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조선 “통계 왜곡” vs “지식 부족” 공방전…방정오 빠른 사퇴 두고 내부 권력 암투설까지
방정오 대표이사
MBC는 하루 전인 11월 21일 방정오 대표의 초등학생 딸이 운전기사 김 아무개 씨(58)에게 폭언을 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MBC 안에서는 “미성년자 목소리를 방송까지 하는 게 옳냐”는 반발도 일부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갑질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보도를 결정했다고 전해졌다.
방정오 대표 딸의 갑질 관련 단발성 보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선일보와 MBC는 최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상대하는 건 MBC뿐만 아니었다. KBS도 포함됐다. 한겨레신문과도 다툼은 계속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선일보 대 친정부 언론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시작은 8월 16일 한겨레신문이 먼저 끊었다. 한겨레신문은 “보수언론들은 참여정부 내내 각종 통계를 왜곡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 위기론’을 퍼뜨렸다. 하지만 위기는 오지 않았다. 최근 보수언론들의 경제 관련 보도를 보면 참여정부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며 “지난 2분기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 비교가 한 예다. 여기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국은 전기 대비 성장률이고 미국은 전년 대비 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한 수치다. 기준 자체가 다르다. 한국 기준으로 하면 미국은 1.0% 성장했고, 미국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2.8% 성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경제가 2분기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은 무려 4.3%(연율 환산) 성장을 내다본다. 충격적이기에 앞서 어이가 없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다”고 적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가 통계 장난? 장난친 곳은 따로 있다”는 반박 기사를 냈다. 기사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칼럼을 쓰신 한겨레 논설위원이 경제 기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한지 아니면 조선일보를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성장률을 집계·발표하는 방식이 애초부터 다르기 때문이죠. 나라마다 성장률 집계 기준이 다르다 보니, 나라별 성장률을 보도할 때는 위 사설과 같이 집계 기준을 명시하면서 각국이 발표한 숫자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정석”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수위는 높았다. “가령 ‘한겨레’ 2018년 6월 11일자 ‘식어가는 지구촌 경기…미 ’홀로 확장‘ 어디까지 갈까’ 기사를 볼까요. 소제목에 ‘세계경제는 후퇴 국면…독 1분기 0.3%↑, 일 -0.6%’ 이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독일은 ‘전기 대비’, 일본은 ‘전기 대비 연율’이어서 서로 기준이 다릅니다. 하지만 본문에 ‘일본은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연율로는 -0.6%)을 했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누구도 이걸 왜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라며 “한겨레 칼럼의 논리대로라면 ‘내가 통계를 왜곡했다’고 자백 아닌 자백을 하는 셈”이라고 적혔다.
조선일보는 한겨레신문의 역린을 건드렸다. “한겨레는 애당초 왜 이런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아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걸까요. 짐작컨대 조선일보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일 겁니다. 칼럼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느니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이게 청와대 관계자의 말인가요, 언론인의 말인가요”라며 “현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한 소득분배성장이 많은 부작용을 내며 참사 수준으로 치닫자 청와대는 날씨 탓, 전 정권 탓, 언론 탓 등 ‘나만 빼고 전부’로 화살을 돌리느라 바쁩니다. 그 와중에 친정부 매체들도 열심히 거드는 중이죠. 위에서 언급한 한겨레의 칼럼이 어떻게 나온 건지 경위를 추적해봤더니 처음 한 인터넷 매체가 주장하고 이어 한 친정부 인사가 진행하는 방송으로 옮기고 그걸 다시 한겨레가 받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쳤더군요. 광우병, 메르스, 천안함 같은 각종 괴담이 생산·유포돼온 과정과 판박이입니다. 이런 ‘선동의 공생관계’로 그동안 참 재미를 많이 봤죠”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겨레신문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한겨레신문 출신인 까닭이다. 김 대변인은 2014년까지 한겨레신문의 논설위원이었다. 2017년 중순 한겨레신문을 퇴사했다. 퇴사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첫 청와대 대변인으로 제안을 받은 바 있었다. 본인이 사양했다. 후배 기자들도 만류했다고 전해졌다. 그러던 그는 2018년 1월 29일 새로운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으로 선임됐다. 한겨레신문에서 청와대에 우호적인 논조만 나오면 김 대변인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겨레신문은 이 사건 뒤에도 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의원의 법원행정처에 재판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데 이어 다른 언론사의 조선일보 비판 기사까지 따라 쓰는 등 조선일보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한겨레신문 외에도 친정권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는 KBS와 MBC 등 방송사를 향해 칼을 겨눴다. 방송사는 TV수신료를 기반으로 운영돼 정부 비판 논조를 보이기 힘들다는 전통적인 비판 위에 자유롭지 못하다. 정권이 바뀌면 수장이 교체되는 등 늘 정권과 같은 궤를 달려 왔다. 조선일보는 10월 KBS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KBS가 대북 라디오방송 송신 출력을 낮췄다는 기사였다. 북한 주민을 위한 ‘한민족방송’이나 장애인 ‘사랑의소리’ 등이 그동안 제 역할을 못했을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TV조선도 거들었다.
