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관련 수사 지속적 확대…일본 “한일 관계 경색 장기화” 반발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사법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만을 남겨 놓으며, 마지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수사에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앞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부터 정부와 검찰 등에 “강제 징용 관련 다시 일본에 배상을 물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는데, 최근 검찰이 김앤장까지 압수수색하자 한층 불만이 심화된 분위기다.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표현도 일본 측 관계자 입에서 나올 정도인데, 이는 표현에 조심스런 일본 외교 문화를 감안할 때 상당한 수준의 불만 표출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일제 징용 판결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옭아매려는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변호사 경력을 보면 일본 측 항의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받는다.
# 사상 최초 김앤장 압수수색?…“개인 자료 확보 위한 것”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달 12일 일제 전범기업을 대리했던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A 변호사의 사무실을 들이닥쳤다. 검찰은 A 변호사는 당시 임 전 차장으로부터 청와대, 외교부와 대법원 간의 소송 관련 논의 진행 상황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임종헌 전 차장의 공소장에도 김앤장의 이름이 4차례 등장한다.
김앤장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세양빌딩. 고성준 기자
검찰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접 관여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랜 지인이기도 한 A 변호사를 2015~2016년 사이 세 차례 만났다. 서울 서초구 일대 음식점에서 만난 것은 물론, 대법원장 집무실에도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 지연 방안과 소송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확인해줬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지난달 12일 A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이달 말 양 전 대법원장을 공개 소환해 확인할 방침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앤장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인 탓에 ‘사상 최초’라는 말부터 로펌 수사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이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게 검찰 설명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몇 차례 수사 과정에서 김앤장에 찾아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아온 적이 있다”며 “처음 벌어지는 압수수색도 아니고, 해당 변호사에게만 자료를 받아온 것이다. 개인에 대한 수사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 충격 빠진 법조계, 현직 판사들 “정말 사실이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판사들이다. 현직 판사들은 대법원장과 변호인 간의 재판 거래 의혹에 충격에 빠졌다.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법원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기업 소송 대리 측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연락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정말 놀랍다”고 우려했다. 그는 “제가 임관을 한 지 8년차쯤 되는데 사실 판사가 변호사를 사건 관련해서 만난다거나 특히 집무실로 사건 관련해서 변호사가 찾아온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 역시 “검찰 수사 결과를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대법원장이 직접 변호인 측과 만났다거나, 재판 흐름이나 전망을 미리 다 언질을 줬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일본 측 “한일 관계 경색 장기화될 것” 반발
그런 가운데, 법원만큼이나 이번 사안을 유심히 지켜보는 측이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대법원의 강제 징용 청구권 인정 판결과 함께 검찰 수사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에게 개인적으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징용 판결과 관련, 올해 말까지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이 없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 돌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계속되는 검찰 수사도 일본 입장에서는 불만이다. 일본통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 검찰이 김앤장까지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데, 일본 측에서는 ‘대법원 판단 과정에 일본이 부정하게 개입한 듯한 명분을 만든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잡기 위한 수사에 한일 관계가 흔들리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 “문 대통령, 일본 군함도 사건 맡기도…경색 불가피”
하지만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의 과거 사건과 발언을 보면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한일 관계 냉각 흐름에 대응할지도 내다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에 원고 측 대리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만큼, 쉽사리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로 활동하던 지난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 6명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은 2006년 11월까지 재판에 참여했는데, 당시 소장 제출과 서면 준비, 증거 자료 제출 등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3·1절 기념식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인류 보편의 양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청와대 측은 “법률가 출신인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일본이 우리 국민에게 가했던 극심한 고통과 피해를 참회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설명했는데, 이 같은 판단이 올해 말 대법원 판결과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선 일본통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부터 검찰 수사까지, 법조계 이슈들이 계속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주는 구조가 됐다”며 “우리 정부 대응 여부와 정도에 따라 한일 관계가 추가로 경색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