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1차지명 받은 변우혁 “어머니께 받은 사랑 나눔으로 보답하겠다”
한화 이글스 신인 변우혁과 어머니 이선자 씨.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한화 이글스, 천안북일고 내야수 변우혁 지명하겠습니다.”
2018년 6월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KBO리그 10개 구단이 연고지 내 최고 유망주를 선발하는 ‘KBO리그 1차 신인지명회의’가 열렸다. 이날 한화 이글스는 대전과 충청권을 대표할 차세대 유망주로 천안북일고 변우혁을 지명했다.
‘차세대 홈런왕’ 변우혁의 1차 지명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변우혁을 키운 어머니 이선자 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쌍둥이 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운 이 씨의 머릿속엔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18일 이 씨를 직접 만나봤다.
‘차세대 홈런왕’ 변우혁의 첫 캐치볼 파트너, 어머니
‘2019 KBO 1차 신인지명회의’에서 한화 이글스에 지명받은 천안북일고 내야수 변우혁. 사진=연합뉴스
10년 전, 초등학생 변우혁은 동네에 소문난 야구 마니아였다. 변우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TV 앞에 앉아 KBO리그 경기를 시청하기 일쑤였다. 어머니 이선자 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어린 변우혁의 잔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변우혁이 폭탄선언을 했다. “야구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부랴부랴 동네 문구점에서 야구 글러브를 두족 구매했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야구장을 검색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동네 뒷산에 조그마한 야구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찾아가는 길이 정말 어려웠어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정말 아들을 향한 사랑 하나로 야구장을 찾아갔습니다.” 이 씨의 회상이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뒷산 야구장’에 도착한 모자는 흥겹게 캐치볼을 시작했다. ‘차세대 홈런왕’ 변우혁의 생애 첫 캐치볼이었다.
어머니와의 정겨운 캐치볼을 마친 뒤 변우혁은 1루 베이스를 향해 힘차게 뛰었다. 그리고, 20cm가 조금 넘는 작은 발로 네모난 베이스를 밟았다. 변우혁은 “베이스를 처음 밟던 감촉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베이스를 밟던 그 감촉이 너무 좋았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앞으로도 야구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변우혁의 말이다.
싱글맘 이선자 씨의 미션 임파서블 “쌍둥이를 키워라”
변우혁의 정신적 지주, 어머니 이선자 씨. 사진=일요신문
혹자는 21세기를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시대”라고 표현한다. ‘엘리트 체육’에 종사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이 말에 더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자식이 운동을 하려면, 돈 들어갈 일이 한 둘이 아닌 까닭이다.
어린 변우혁이 처음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을 때 이선자 씨는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씨가 아들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없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씨는 혼자 힘으로 쌍둥이 남매를 먹여 살려야 하는 ‘싱글맘’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아들에게 운동을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혁이와 밤 12시까지 뜨거운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당시 우혁이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변우혁의 미래를 놓고 벌어진 뜨거운 심야토론의 승자는 ‘초등학생 변우혁’이었다.
변우혁은 우여곡절 끝에 ‘야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변우혁이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변우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충청권 야구 명문 천안북일고에 진학한 뒤에도, 변우혁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017년 변우혁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월드 파워 쇼케이스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월드 파워 쇼케이스’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아마추어 홈런왕’들이 자웅을 겨루는 홈런 더비(강타자 중 어느 선수가 더 많은 홈런을 치는지 겨루는 이벤트)다. 변우혁은 ‘2017 월드 파워 쇼케이스’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거포 유망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머니 이 씨는 꿈을 향해 전진하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싱글맘의 육아일기’
12월 18일 한국야구회관에서 이만수 홈런상을 수상한 뒤 어머니와 기쁨을 나누는 변우혁 사진=일요신문
2018년은 ‘싱글맘’ 이선자 씨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이 씨가 어렵게 키운 쌍둥이 남매가 모두 취업에 성공한 까닭이다.
야구 선수의 길을 걷는 아들 변우혁은 ‘2018 KBO리그 1차 신인지명회의’에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았다. 변우혁의 쌍둥이 누나는 ‘국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이 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물어볼 정도로 아이들이 잘 자라줬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함께 고생했습니다. 이제 ‘육아일기 1권’은 접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이 씨의 말이다.
이제 이 씨에게 남은 바람은 하나다. 바로 ‘쌍둥이 남매’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씨는 “쌍둥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우혁 모자의 동행, 2막을 열어 젖히다
프로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한화 이글스 변우혁. 사진=일요신문
프로 무대에 ‘수석’으로 입성한 변우혁은 아직 운전면허시험을 보지 않았다. 이선자 씨가 “음주운전 등 각종 사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귀띔한 까닭이다.
열 아홉 살 청년으로서 충분히 반기를 들 수 있는 상황인데도 변우혁은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무조건 어머니 말씀을 들어야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변우혁에게 어머니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다. 변우혁은 “어머니께 받은 사랑은 평생을 가도 갚을 수 없다”며 “그 은혜를 갚을 방법은 하나다. 성공해서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후배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변우혁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은인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힘겨운 시절에 도움을 주신 천안북일고 후원회와 양준혁 야구재단. 그리고, 주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변우혁은 감사 인사와 더불어 단호한 결의를 전했다.
이제 변우혁은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베풀려 한다. 새로운 도전이다. 도전의 필요조건은 ‘프로 무대에서의 성공’이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변우혁은 청주에서 개인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변우혁 모자의 동행 제1막은 이제 막을 내렸다. 어머니의 사랑을 나눔으로 되갚으려는 변우혁의 열정은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열 아홉살 ‘차세대 거포’ 변우혁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