KBS는 “KBS의 한민족방송 송출 시설은 기존의 청취 구역을 유지하면서도 소모 전력은 절감시키는 신기술이 적용된 송신기를 운용하고 있다”며 “전력은 과거보다 적게 사용하면서 과거와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런 뒤 “조선일보와 TV조선 기사는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이라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및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KBS의 한국은행 관련 보도
KBS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반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조선일보의 한국은행 금리 인하 개입 의혹을 보도하고 동국제강 재판 관련 조선일보가 법원행정처에 청탁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KBS로 향하던 불똥이 MBC로 튄 건 조선일보의 방송 광고 관련 기사였다. 조선일보는 “방만한 지상파에 중간광고까지 허용”이란 기사를 냈다. 중간 광고는 방송사에게 큰 수익원이지만 관련 법상 못하게 돼 있다. 그런 연유로 방송사는 기존 1회 1시간 분량 드라마를 2개로 쪼개 30분씩 2회로 나눠 방영하며 중간에 광고를 싣는 꼼수를 쓰고 있다.
이번 언론 전쟁에선 각 전쟁 주체의 색채가 뚜렷하다 보니 정치 권력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996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벌였던 지국원 살인사건 등의 언론 전쟁은 일련의 사건 중심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 때처럼 보수 언론 길들이기로 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허나 조선일보가 틈을 너무 많이 줬다. 장자연 사건과 싸늘한 민심 등 조선일보를 향한 세상의 눈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했다.
세간에서 제기되는 이런 큰 그림과 달리 조선일보 내부에선 내부 권력 암투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운전기사의 내부고발이 있은 지 단 하루 만에 방정오 대표가 자리에서 내려온 게 시간상으로 너무 급박하게 진행된 까닭이다. ‘특정한 기획’이 없었으면 이와 같은 큰 의사결정이 재빨리 이뤄졌겠냐는 게 조선일보를 둘러싸고 일각에서 나오는 의혹이다.
이는 최근 위상이 좋아진 TV조선의 입지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TV조선은 조선일보 내부에서 유배지 취급을 받았다. 허나 지금은 달라졌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이야기다. 방송의 달콤함을 알게 된 내부 인사가 늘어난 까닭이다. 예전 같으면 중간관리자급 인사가 날 때마다 아무도 TV조선을 계산기에 넣지 않았다. 허나 최근 관리자급 사이에선 조선이 가진 월간지나 주간지, 인터넷매체 등 다른 관계사보다 TV조선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후계 구도에 있어 방상훈 현 대표의 첫째 아들 방준오 부사장이 수학적으론 무게를 얻는다. 하지만 최근 조선일보 내부에선 둘째 아들 방정오 대표가 쌓아온 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전해졌다. 게다가 방상훈 대표의 사촌동생 방성훈 스포츠조선 대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방상훈 대표가 조선일보 수장직에 오르기 앞서 조선일보를 이끌었던 건 고 방우영 전 명예회장이었다. 방상훈 사장의 부친인 방일영 전 회장은 1964년부터 1993년까지 조선일보를 이끈 뒤 동생 고 방우영 전 명예회장에게 조선일보 수장 자리를 넘겼다. 방성훈 스포츠조선 대표는 고 방우영 전 회장의 아들이다. 고 방우영 전 회장 사망 뒤 조선일보 수장 자리는 다시 형 방일영 전 회장의 아들 방상훈 대표에게 넘어갔다.
