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마다 ‘욕받이’ 되면서도 연예·연기대상 구태 ‘되풀이’
지상파 3사의 연말 시상식이 한창인 2018년 끝자락, 이런 네티즌의 댓글이 올라왔다. 드라마를 월화, 수목, 주말극과 같이 세분화해서 남녀 배우에게 각각 최우수상을 주는 시상식을 비판하는 한 마디였다. ‘최’(最)는 ‘가장 높다’는 뜻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 중에서도 단연 1등이라 할 수 있는 1명에게 주는 것이 옳다. 그보다 높은 상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大)상’뿐이다. 하지만 각 드라마 시상식마다 최우수상을 받은 배우들이 넘쳐흐른다. 여기에 공동 수상으로 인한 나눠먹기 시상이 난무한다. ‘구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명분 없었던 ‘연예대상’
지상파 3사 연예대상의 백미는 단연 방송인 이영자의 2관왕이다. 한 해 두 곳의 방송사에서 동시에 대상을 받는 건, 그동안 유재석과 강호동에게만 허락됐다. 데뷔 27년 만에 첫 대상을 거머쥔 이영자는 MBC, KBS 연예대상을 나란히 석권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영자의 수상에 대해서는 “대상을 받을 만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찬찬히 모양새를 뜯어보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있다. 일단 KBS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두곤, “이영자에게 줄 상이 아닌 것 같다”는 평가가 불거졌다. 그는 KBS에서 ‘안녕하세요’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8년차다. 함께 진행하는 신동엽, 김태균보다 활약이 뛰어나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이 프로그램으로 대상을 받은 것은 의구심이 든다. 2018년 이영자의 인기가 상승하자 이에 편승해 대상을 안겼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대상 호명을 앞두고 나눈 인터뷰에서 또 다른 대상 후보였던 신동엽이 “대상은 우등상 느낌이 나야 하는데 이동국 빼고는 개근상 느낌”이라고 말한 것이 2018 KBS 연예대상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KBS 연예대상 방송 화면 캡처.
가장 시끄러운 곳은 SBS였다. 배우 겸 방송인 이승기가 ‘일요일이 좋다-집사부일체’로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미운우리새끼’와 ‘정글의 법칙’ 등에 밀린다. 프로그램 속 그의 활약 역시 함께 출연하는 양세형을 앞지른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2018년 이승기가 주연한 드라마 ‘배가본드’의 방송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SBS는 기꺼이 그에게 대상을 안기고, 스스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더 큰 문제는 ‘골목식당’으로 2018년 SBS 예능 강세를 주도한 요리연구가 겸 방송인 백종원이 무관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몇몇 매체는 “백종원이 수상을 고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대상 수상 결과가 생방송 현장에서 첫 공개된 것이 아니라 미리 조율을 거쳤다는 의미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SBS는 이런 보도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어떤 해명을 내놓더라도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방송 관계자는 “2017년 전문 방송인이라 할 수 없는 ‘미운우리새끼’의 어머니들에게 대상을 줘서 뭇매를 맞았던 SBS의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장고 끝에 내린 결론도 악수(惡手)였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 감동 없었던 ‘연기대상’
2018년 지상파 3사 연기대상의 대상 수상자는 총 5명이었다. MBC만 소지섭에게 단독 대상을 줬을 뿐, KBS는 유동근과 김명민, SBS는 감우성과 김선아에게 공동 대상으로 트로피를 안겼다. 5명 모두 대상 수상자로서 연기력 및 공로는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공동 수상으로 인해 긴장감은 사라졌고, 감동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0.1초 차이로 금·은·동이 갈리는 스포츠 경기가 감격과 아쉬움이 교차하며 스릴을 안기는 데 반해 수상자를 남발하는 시상식은 한 해 동안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상을 나눠주는 자화자찬격 잔칫집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왜 퍼주기식으로 상을 줄까? KBS는 2014년 유동근 이후 4년 연속 2명에게 대상을 주고 있다. 두 배우의 경중을 가늠하기 힘든 한 해 정도야 공동 수상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4년 연속 구태를 반복하니, 이제는 만성화된 느낌까지 준다.
KBS 연기대상 방송 화면 캡처.
무엇보다 부문별 상이 너무 많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방송사마다 최우수상을 받는 남녀 배우가 10명 안팎이다. 시청자들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해, 드라마의 내용과 캐릭터의 성격이 가물가물한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도 상이 주어진다. 스스로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격이다.
연기대상이 연예대상에 비해 공동 수상이 남발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배우들을 시상식에 오게 하기 위해서다. 장기간 편성돼 현재 방송 중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드라마는 일찌감치 방송을 마쳤다. 상반기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타사 드라마에 출연 중인 경우도 적잖다. 예를 들어 SBS에서 대상을 받은 김선아는 현재 MBC 수목극 ‘붉은달 푸른해’에 출연하고 있다. 이들을 시상식에 부르기 위해 어느 정도 수상 가능성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연말마다 ‘욕받이’가 되지만 지상파 3사가 “통합 시상식을 열라”는 등의 고언을 뒤로하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매 시상식의 시청률은 10% 안팎을 기록한다. 웬만한 드라마 시청률을 뛰어 넘는다. 광고도 적잖이 붙는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따로 팀을 꾸려 만들어야 하는 시상식을 준비할 때마다 손해를 본다면 방송사들도 다양한 고민을 하겠지만,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시상식은 여전히 대중과 광고주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라며 “이런 상황 때문에 매년 여러 가지 논란이 쏟아지지만 그때만 잘 넘기면 된다는 식의 시상식 촌극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