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고른 작품…영화 속 ‘홍수’ 장면 촬영 때 어릴 적 경험 떠올려”
어쩌면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하고 난 뒤 두 자녀를 낳고 키우느라 마음껏 연기할 수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도 없던 시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그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유호정은 “결혼하고 남편(배우 이재룡)과 번갈아 작품을 하자고 약속했다”고 돌이켰다. 한번 작품을 시작하면 몇 개월간 밤샘 촬영도 불사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부모 중 한 명은 남아 아이들을 돌보자는 약속이었다. 지금껏 부부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실제 유호정도 두 아이를 둔 엄마다. 맏아들은 18살, 둘째인 딸은 15살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스릴러 영화의 피해자나, 납치당한 딸을 둔 엄마 같은 캐릭터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그는 “그런 역할을 하는 내내 받을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아직까지도 없다. 다만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딸 둘 홀로 키운 우리 엄마 생각나”
오랜만에 내놓은 영화여서인지, 아니면 맡은 역할의 영향인지, 유호정은 이번 작품을 찍는 내내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엄마를 줄곧 떠올렸다고 했다. 영화에서 그는 꿈 많은 청춘이었지만 첫사랑의 아이를 가진 뒤 딸을 홀로 키우면서 살아가는 엄마 역할이다. 유호정은 “돌아보면 모성애 강한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며 “때문에 이번 영화가 궁금했고, 나를 떠나 우리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 엄마한테 바치는 영화로 남았다”고 했다. 실제 유호정은 맏딸이다. 밑으로 여동생이 있다. 1988년 광고모델로 데뷔해 1991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이래 지금껏 화려한 삶을 살아온 듯 보여도 일상에선 남들이 모르는 일들도 겪었다. 모친은 유호정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 엄마는 홀로 두 딸을 키우셨어요. 제가 중학생 때 금호동에 살았는데 서울에 엄청난 홍수가 났거든요. 방 안까지 물이 다 찰 만큼 난리가 나는 바람에 엄마가 저와 동생을 옆에 사는 사촌언니의 아파트로 피신시켰어요. 엄마는 혼자 남고. 그날 밤 아파트 5층에서 집 옥상을 내려다봤는데, 엄마 혼자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를 챙겨 옥상으로 옮기는 게 보였어요.”
유호정은 엄마를 떠올릴 때면 그날의 장면이 기억에서 되살아난다고 했다. 마침 이번에 찍은 영화에서도 집에 홍수가 나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유호정은 “엄마의 심정이 새삼 이해가 됐다”고 돌이켰다.
“제 성격이 많이 무뚝뚝한 편이거든요. 애교도 없고.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 답답하기도 했어요. 어릴 땐 그 탓을 전부 엄마한테 돌렸어요. 엄마가 우리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해주지 않아서 저도 그렇게 됐다고 원망을 했죠.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고 보니 딸 둘을 혼자 키우면서 더 엄하게 대한 게 엄마의 사랑 표현이란 걸 알았어요.”
# 남편 이재룡 “같은 곳 바라보는 동반자”
유호정은 두 아이를 둔 엄마다. 맏아들은 18살, 둘째인 딸은 15살이다. 그는 “친구 같은 엄마”라고 자부한다. 특히 딸은 유호정보다 더 열심히 엄마가 출연하는 방송이나 영화는 물론 인터뷰 기사들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유호정은 “딸이 다 확인하니까 인터뷰 때 가족 이야기는 더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제가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해놓고 보니, 정작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물어봤거든요. 확인을 받아야 하니까요. 하하!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라고요.”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어쩌면 틀에 박힌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린 28년 동안 함께 해왔잖아요. 남들은 잉꼬부부라고 보는데 우리에겐 조금 다른 의미가 있어요. 사이가 아주 좋고, 알콩달콩 애정 표현하는 그런 부부는 분명 아니에요. 저는 무뚝뚝하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부인이거든요. 그런데도 친구처럼 든든히 옆에 서서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제 남편이에요.”
30여 년 동안 대중의 시선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과정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대중의 시선을 받으니 조심해야 했고, 책임감도 느끼면서 살아왔어요. 그런 과정에서 우리 부부도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면서 지내는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고요. 지금은 손을 맞잡고 한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반자예요. 그 ‘동반자’라는 말의 의미가 뭔지 이제야 알겠어요.”
유호정은 영화뿐 아니라 최근 예능프로그램 출연 횟수를 늘리고 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이어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동상이몽’ 게스트로도 참여한다.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연예인 부부’로서 남편과 함께 예능에 출연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단호하게 “출연 생각은 없다”고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해도 저는 카메라를 의식할 것 같아요. 가식적으로 할 것 같아요. 하하! 시청자가 볼 때 제가 남편을 너무 구박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남편이 워낙 많은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방출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냥 묻어가는 게 편해요.”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