대기업 고위급의 운전기사의 직업상 특수성이 이런 의혹에 더욱 불을 지핀다. 대기업 고위급 운전기사는 단순 운전기사가 아니다. 업계 자체가 매우 좁고 선발도 까다롭다. 내부고발이 이뤄지면 같은 업계에 절대 종사할 수 없는 폐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계를 책임져 줄 뒷배경 없이 운전기사가 나서서 MBC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게 조선일보를 둘러싼 업계의 판단이다.
조선일보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TV조선 내부는 매우 조용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한 내부 관계자는 “정치 권력이 개입됐나 여부는 솔직히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계 구도 관련된 의혹도 억측 아니겠느냐”고만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방정오가 밀었던 TV조선 예능·드라마 흔들릴까 방정오 대표가 사퇴하며 TV조선의 예능·드라마 미래에 물음표가 붙었다. 방 대표의 의지로 TV조선이 예능과 드라마에 적극 투자를 시작했다고 알려진 까닭이다. 개국 이래 정치시사에 집중했던 TV조선은 최근 예능과 드라마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TV조선은 지난 3월 윤시윤과 주상욱, 진세연, 추수현 등이 출연한 ‘대군’을 방영했다. 시청률 5%를 넘기는 등 좋은 반응을 보였다. 4년 만에 일이었다. 2014년 12월 막을 내린 ‘최고의 결혼’이 마지막 드라마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시트콤 ‘너의 등짝에 스매싱’을 방송하며 정치시사에 집중됐던 기존의 편성에 변화를 줬다. 업계 관계자는 “JTBC와 채널A가 예능과 드라마 쪽에서 연일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TV조선도 자극 받아 더욱 활발한 투자를 한다고 해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특히 방정오 대표가 예능과 드라마 쪽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었다”고 말했다. JTBC는 드라마와 예능에 더 집중할 예정이며 채널A 역시 최근 드라마 쪽 인력을 강화하는 등 종편은 최근 예능과 드라마 투자에 한창이다. 방정오 대표가 사퇴하며 업계에서 TV조선 예능과 드라마 쪽이 힘을 많이 잃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정작 내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거라고 반응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확충됐던 드라마와 예능 쪽 인력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동력을 잃어 향후에 어렵지 않겠냐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TV조선의 기존 인력 대부분은 정치시사 쪽에 일했던 기자 출신이 많은 까닭이다. 허나 이에 대해 한 TV조선 관계자는 “조선일보는 사주가 있는 회사다. 문제가 있다고 사주 아들인 방정오 대표의 영향력이 사라지진 않는다”며 “현재 자리에서 떠났다고 방 대표가 밀었던 부분에서 힘이 빠질 일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최] |
‘TK판 조선일보’ 매일신문과 대구MBC의 지역전 대구경북지역에선 매일신문과 대구MBC가 지역전을 펼치고 있다. 매일신문은 이 지역에서 ‘대구경북판 조선일보’라고 불린다. 지역에선 조선일보보다 오히려 영향력이 더 크다. 전쟁의 서막은 MBC의 공세부터 시작됐다. 2016년 10월 희망원 사태 때부터 대구MBC는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향한 비판을 시작했다. 희망원은 1958년 개설된 대구의 복지시설이다. 1980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관리가 맡겨졌다. 이후 생활인 학대 및 감금 폭력, 국가보조금 등의 횡령 문제가 발생했다. 6년간 309명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이때 매일신문은 희망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보도를 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희망원 외 매일신문의 사주이기도 하다. 불씨는 최근에 다시 살아났다. 2018년 대구MBC는 대구대교구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비자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뒤 대구대교구 소유 골프장 문제에 적극 뛰어들었다. 대구대교구는 팔공컨트리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팔공컨트리클럽이 지자체에서 허가한 양 이상으로 많은 회원권을 발행해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는 대구대교구에게 역린과도 같았다. 팔공컨트리클럽은 대구경북 고위급 인사가 친목을 쌓는 중심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매일신문도 대구MBC를 정조준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대구MBC가 사옥 부지에 걸린 고도제한을 완화해 달라며 국회의원에게 청탁했다는 내용을 썼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역 언론 관계자는 “지금 서로 약점을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대구 안에서 언론끼리 전쟁을 벌인 건 좀처럼 없던 일”이라며 “서로의 이권 다툼이 아니라 건강한 견제의 문화로 자리 잡혔으면 한다”고 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