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상공’ 관계없는 일부 외국인 강사들 자기 나라 이름 팔아 돈벌이 논란
상공회의소는 상공인이 모인 협회나 연맹의 한 종류다. 상공인이 모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맥을 쌓아가는 단체기도 하다. 한국에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있다. 일정 기간에 따라 임기를 바꿔가며 상공인이 수장을 맡곤 한다. 손경식 CJ그룹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직을 거쳐갔다.
한국에서 ‘상공회의소’는 일반 협회나 연맹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올라 있다. ‘상공회의소’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은 꽤 크다. 상공회의소가 준공공기관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는 정부의 업무를 대행하는 준공공기관 역할을 한다.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설립된 대한상공회의소와 지역상공회의소는 원산지증명 발급규정에 의거해 상공업 관련 증명 및 검사와 감정을 담당한다. 원산지증명서는 관세 등이 부과될 때 반드시 필요한 무역 필수서류 가운데 하나다. 국가기술자격검정이나 일부 자격증 업무도 맡는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상임위원을 파견할 수 있어 탄탄한 배경을 자랑한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국가별 상공회의소 가운데 단순 이권 단체를 넘어 준정부기관처럼 분류되는 곳은 ICC(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국제상공회의소)에 가입된 상공회의소다. ICC는 1919년 10월 미국 뉴저지주에서 미국과 유럽 기업 대표가 경제를 다시 살리자는 취지로 모인 만남으로 시작됐다. 1920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정식 출범했다. 현재 140여 개국 경제단체와 기업을 회원으로 둔 세계 최대 민간 국제경제단체다. 양자간 무역 정보를 전자로 교환하기도 한다. 국제중재재판소를 산하에 뒀다. 한국은 대한상공회의소가 ICC의 일원이다.
한국에서 현재 활동 중인 주요 외국 상공회의소.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상공회의소 중에서도 이름뿐인 곳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공회의소’라는 단어가 들어간 외국계 단체가 약 16곳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법인이나 지사를 설립한 특정국가 기업인이 모여 만든 단체가 주를 이룬다. 일반적인 상공인 협회나 연맹과 마찬가지로 임기에 따라 회장을 바꾸며 같은 나라 사람끼리 한국에서의 경제 활동 전반을 이야기하는 만남을 가진다. 이들 가운데에는 ICC에 가입된 특정 국가 상공회의소의 외국 주재 상공회의소도 자리한다. 토니 가렛 고려대 교수, 제임스 김 전 한국GM 대표, 롤랜드 이데뮈르 전 IKEA 글로벌 인재부문 CEO, 쟝 크리스토프 다베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대표, 딜립 순다람 마힌드라코리아 대표 등이 대표적인 각국 상공회의소 대표다.
문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주한외국상공회의소 일부가 상공회의소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이용해 본 목적과 달리 한국인 대상 영리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 결과 유럽 소재 한 국가의 주한 상공회의소는 한국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을 바지 대표로 앉혀 놓고 외국어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실무를 담당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실무 담당자는 실제 외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 무역이나 상공활동 경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상공회의소가 하는 일 가운데 네트워킹 파티가 있었다. 헌데 모인 사람은 이 나라 음식을 만들어 파는 한국인 레스토랑 사장이 대부분이었다. 특정 음식 기념 행사를 주최한다고 이 나라 음식을 파는 한국인 음식점 대표를 불러다가 대사관저에서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대사 등 외교관도 대거 참여했다.
이 외국인 강사는 이렇게 외교관 인맥을 쌓은 뒤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광폭 외교 행보를 보였다. 대사가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한 광역자치단체 투자유치자문관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단독으로 방문하며 자신의 세를 넓혀갔다. 이러한 활동 사진은 계속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됐다. ‘상공회의소’에 ‘주한’까지 붙다 보니 본국에서 외교 목적으로 보낸 준공공기관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실제 상공회의소의 역할인 무역 활동에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상공회의소 소속 국제무역 담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직원은 원산지증명서 발급 가능 여부를 묻자 원산지증명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는 “저는 무역 담당이지만 실제 업무는 회원 및 회원사 가입 담당”이라고 밝혔다.
보통의 상공회의소는 가입비를 받고 회원과 회원사 등에 행사와 각종 만남을 주선한다. 상공회의소 주최 행사와 만남은 한 국가에서 사업 활동을 벌이는 자국 회원과 회원사를 연결해서 더 큰 목소리를 내는데 목적을 둔다. 허나 일부 상공회의소는 상공회의소라는 이름값을 이용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벌인 뒤 한국인끼리의 행사를 주최하는 등의 영리 행위를 주최했다. 더군다나 행사 참여 금액과 행사 소요 비용도 모두 한국인 회원사가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돈을 주지 않겠다는 한 외국 상공회의소의 채용 공고. 맞춤법도 틀렸다.
이 나라 음식을 파는 상당수 식당은 이 상공회의소의 가입 요청을 받은 바 있다고 나타났다. 가입신청서에는 수십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가입비가 등급에 따라 표시됐다.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네트워킹 기회, 마케팅과 판매촉진, 모임 알림, 상공회의소 공신력 사용, 행사 할인 등이었다.
또 다른 외국 상공회의소는 아예 외국어 교육 등 노골적인 영리 행위까지 하고 있었다. 몇몇 외국 상공회의소는 아예 인턴을 채용하며 돈을 안 주기까지 했다. 한국 취업준비생은 본국에서는 인정도 못 받는 한국 내 외국인 사조직에서 돈도 못 받고 자신의 젊음을 내줬다. 외국어 전공생에게는 늘 커 보이는 게 주한○○상공회의소다.
외교관 특성상 자국민의 비정상적인 한국 내 영리 행위를 눈 감아줄 수밖에 없기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사 입장에서는 “내가 파견 가서 우리나라 상공인 단체 하나 만들었다”고 본국에 보고할 수 있어서 나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어도 자국민이니 굳이 밀어내거나 피하지 않는 게 외교관의 타국 생활 생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세심한 관리를 요구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사단법인 관리를 한다. 외국계 상공인 관련 사단법인 승인 요청이 들어오면 본국에서도 일정 수준을 인정 받는 단체인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국인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네덜란드만 해도 공식 상공인 단체명이 주한네덜란드경제인협회다. 외국인 주도 사조직이 상공회의소라는 단어를 자유로이 쓰도록 계속 방치하면 피해자는 늘어만 갈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