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장악력’ 의문부호 품는 이들 늘어…이르면 내년 초 참모진 개편 주목해봐야
조국 민정수석. 사진=청와대 제공
거세지는 인적쇄신 요구에 휩싸인 청와대의 선택지는 ▲조국 재신임 ▲조국 역할론 조정 ▲조국 경질을 통한 참모진 개편 등 크게 세 가지였다. 일단 문 대통령은 조 수석에 힘을 실어주면서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이에 여권은 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12월 4일)하기 전까지 ‘조국 구하기’에 전력을 쏟았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2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 “이제 민정수석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조 수석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지 하루 만에 여권 인사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2월 3일 국회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조 수석 경질 요구는 정치적 행위”라며 “(이번 사태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조국은 촛불정권의 상징”(안민석 의원), “곳곳에서 흔들지만 이겨내고 개혁의 꽃을 피워 달라”(민병두 의원), “국민의 명령만을 기억하라”(박광온 의원), “조국 책임론은 대통령 흔들기”(김한정 의원), “문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함께할 단 한 분의 동반자”(손혜원 의원).
여권의 전방위적인 감싸기는 문 대통령 발언으로 촉발했다.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던 12월 1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내에서 많은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라며 “믿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조 수석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의 비위 의혹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다. 여권 인사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조 수석에 대한 신임으로 이해했다. 한때 조 수석 페이스북에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의 정보가 삭제되면서 사퇴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그는 12월 2일 민주당 중진인 이석현 의원과 통화에서 “실컷 두들겨 맞으며 일한 후 자유인이 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로써 1년 7개월간 근무한 조 수석은 7개월만 더하면 문민정부 출범 이후 최장수 민정수석에 오른다. 그 이전에는 문민정부 때인 문종수 전 민정수석(2년 2개월)이 가장 오래 재직했다.
당·정·청 수뇌부의 역할도 컸다. 정치권 안팎에선 당·정·청 수뇌부가 회동을 통해 조 수석 유임으로 결론 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2월 2일 총리 공관에서 만나 ‘조국 구하기’를 결의했다는 것이다. 당·정·청은 지난 7월부터 매주 일요일 총리 공관에서 6인 회동을 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 민주당 원내대표와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정무수석 등도 함께한다. 현안에 따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9인 회동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조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를 ‘대통령 흔들기’ 프레임으로 규정짓고 대야 공세에 나선 것도 이들 모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권의 상징성을 가진 조 수석이 야권의 공세로 사퇴할 경우 조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전방위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힘의 대결’을 통해 방패막이를 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야권 공세를 막아내지 않으면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법조인 출신의 진보 성향 소장파인 조 수석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 개혁 트리오로 꼽혔다. 이 중 장 전 실장은 경제실정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했다. 국민의정부 출범 이래 청와대 민정수석 중 비법조인 출신인 조 수석 이외에 김성재·이호철 전 민정수석뿐이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는 얘기다. 범야권 성향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조 수석이 물러나면, 사법개혁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정·청의 엄호사격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최근 몇 달 사이, 문재인 정부 인사의 공직기강 해이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특감반)에 파견됐던 검찰 소속 김 아무개 수사관(검찰 6급)은 사적으로 경찰의 수사내용을 캐물었다. 더구나 비위 의혹자는 11월 14일 원소속으로 복귀 조치됐다. 이 같은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같은 달 28일까지 청와대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은 격앙됐다. 급기야 조 수석을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빗대기도 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조국 수석을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전 수석으로 만들지 말라”고 힐난했다. 야권 한 관계자도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의 사법개혁은 국회 의결 사안”이라며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안으면 반대 프레임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조 수석의 조직 장악력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에 논란이 된 김 아무개 수사관은 지난 8월 자신의 감찰 부처인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5급 채용에 지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를 인지하고 무산시켰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조 수석이 그때 인사 교체를 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조 수석이 10명짜리 작은 조직 하나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에서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재연한 민주당에 대한 우려도 여전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나선 것은 과잉 대응”이라며 “(이참에) 조 수석의 인사검증 책임과 사법개혁, 개헌 등 성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권은 조 수석을 향해 “인사 검증과 부패 감시, 공직기강 등 세 가지가 모두 펑크 난 상황”이라며 연일 때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일단 ‘조국 유임’을 택했지만, 정국 상황에 따라 단계적 조치를 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우선 거론되는 것은 ‘조국 역할’ 재조정이다. 앞서 조 수석은 지난 3월 헌법 개정안과 지난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법무부 장관 대신 청와대 민정수석이 관련 발표를 주도하는지를 놓고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경제를 비롯해 노동현안 등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조 수석은 “국민의 뜻을 살피는 것 또한 민정수석의 업무”라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선 ‘튀는 행보만 한다’고 지적한다. 조국 사퇴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박지원 의원도 “학자 마인드로 뜬금없는 발언을 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쓰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 추진은 당·정의 공식 시스템에 맡기고, 조 수석은 본연의 임무인 인사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청와대 참모진 개편 등 인적검증의 검은 그림자는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르면 내년 초 참모진 개편 등을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기 비서실장으로 유력한 노영민 주중대사가 최근 정권 인사들을 만났다는 얘기는 끊이지 않는다. 노 대사는 친문(친문재인)계의 핵심이다.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비서실장과 조직본부장을 각각 맡았다. 이밖에도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과 조윤제 주미대사, 우윤근 주러시아대사,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와대 합류설에 휩싸였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복귀설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초 인적쇄신에 나설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간 인사에서 적잖은 약점을 노출해 국면전환을 꾀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