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배 갈등 원인 가능성…친족 간 ‘횡령’ 형사처벌 불가 알면서도 왜? 배경 의문
목포의 학교법인 홍일학원은 홍일중고등학교, 전북과학대학교 등을 보유한 재벌 사학이다. 민선 1, 2기 목포시장을 지낸 권이담 전 이사장이 1976년 설립한 홍일학원은 재단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고교평준화 시기 명문 고등학교로 발돋움했다. 권 전 이사장이 2016년 타계한 뒤 아내인 허영애 씨가 잠시 이사장을 맡았던 홍일학원 재단은 결국 장남 권호 이사장에게로 넘어갔다.
홍일학원 재단의 관사로 허영애 씨가 거주하던 집. 금재은 기자
장남인 권호 이사장 취임 뒤 조용했던 홍일학원이 돌연 고소전에 휘말렸다. 허영애 씨가 장남 권 이사장을 횡령 및 절도 혐의로 연이어 고소하면서부터다. 지난 11월 허 씨는 평소 보관하고 있던 미화 70만 달러(7억 8000만 원 상당)를 아들 권 이사장이 보관 명목으로 가져간 뒤 수차례 돌려달라는 데도 주지 않는다며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목포경찰서 수사과에서 횡령 사건을 수사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허 씨와 권 이사장의 주장이 다른 데다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친족 간의 횡령은 형사처벌이 불가하다
허 씨는 평소 홍일고등학교 옆에 딸린 관사에 살았다. 고등학교 내부에서 관사 후문이 연결돼 있어 재단 관계자들이 평소 이용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허 씨가 직접 거주하는 방에는 따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허 씨는 거주하던 집을 잠시 비우고 서울에 있는 딸 집에서 지내다 50일쯤 지나 돌아와보니 자신의 방과 금고가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 씨는 현금 2억여 원과 3캐럿짜리 다이아반지, 1kg 골드바 6개, 롤렉스 시계, 귀금속 등 총 20억 원이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관사 정문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경찰은 주택 안팎을 촬영한 CCTV를 통해 권 이사장이 재단의 권 아무개 행정실장과 함께 관사에 드나든 장면을 확인했다. 사건 당일 권 이사장과 행정실장은 열쇠 수리공을 데려와 어머니 방문 잠금장치를 열게 한 뒤 방에 무단 침입했다. 게다가 이날에 맞춰 집안 대소사를 맡아 보는 직원들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통상 절도의 경우 잠금장치를 훼손하면 특수절도 혐의가 적용되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권 이사장은 수도권 성모병원의 의대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주말에는 목포를 찾아 재단 업무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권 이사장은 장시간 어머니가 연락이 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아 행방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강제로 방문을 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또 방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금품을 가져가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머니와 장남 사이에 고소가 잇따르자 지역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고 권이담 이사장과 가까운 한 측근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재산을 물려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장남을 고소할 정도면 불효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허 여사는 고령이지만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포 현지에선 자식들 사이의 재산 다툼이 사건의 발단이라는 얘기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니가 장시간 집을 비운 건 딸의 집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인데, 권 이사장이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어머니 행방을 찾았다는 대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권 이사장 형제로는 권욱 전 전남도의원, 권경훈 큐로컴 대표, 권경 전북과학대 교수 등이 있다. 형제가 모두 각자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홍일학원은 권호 이사장 체제로, 전북과학대학교는 권경훈 이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급하게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나와 결국 노모가 장남을 연이어 고소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친족 간 절도나 횡령이 형사처벌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민사소송 등에 활용하기 위해 형사 사건화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목포경찰서 수사과에서 수사한 횡령 사건과 목포경찰서 형사과에서 수사 중인 절도 사건은 모두 혐의가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권호 이사장에 대해 처벌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보니 노모 측이 경찰 행정력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자식이 뭘 훔쳤다고 해도 형사처벌이 되지가 않는데 그걸 계속 한다면 그 배경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히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신고와 고소가 접수된 만큼 해당부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홍일고등학교를 찾았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재단 이사장의 사건에 대해 조심스러워 했다. 관사 역시 집을 지키는 관리자 한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사 업무를 보는 관계자는 “허 여사님은 지금 여기 계시지 않는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권호 이사장과 어머니 허 씨는 모두 사건과 관련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