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받아야 뒤탈 없다며 접근해 성범죄 시도…돈만 받고 연락 끊거나 중국산 정품 둔갑시키는 경우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실적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임신중절유도제다. 2016년에는 193건으로 전체 0.8%에 불과했던 것이 올해 9월에만 벌써 1984건이 적발돼 2016년 대비 10배가량 늘었다.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신중절약의 불법거래 급증은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 강화와도 관련이 적지 않다. 지난 8월 복지부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낙태 의사 처벌 강화’라는 규칙을 발표하자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이에 다급해진 여성들이 임신중절약 미프진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돼 2005년 세계보건기구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될 만큼 안정성이 입증된 약품으로 유럽과 미국 등 6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정식 의약품으로 도입되지 않아 ‘단코 코리아’, ‘미프진 메디컬’ 등 불법 판매업체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수요가 계속 급증하면서 최근에는 개인 간 거래로 그 시장이 암암리에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미프진을 구하는 여성을 겨냥한 성범죄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미프진을 구하는 여성에게 “약을 갖고 있다”며 쪽지나 메시지를 보내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원래 미프진은 의사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복용하는 약이다. 나도 아는 의사와 함께 마사지를 하면서 복용했다”는 말로 구매자의 경계심을 풀거나 “옷을 다 벗고 마사지를 받아야만 약물이 금방 퍼지고 잔여물이 남지 않아 추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일요신문’은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다는 20대 여성 A 씨를 만났다. A 씨는 임신 사실을 알린 뒤 교제 중이던 남자친구와 다퉈 헤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약을 찾게 됐다고 했다. A 씨에 따르면 판매자는 “미프진의 효과를 보고 싶으면 마사지를 받으라”고 설명한 뒤 “마사지를 하는 사람은 남자인데 의사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망설이는 A 씨에게 “예약을 잡아주겠다”며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한 뒤 의사가 방문할 주소를 알려달라며 만남을 유도했다.
A 씨가 판매자와 나눈 대화 내용 캡처
이미 약을 복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판매자는 이를 ‘후관리’라고 불렀다, 그는 “혼자서 (마사지를) 하면 위험성이 있긴 하다”면서도 “불법이라 보통은 안 해주지만 후관리를 원한다면 의사에게 연락해 보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많은 여성에게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메시지 내용은 한눈에 보기에도 의심스러웠다. A 씨 역시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후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를 회상하며 “약을 구하는 사람은 절박함 때문에 평소처럼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제대로 된 복용법을 물어볼 수 없는 상황에서 판매자가 의사를 연결시켜준다고 하면 믿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0만~60만 원에 육박하는 약값만 받고 사라지는 판매자도 있었다. 이런 범죄 역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개인 간 거래에서 일어났다. 여자친구가 복용할 미프진을 구했다는 30대 B 씨는 “미프진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미프진 정품 박스 사진을 찍어 보낸 사람에게 35만 원을 입금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정품 박스와 함께 배송되는 약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중국산 복제약을 미국산이나 프랑스산 정품약으로 둔갑시키는 일은 쉬웠다. 약품을 운반해 오는 이들은 중국 보따리상인 따이공이다. 따이공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미프진’이라는 글과 함께 중국에서 들여온 미프진 알약 뭉치와 프랑스와 미국산 정품 케이스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따이공 모임 카페에 올라온 미프진 사진 캡처.
중국산 미프진의 국내 유통 경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관련 정보가 오가는 따이공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살펴보다 미프진 구매 노선을 바꾸고 싶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원래는 직접 이우까지 갔는데 지금은 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장기간 계속 거래를 할 사장님을 원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공급 업체를 가장해 연락을 시도했다. 어렵게 접촉이 된 그에게 현재 구입처와 단가를 묻자 “한 세트에 3만 5000원이고 이우에서 가져온 제품”이라고 밝혔다. 이우는 중국 저장성 진화시에 위치한 현급시로 세계적인 일용품 거래의 중심지다. 이 글을 올린 이는 현재 한 불법 판매업체 사이트에서 카카오톡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는 미국 정품인증 미프진을 판다고 홍보하고 있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미프진을 구매하려다 사기를 당했다거나 미프진 정품 여부를 묻는 문의는 많이 들어온다. 약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협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개인 산부인과 원장 역시 “수술을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환자는 꾸준히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정부는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보건 당국은 낙태죄에 대한 헌재 결론이 먼저 나와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식품의약처 관계자는 “먼저 낙태죄가 법적으로 폐지되어야만 미프진 허용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은 이미 5월에 열렸지만 8월 말 최종 선고가 유보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