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아픔 씻고 생태 천국으로
호찌민 시에 속한 껀저 섬마을. 유네스코 생태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일요신문] 안개 낀 맹그로브 숲입니다. 동남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붉은 뿌리를 드러내고 볼품없이 자라는 초목. 그 맹그로브 숲을 보트들이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이 숲에서 물고기들이 산란을 하고, 이 숲들이 파도나 침식을 막아줍니다. 맹그로브는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 지구환경을 지켜주는 버팀목입니다. 그러나 이 숲들이 최근 관광지로 개발되거나 새우양식장으로 변하면서 지구의 온난화를 더욱 빠르게 했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새우 종류가 이 숲에서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식생활로 점점 수난받는 숲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동남아 관광지에서 이렇게 맹그로브 투어를 많이 하는 까닭은, 숲의 고요와 잔잔한 물가의 평온함을 함께 느끼기 때문이지요. 오늘처럼 안개 낀 날은 마음마저 촉촉해집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폭격과 고엽제로 초토화된 껀저 숲(왼쪽)과 세월이 흘러 복원된 껀저의 맹그로브 숲.
제가 가본 맹그로브 숲은 인도네시아 바탐 섬도 운치가 있었고, 말레이시아 랑카위 섬도 자연 그대로 아름다웠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하는 베트남 남부 호찌민 시에 있는 껀저(Can Gio) 섬은 아픈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사이공 강이 바다로 흐르는 이곳은 원시 상태의 자연 습지입니다. 호찌민 시에서 남동쪽 약 55km 거리에 있는 섬마을입니다. 물코코넛과 맹그로브 밀림 속에 여러 갈래의 강과 수로들이 있습니다. 그 정글 안에 수많은 식물들과 원숭이, 악어, 황새들이 서식합니다. 이 거대한 갯벌은 2000년 유네스코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학생들이 자연의 생태와 야생동물을 관찰하러 찾아옵니다.
섬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페리에서 내리고 있다.
껀저 섬은 호찌민 근교에 있는 구찌, 떠이닌과 함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에겐 ‘신비하고 두려운’ 지역이었습니다. 당시엔 ‘남부의 해방구’라고 불렀습니다. 구찌터널은 남부 공격루트의 종착지였고, 떠이닌은 험준한 산을 이용한 공격루트였으며, 껀저는 강과 밀림 속의 유격대 지휘본부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껀저는 대낮에도 하늘을 가리는 어두운 맹그로브 숲이 있었고, 미로 같은 수로가 있어서 기습공격을 하고 사라지기엔 적절한 곳이었지요. 보이지도 않고 추적도 안 되는 이 맹그로브 숲을 초토화하기 위해 미군은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다 식물을 죽인다고 고엽제를 살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식물뿐 아니라 사람까지 죽게 했습니다. 맹그로브 나무도 새카맣게 말라 죽었습니다.
껀저 섬은 일명 원숭이 섬으로 불린다.
30년이 흐르고,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다시 맹그로브 숲을 일구어냈습니다. 지금은 보트로 그 숲을 달리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일명 원숭이 섬으로도 부릅니다. 이곳은 물에 염분이 많아 빗물을 항아리에 받아 식수로 씁니다. 껀저 섬에는 민물게, 바닷게, 새우가 많이 나 호찌민 시의 해산물 창구가 되고,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 시민들의 주말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가는 깟라이 페리보트 선착장은 많은 시민들로 붐빕니다.
안개 낀 맹그로브 숲으로 다가갑니다. 맹그로브 나무는 새끼를 치는 나무라고 합니다. 나뭇가지에서 씨앗이나 묘목이 열리고, 떨어뜨려 새끼 나무를 자라게 합니다. 나무줄기는 베트남에서 최상품의 숯이 됩니다. 뿌리는 문어 다리처럼 물속에 깊이 내려 땅이 침식당하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그 붉은 뿌리 사이로 연약한 물고기들이 산란을 하러 옵니다. 맹그로브 숲 사이로 난 좁다란 물길을 따라 갑니다. 이 숲속에서 강과 바다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껀저 섬과 사이공 강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와 나의 지난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