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없는 경찰이 맡기 어려워”…경찰‧국정원 “애초 불가능” 여권 내부서도 “회의적”
청와대의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 이전’이 연내 추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과 국정원 내부에선 “현장도 모르고 밀어부친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연초 개편안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국정원은 앞서 국내‧외 정보수집권에 대공수사권, 모든 정보기관들을 아우를 수 있는 기획조정권한까지 보유해 이를 악용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인‧지식인‧종교인‧연예인 등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감행했다”며 “국정원은 지금까지 감사원의 감사를 받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원도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조 수석은 “법 제정이 필요하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전할 것”이라며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전 문제는 새해를 맞는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11월 14일 당‧정‧청 회의에는 조 수석과 이석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김민기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 등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선 “이번 정기국회에서 안 되면 내년(2019년)으로 넘어가니까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면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아직 국회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공수사권을 이전하기 위해서는 국정원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사이에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은재 한국당 간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을 이전하기에는 경찰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북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정보활동을 벌여야 하는데, 이는 국정원이 전문적으로 해온 일이지 않나.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건 옳지 않다”며 “경찰의 예산과 전문성, 모두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의 정책을 무조건 막고 보는 야당의 고질적인 태도를 떠나, 경찰과 국정원 내부에서도 꽤 많은 반발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초기에 이런 개혁안이 발표됐을 때 경찰에는 우려도 있었지만 기대감도 많았다. 대북 공안수사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대가 됐겠냐”며 “그런데 실무자들은 ‘너무 덩치 큰 게 온다’며 걱정도 하더라. 아무래도 국정원은 이 일을 하려고 만들어진 엘리트 집단 아니겠나. 이들은 대북업무를 목숨 걸고 하는데, 과연 평범한 경찰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했다.
이어 “검찰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국정원에 버금가는 자금력을 가진 기관이 없어서 (대공수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또, 국정원은 폐쇄적이고 전문적이지만 경찰은 그렇지 않다. 순환보직으로 오픈이 잦기 때문에 잘 될지 모르겠다”며 “(청와대에서는 국정원 개혁 뜻을 밝혔는데) 막상 서훈 국정원장은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더라”고 전했다. 아울러 “청와대의 국정원 축소 취지는 굉장히 좋으나, 너무 현실과 바닥을 모르고 던진 대책 같다”고 비판했다.
국정원을 잘 아는 한 관계자도 “대공수사를 경찰이 하게 되면 경찰 수사파트에서 이를 담당하는데, 경찰에는 그 부분이 많이 죽어 있다. 국정원처럼 오래 못 했고 전문적이지 못하다. 수사권을 넘겨주려면 받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경찰이 받으려면 본부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 내부에서도 정치적 상황이 많다. 국회 협조도 있어야 하고, (경찰 자체의) 능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며 “결론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정원법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경찰과 국정원 현장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쏟아져 나오자 여야는 논의를 ‘3년 유예’로 방향을 선회했다. 3년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여야가 입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당인 김민기 간사는 앞서의 당정청협의에서 “국정원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3년 유예를 염두에 두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공수사권 이전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은재 간사는 “11월에 원내대표들 간에 (3년 유예하기로) 협의를 했다. ‘어차피 3년 지난 다음에 실시할 건데 지금 논의할 필요가 있냐’라고 정리한 부분”이라며 ‘3년 유예설’에 못을 박았다. 이어 이은재 간사는 ‘왜 3년인지’를 묻는 질문에 “간첩이나 대공은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하는 일이다. 상황을 보면서 논의해야지 단기간에 고쳐 잡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3년 유예’ 결정의 진위를 묻기 위해 김민기 간사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정보위 특성 상 여야 합의된 내용이 아니고서야 말해주기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3년 유예라는 건 그냥 하지 말자는 뜻이다. 다음 정권으로 넘기겠다는 건데 그냥 안 해주겠다는 걸로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경찰이나 국정원 직원들이 봐도)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국정원 관계자도 “분위기를 보니 (대공수사권 이전에 대해) 여당 내 강성인 몇 명 의원들만 그렇게 주장하지, 여당 쪽에서도 강하게는 못 나가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그냥 밀어붙이기엔 경찰과 국정원의 현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러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앞서 2017년 말, 국정원은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모든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체 국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마치, 대공수사권 이전 취지를 존중하는 듯한 대목이다. 하지만 앞서의 국정원 관계자는 “그건 대통령 공약사항이었으니, 이를 받들어 따라야 하는 위 간부의 입장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라며 “정작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