 할 필요가 있느냐”면서도 총선 공천배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과거 친박연대식 신당 창당이다. 친박연대는 지난 2008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인사들이 만든 정당이다. 총선 한 달 전 급조된 정당이었음에도 거대 양당에 이어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지역구 6석을 비롯해 총 14석을 얻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선 한 달을 앞두고 창당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시 친박연대가 선택한 방식은 기존 정당 중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정당에 단체로 입당한 후 정당명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당시 친박 의원들은 미래한국당에 입당한 후 친박연대로 당명을 변경했다.
친박연대 방식이라면 총선 공천 상황을 지켜본 후에도 얼마든지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 현재 중앙선관위에 등록되어 있는 정당은 32개나 된다. 이 중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정당은 10개도 안 된다. 일단 총선에서 살아남으면 과거 친박연대에 몸담았던 의원들처럼 한국당에 복당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 전직 한국당 의원도 “그런 방식의 신당 창당이라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전직 의원은 “친박들이 보수를 위해 희생할 사람도 아니고 (공천에서) 잘리면 (신당 창당)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또 다른 한국당 인사는 “친박 신당론이 일종의 협박 카드”라고 분석했다. 이 인사는 “너희들이 우리 자르겠다고 하면 우린 나가겠다고 하면서 친박계에 대한 인적쇄신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라면서 “원내대표 선거와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 표심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선 친박 신당설과 맞물려 박근혜 사면설도 언급된다. 여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보수 분열의 카드로 쓸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급격한 지지율 하락으로 차기 총선이 불안해진 여권으로서는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카드라는 평가다.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될 경우 친박계는 친박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재평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친박계와 탄핵에 찬성했던 바른정당 복당파 간 갈등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일부 친박계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당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선 청와대에서 이미 사면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박 전 대통령 측 법률 지원단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근 사면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낸 적 없느냐는 질문에도 “박 전 대통령이 그런(사면) 이야기를 하실 분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