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시스템 도입 사업 놓고 ‘을’인 티맥스소프트 절차상 불공정성 지적…IBM과 유착 의혹도
2014년 국민은행은 주전산 기기를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려 했다가 임영록 당시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장이 정면충돌하며 사상 초유의 내분이 발생하는 혼란을 겪었다. 임 전 회장은 IBM을 유닉스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이 전 행장은 IBM을 고수하면서 양측이 반목했다. 당시 이 사건은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얽히면서 대형 금융게이트로 발전했고, KB금융그룹의 고위층이 대거 물러나는 후유증을 남겼다.
불과 4년 전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다시 한 번 논란이 일고 있다. 4년 전 논란의 핵심이 하드웨어 성격의 주전산기였다면 이번에는 주전산기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SW)를 놓고 갈등이 불거졌다.
김동철 티맥스소프트 대표이사(왼쪽)와 이희상 티맥스데이터 대표이사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차세대 더 케이 프로젝트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소프트웨어(SW) 전문기업 티맥스소프트는 기자회견을 열어 KB국민은행의 차세대 시스템 도입 사업 ‘더 케이 프로젝트’의 절차상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안하지 않은 외국 기업 제품이 선정됐고, 제안요청서(RFP)에 포함됐던 티맥스 SW는 아무런 검증도 받지 못한 채 배제됐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반면 KB국민은행은 “티맥스의 SW가 국내 은행 시스템에 적용된 사례가 없고, 제안된 제품은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더 케이 프로젝트’는 KB국민은행이 오는 2020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인 클라우드 기반 차세대 금융시스템이다. 총 사업비가 3000억 원이 넘는 올해 하반기 금융권 최대 규모 정보기술(IT) 사업이라 SW업계가 주목해 왔다. 앞서 10월 17일 결정된 ‘더 케이 프로젝트 상품서비스계 고도화 및 마케팅 허브, 비대면 재구축’ 사업은 LG CNS를 따돌린 SK(주) C&C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티맥스에 따르면 SK C&C는 제안요청서를 통해 KB국민은행에 두 가지 안을 제안했다. 1안은 미들웨어(서로 다른 하드웨어와 프로토콜 등을 연결하는 응용프로그램)로 티맥스소프트 ‘제우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은 티맥스데이터 ‘티베로’와 IBM의 ‘DB2’다. 2안은 오라클의 미들웨어 ‘웹로직’과 오라클 DBMS 조합인데 제안되지 않은 IBM의 미들웨어 ‘웹스피어’까지 중간에 검토됐다는 게 티맥스 주장이다.
기자회견에 나온 김동철 티맥스소프트 대표이사는 “제안된 3개 제품 중 우리 SW만 기술 검증을 받지 못했고, KB국민은행이나 SK C&C로부터 기술 검증 배제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결국 IBM만 가격을 제출해 해당 제품이 선정되는 웃지 못할 결과가 생겼다”고 밝혔다.
‘을’의 위치인 티맥스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공개적으로 발주처를 공격하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유를 해 앞으로는 공정한 입찰 절차가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티맥스는 KB국민은행에 제출된 제안요청서 변경은 가능하지만, 입찰에 참여한 기업에는 공정한 경쟁절차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대표는 “경쟁을 해서 입찰에서 떨어졌으면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이기거나 질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냥 IBM과 따로 만나 계약을 하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여러 기업으로부터 RFP를 받았기 때문에 국내 유일 시스템 SW업체로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달 11일 더케이 프로젝트 경쟁 결과가 발표되기 전인 6일에 KB국민은행 IT를 총괄하는 대표 일행이 한국IBM 담당 임원과 해외 출장을 가기도 했다”며 공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서울 중구 KB국민은행 본점. KB국민은행이 또 다시 전산시스템과 관련해 갈등에 휘말리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이날 티맥스는 특정 제품 선정 전면 무효, 기술 및 가격 공정한 검토,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의 요구사항을 공개 제안했지만 KB국민은행 측은 “SK C&C 제안서에 프로젝트 라이선스가 아닌 SW 라이선스는 고객과 상호 합의해 변경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다. 제안요청서에 그런 조항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SK C&C도 KB국민은행과 같은 입장이다.
KB국민은행은 “제안서에는 티맥스소프트의 티베로가 국내 시중은행 주요업무 시스템에 적용된 사례가 없고, SK C&C의 제안도 내부관리용이라 별도 기술 검증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한국IBM과의 해외출장 주장에 대해선 “동반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았고 KB국민은행 IT그룹 임직원은 자체 일정으로 인도 구르가온 지점을 방문했다”고 일축했다.
엇갈리는 양측의 주장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티맥스는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 ‘우상협상대상자 지위확인 및 계약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정거래 심의를 신청했다. 앞으로 금융위원회 등 국내 관련기관에도 일제히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일각에서는 국민은행과 IBM의 ‘밀월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과거 KB금융 사태 당시 IBM의 국민은행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되는 등 그동안 국민은행과 IBM의 관계에 많은 의구심이 제기돼 왔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금융사의 차세대 시스템 교체는 매번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사업”이라면서 “그만큼 이권이 크고, 이해관계자들도 많은 만큼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 조심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