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성패 ‘좌지우지’…‘스모킹 건’은 SNS 메시지·GPS 위치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의 소유자로 지목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가 11월 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수원지방검찰청으로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수원지검 공안부(부장검사 김주필)는 11월 27일 오전, 이재명 경지도지사의 자택과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이 지사의 부인이며 ‘혜경궁 김씨’의 트위터 계정(@08__hkkim)의 소유주로 지목된 김혜경 씨의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최근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대상은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진 2013년 이후부터 김 씨가 사용한 5대의 휴대폰이었다. 김 씨는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2016년 7월 안드로이드폰에서 바꾼 아이폰을 트위터 글 게재 등에 사용한 것 같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압수수색은 허탕으로 끝났다. 검사 2명과 수사관 6명이 동원됐지만, 압수수색에서 단 한 대의 휴대폰도 찾지 못했다. 김 씨 측은 휴대폰 행방을 묻는 수사관에게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명도 “휴대폰부터 버려라” 조언
그렇다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아무 근거 없이 내줬을까. ‘아니’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혜경궁 김씨(@08__hkkim)’ 트위터 계정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아내 김혜경 씨로 보이는 정황을 여러 개 찾아냈다. 최근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며 “특히 SNS를 통한 명예훼손 같은 사건의 경우 휴대폰을 통해 올리는 게 대부분인 탓에 휴대폰 입수는 수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지사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강연 중에 휴대폰을 수사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1월 24일 광진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촉구 시국강연’ 중간 이 지사는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 드리겠다”라고 운을 뗀 뒤 “여러분은 절대로 사고를 치시면 전화기를 뺏기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안에는 여러분의 인생 기록이 다 들어있다”면서 “어디서 전화했는지, 언제 몇 시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뭔 사진을 찍었는지 싹 다 본다”며 “이거 하나만 분석하면 여러분들이 휴대폰을 산 이후로 어디서 무슨 짓을 몇 시에 뭘 했는지 다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사기관에 휴대폰을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안종범 전 수석을 언급한 뒤) 청와대 수석이나 되는 사람이 보안교육을 받았을 텐데 (그걸) 모르겠냐”며 “내가 한 게 아니고 시켜서 했다는 증거를 두고 (검찰에서) 빨리 찾아가라 한 거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 지사의 발언을 놓고, 변호인으로서 정확한 조언이라는 평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 의뢰인의 상담이 오면, 휴대폰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번호 변경 등을 은밀하게 조언하기도 한다”며 “범죄 증거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데 요새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휴대폰, 당일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그 위치가 다 휴대폰에 기록이 남아 휴대폰에 각종 자료를 최대한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판사들 대부분이 수사 전후로 휴대폰을 바꾼 탓에, 수사팀 내부에서는 “수사 방해 목적으로 자료를 없애려고 한 게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기도 했다.
# ‘휴대폰 knows everything’
숨기려는 피의자들이 늘어나다보니, 이를 상대하는 수사기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불시에 압수수색 등을 통해 휴대폰을 확보하려고 한다.
명예훼손 사건을 맡고 있는 한 경찰청 관계자는 “휴대폰 통화기록 등은 통신기록 영장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외 사진 자료나 메모, 혹은 SNS 메시지 등에서 수사의 스모킹건(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 자료를 뜻하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휴대폰 성능도 이 같은 흐름을 더 유도하고 있다. 요새는 GPS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사용이 늘어난 부분도 있다. 단순히 통화 기록만 있는 게 아니라, 위치도 다 기록된다는 얘기다.
앞선 경찰 관계자는 “단순한 문자나 카카오톡 등 SNS 메시지는 물론, 이메일 등 스마트폰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지면서 여러 자료가 휴대폰 안에 알게 모르게 저장돼 있다”며 “자료를 삭제한다고 해도 복원을 하면 대부분 자료를 살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다. 일요신문 DB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서 검찰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녹음 파일 200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정 전 비서관이 “버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가족들이 처분하지 않은 탓에 고스란히 검찰 손에 넘어갔다.
앞선 관계자는 “단순 녹음 자료 외에도 휴대폰과 PC에서 연결된 클라우드 서버 안에 수사에 핵심이 되는 자료들이 나오기도 하고, 문자보다 SNS로 은밀한 대화를 더 많이 하지 않냐”며 “이제는 컴퓨터보다 더 중요한 게 휴대폰 확보다. 이를 위해 첫 압수수색에서 무조건 휴대폰 확보를 위한 영장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 버리면 끝? 잘못 버리면 ‘되레 처벌’
그렇다고 단순하게 수사를 받게 됐을 때, 휴대폰 등을 없애면 되는 것일까. 정답은 ‘NO’다. 이제 경찰은 단순하게 ‘휴대폰이 고장 나서 바꿨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휴대폰이 고장 나서 바꿨다’고 진술하면 그냥 믿어줬는데, 하도 그렇게 진술하는 피의자들이 많아서 요새는 휴대폰이 망가졌거나 분실했다는 통신사 및 AS센터 신고 접수가 실제로 있었는지, 몇 개월이나 사용했는지, 고치기 위해서 실제 AS센터 등을 방문하는 시도를 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파손의 실제 여부를 확인해 피의자의 진술 신빙성을 입증한다는 얘기다. 앞선 경찰 관계자 역시 “휴대폰을 변경하는 날, 통화 기록에서 잡히는 위치 등을 확인해 ‘가지 않던 강이나 바다’에 간 게 확인되면 고의적 휴대폰 속 증거 인멸 시도로 본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통신사에 잡힌 마지막 통신 위치가 ‘디가우징(강한 자기장으로 전자제품 속 자료를 파기하는 방법) 업체 근처로 잡힐 경우 더더욱 의심을 한다”며 “예전처럼 호락호락하게 믿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물론 본인이 본인의 증거를 버리는 것은 죄는 아니다. 하지만 큰 사건의 경우 구속영장 청구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제3자를 시켜서 할 경우 증거인멸은 죄가 되지만, 자신의 범죄에 관한 증거자료를 훼손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구속영장 등을 청구할 때 ‘증거 인멸 시도’는 중요한 영장 발부 사유다. 이런 점을 영장청구 시 더 강하게 법원에 어필한다”고 언급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