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사태 당시 오사카서 비자금 5억 마련하는 과정 진옥동 내정자가 주선 역할
신한은행 신입사원 부정채용 관여 의혹을 받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신한은행이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고발하며 시작된 신한사태는 검찰 수사를 거치며 ‘남산 3억 원’ 비자금 사건으로 확대됐다. 신 전 사장의 횡령액 15억 원에 성명불상의 인물에게 전달된 3억 원이 포함돼 있었던 것. 수사결과 신한은행은 007작전을 능가하는 작전으로 3억 원의 불법자금을 마련하고 누군가에게 전달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3억 원을 전달했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게 검찰수사의 최종 결론이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남산 3억 원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지난해 11월 진상조사단은 “남산 3억 원의 실체가 명백히 인정되고,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당시 진술자를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도록 종용한 자료가 있다. 3억 원 수령자를 속단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MB정권 실세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언론의 취재자료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검찰의 검찰권 오류를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위성호 행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눴다. 진상조사단은 과거 검찰이 검찰권 행사를 잘못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 피해회복을 위해 설치된 조직이다. 이 때문에 검찰 내에서도 정부 입맛에 맞춘, 특정인의 사주에 의한 조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사과정과 결과가 위성호 행장과 대척점에 있는 신상훈 전 사장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 치우쳤다는 평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진상조사단 내에서조차 남산 3억 원 사건 재조사안은 선정부터 조사 전 과정에 특정 입김이 들어간 편파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금융권과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이후 신한금융지주는 예정보다 수개월 앞당겨 조기 인사를 단행했다. 연임의사를 내비친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임기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진옥동 차기 은행장이 내정돼 갖은 잡음이 나왔다. 진상조사단의 남산 3억 원 위증권고 등 신한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칼날 때문에 위 행장을 교체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진 신임 은행장 내정자는 일본통이다. 신한은행의 핵심 보직인 오사카지점장과 일본현지법인장을 역임한 인사다. 진 내정자는 오랜 기간 일본에서 근무하며 일본 주주 장악력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신한사태에 깊숙이 연관됐었다는 치명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와 판결문을 종합하면 진 행장 내정자는 신한사태와 관련된 이백순 전 행장의 비자금 마련 핵심관계자다. 2009년 3월 진옥동 당시 오사카지점장은 이백순 전 행장의 지시에 따라 재일교포 주주 A 씨와의 식사 자리에서 자금 지원을 부탁했다. A 씨의 돈을 써도 뒤탈이 없다는 세평을 확인한 후 진 내정자는 이백순 전 행장과 A 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A 씨는 5억 원을 마련했고, 신한은행은 쪼개기 인출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를 현금화했다.
8년간 이어진 신한사태 재판에서 대법원은 이백순 전 행장이 불법으로 조성한 5억 원을 유죄로 인정,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09년 2월부터 수차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직접 자금책을 맡은 사람이 당시 진옥동 오사카지점장이다.
법조계는 진 행장 내정자가 최소한 비자금 마련 방조 혐의를 받는다는 점에서 인사에 대해 의문을 내비쳤다. 이백순 전 행장이 2010년 12월~2017년 3월 형사재판을 받아 이 기간 동안 공범자의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방조의 경우 공소시효가 2022년 6월까지 남아있다.
더군다나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이 전 행장에 대해 해임권고의 중징계를 내렸다. 은행법 제21조에 따라 금융지주회사 임직원은 간접적으로라도 직무와 관련해 증여나 수뢰 등을 할 수 없다. 은행법은 개정됐으나 2010년 이전에 벌어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개정 전의 법 적용을 따른다. 진옥동 행장 내정자의 오사카지점장 시절 불법자금 관리가 이에 해당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일개 직원들에게도 엄격한 윤리와 당국의 감시가 이뤄진다. 비자금 창구 역할은 형사처벌감인데 방조자나 행위자가 처벌도 안 받고 행장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신한사태와 ‘남산 3억 원 사건’ 지난 2010년 신한은행이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횡령, 불법대출 등 혐의로 고발하며 발생한 사건이 ‘신한사태’다. 당시 15억 원 상당의 횡령금 가운데 3억 원의 용처가 정치권 로비자금이라는 의혹으로 번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둔 상황에 3억 원이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성명불상자에게 전달된 것, 그래서 ‘남산 3억 원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