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빈총 들고 단원 이끌며 은행 털어 ‘발칵’…35년형 받았지만 특별사면 뒤 사교계 셀럽으로 거듭나
1973년 패티는 버클리 대학에 들어간다. 전공은 예술사. 당시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 중이었다. 이때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게릴라 집단인 ‘심바어이니즈 해방군(SLA)’은 패티의 아파트에 침입해 그녀에게 린치를 가한 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납치한다. SLA는 정부를 부정하고 무상 분배를 주장하는 극좌파 혁명 그룹으로, 감옥에 수감된 단원과 인질 교환을 하기 위해 패티를 납치했던 것.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SLA는 패티의 아버지에게 과격한 요구를 한다. 캘리포니아 지역 빈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라는 것. 그는 200만 달러의 빚을 내 기부를 했지만, SLA는 패티를 놓아주지 않았다.
SLA에게 납치된 패티 허스트는 일주일 동안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상태로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 상태에서 패티는 그들의 정치 토론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패티는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게 되었고, 자신도 투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SLA 단원이 되었다. 나중에 법정에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이후 SLA의 일원으로 했던 활동을 보면 매우 적극적이었다. 자신을 납치해 죽이려는 과격분자들에게 동조했던 패티 허스트. 그녀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가장 극적인 사례였다.
1974년 4월 3일, 납치당한 지 두 달 후 패티 허스트는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은 SLA에 가입했으며 이름을 ‘타니아’로 바꾸었다는 내용이었다. 타니아는 체 게바라의 유일한 여성 게릴라 동료였던 타마라 분케를 일반적으로 칭하던 이름. 패티 허스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자신의 부모에 대해선 “파시스트들”이라고 비난했다.
스무 살 청년의 감정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974년 4월 15일에 기록된 어느 CCTV 영상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당시 SLA는 샌프란시스코의 히버니아 은행을 습격했는데, 이때 M1 카빈총을 들고 단원들을 이끄는 패티 허스트의 모습이 포착되었던 것. 이 장면에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FBI는 강도 높은 압박을 시작해 5월 17일 SLA의 아지트를 습격하여 6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외출 중이었던 패티 허스트는 도망칠 수 있었고 결국 4개월 뒤인 9월 18일에 체포된다. 당시 그녀의 체중은 40킬로그램. 깡마른 체구에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헤비 스모커였다.
패티 허스트의 변호사는 그녀가 자신의 의사가 아닌 세뇌에 의해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버클리 대학에 다니던 당시 패티의 IQ는 130이었는데, 체포된 뒤 검사 결과는 112였다. 몇 개월 만에 급격한 지능 저하가 있었던 것. 게다가 패티는 ‘타니아’라는 이름으로 살기 전의 삶에 대해 잘 기억을 하지 못했고,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FBI에게 잡힌 뒤의 메시지도 심상치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난 웃음 짓고 있다고 전해라. 나는 자유롭고 강인하다. SLA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한다.”
재판은 1년 반 뒤인 1976년 2월에 시작되었다. 이전까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인 적도 있었지만, 법정에서 패티 허스트는 꾸준히 무죄를 주장했다. 그녀는 체포 당시 무서움으로 바지를 입은 채 그만 오줌을 싸 버린 적이 있었는데, 변호사는 이것을 증거로 패티 허스트가 타의에 의해 SLA 활동을 했으며 내면엔 공포로 가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패티 허스트가 결코 마지못해 범죄 행각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고 못 박았고, 배심원단의 평결은 유죄였으며 결국 징역 35년형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극적인 감형이 이뤄진다. 워낙 명문가였던 탓에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5년 뒤 대통령이 됨)을 비롯, 존 웨인 같은 대배우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형량은 7년으로 줄었고,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1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된다. 이후 그녀는 화제의 인물로서 사교계의 셀러브리티가 되었으며, 자신의 체포 과정에서 만난 경찰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1990년부터는 존 워터스 감독, 조니 뎁 주연의 ‘크라이 베이비’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기록한 책으로 작가가 되었으며, 그녀의 일을 소재로 한 영화인 ‘패티 허스트’(1988)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여전히 가석방 상태였던 그녀는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사면을 받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